해원解寃이 가능한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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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解寃이 가능한 세상을 위하여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11.0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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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마다의 원한 가득한 세상
영화 ‘명량’에서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을 무찌른 이순신은 이렇게 말한다. “이 쌓인 원한들을 어찌할꼬.” 이 대사를 듣는 순간, 8월 염천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단순히 일본인들의 한을 말하는 것은 아닐 터, 국적을 막론하고 국가의 이익에 앞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픈 원혼들을 걱정하는 말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원한은 처절하게 이어져 내려오기 마련이고, 그러한 원한이 쌓이고 쌓여 인간의 역사를 소용돌이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악연이 우리에게 준 혹독한 시련의 세월을 생각하면 명량대첩에서 죽은 일본군쯤이야 뭐 그리 대수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통쾌하기도 하겠지. 그러나 커다란 흐름에서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나, 죽은 개개인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시키는 대로 전장에 나섰다가 죽은 사람에겐 그들 나름대로 원한이 생길 법도 하다는 말이다. 물론 맺힌 한으로 따지자면 우리나라 백성만 하겠는가.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위안부 할머니를 모욕하는 일본정부를 생각하면 치가 떨릴 지경이다.  
일본에 대해 언급하고 보니,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8월 1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1,500명 넘게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게다가 사망한 사람마저 어른이 아니고 어린이가 대부분이란다. 지난 7월 8일부터 이스라엘은 5분당 한 번꼴로 가자지구에 미사일을 퍼붓고, 천장 없는 감옥이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지상군까지 투입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은 실로 잔인하고 비겁하기 그지없다. 박노자 선생은 이를 보고 “민간인, 여성, 아이들에 대한 무자비한 도살을 응시만 하고 아무런 제지도 하지 못하는 우리 세계는, 문명의 가면을 쓴 최악의 야만상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을 정도다.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1917년 팔레스타인에는 5만 명의 유대인과 64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살고 있었다(1933년에는 17만 명과 75만 명).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가자 1948년에는 팔레스타인 영토의 75%를 유대인이 점령하고 78만 명의 사람들을 영토 밖으로 내몰고 이스라엘을 세웠다. 수천 년을 살아오던 사람들을 내몰고도 그들이 반발하니 폭격이라니. 이스라엘은 전쟁 원인을 하마스의 공격으로 돌리지만, 지금 유대인의 얼굴에는 제국주의 일본군의 모습이 겹쳐있으며, 독일인 나치가 살아있는 듯 보일뿐이다. 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묵은 원한을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인가. 이 세상은 온통 원한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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