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라 컬렉션 환수는 우리 시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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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 컬렉션 환수는 우리 시대의 과제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11.0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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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문화재 환수, 문화재 제자리 찾기

| 오구라 컬렉션이란 무엇인가
오구라 컬렉션은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1,100여 점의 문화재로 일제강점기 도굴왕이라 불렸던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한반도 전역에서 수집해 일본으로 반출한 문화재다. 오구라 컬렉션은 수집 당시부터 도굴의혹이 제기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고, 1965년 한일협정 당시에도 한국 측의 대표적인 반환대상 품목으로 논의됐다. 그러나 한일협정 당시에는 ‘개인 사유품’이란 이유로 반환대상에서 제외됐고,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사망 이후 아들에 의해 1982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일간 문화재 반환문제가 공론화 될 때마다 오구라 컬렉션이 거론되고 있지만, 해방 이후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직접적 반환요구는 1965년 한일협정 이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일협정으로 ‘청구권이 완전히 종결’되었다는 일본 외무성의 논리를 뒤집을 만한 새로운 논거의 제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공개된 일본 외무성 문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이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여겨지는 오구라 컬렉션 가운데 약간의 물건을 정부가 구매하거나, 또는 오구라의 자발적 의사에 기초해 기증하는 것’을 검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재 문제의 해결 방침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1962년 2월 14일 외무성 동북아시아과에서 작성됐다. 일본의 시민단체 ‘한일회담 문서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외무성으로부터 받아낸 것이다. 1965년 당시 일본 외무성이 도굴 문제, 한국 국민들의 여론 등을 고려해 오구라 컬렉션을 일부 반환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컬렉션 일부를 반환하려는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은 ‘오구라 컬렉션 문제’를 바라보는 중요한 시사점이라고 생각한다. 오구라 컬렉션은 1982년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되면서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논의대상에서 제외한 ‘사유재산’이라는 이유가 소멸되었으므로 ‘사유품에서 국유물로 전환’이라는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쿄국립박물관의 소장품이 된 이후에도 반환운동을 진전시킬 대응은 미비하다.

| 도취로 수집된 컬렉션, 그리고 도쿄국립박물관
2010년 고려박물관 이소령 이사에 의해 발굴된 『오구라 컬렉션 목록』은 오구라 컬렉션 문제를 진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오구라 컬렉션을 수집한 오구라 자신이 사망하기 직전 유물을 어디서 수집했는가를 정리한 것으로, 유물의 정확한 출토지와 유통경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자료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이 목록에 대한 연구·조사가 없었지만 도쿄국립박물관 측은 오래전 자료를 입수하고 이를 토대로 연구 활동을 진행한 듯 보인다. 그렇다면 도쿄국립박물관 측은 오구라 컬렉션이 도굴품일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컬렉션을 기증 받았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한겨레신문과 사오토메 마사히로 도쿄대 교수와의 인터뷰에서도 은연중에 드러난다. 도쿄대의 사오토메 교수(조선문화연구과)는 전 도쿄국립박물관 학예사로 1982년 컬렉션 기증부터 1996년까지 관리와 연구를 전담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2010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오구라 컬렉션이 도굴품이란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취득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도굴품이 컬렉션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지만, 직접 도굴한 것이 아니라 합법 경로로 사들인 부분도 인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 근거로 오동나무 곽 안에 실로 매어진 채 유물 내력표와 함께 들어 있는 기증 전의 유물 상자들을 찍은 사진첩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는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의 윤리강령’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국립기관으로서의 품격을 훼손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오구라 컬렉션 목록』을 분석해본 결과 개인 간의 양도가 불가능한 문화재이거나 도굴품의 정황이 확실한 문화재로 파악할 수 있는 경우는 4건 34점이었다. 이는 모두 문헌적으로 확실히 입증할 수 있는 도굴 의혹품이다. 4건 34점은 다음과 같다. △ 조선대원수 투구 등 왕실유물 9점, △ 금관총 유물 8점, △ 부산 연산동 고분 출토유물 4점, △ 창녕 출토 유물 13점이다.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오구라 컬렉션 중 금관총 유물 8점은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경주 금관총은 1921년 조선총독부의 주도로 발굴된 신라 고분인데, 당시 경주박물관장으로 금관총 발굴에 관여했던 모로가 히데오가 금관총 발굴유물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어 모로가 히데오는 1933년에 박물관장이라는 직무를 이용해 발굴 유물을 빼돌리고 골동품상과 거래했다는 혐의로 체포되기까지 했다. 경주박물관의 주임이었던 모로가 히데오가 금관총 유물 반출 혐의로 조선총독부 당국에 체포되었던 일을 생각해 본다면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품은 모로가 히데오가 불법 반출한 도굴, 도난품이란 혐의가 짙다.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금관총 유물 8점은 모로가 히데오가 빼돌린 도난품이 도쿄국립박물관으로 불법 유통되었다는 점을 증명한다. 총독부가 발굴한 금관총 유물이 외부로 불법 반출되어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점은 충격적인 일이다. 게다가 1920년대 오구라도 자신의 수기에 경주 금관총 유물이라고 명시했고 도쿄국립박물관은 이를 알면서도 1981년 기증받았으므로 국제박물관 윤리강령을 위반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 무엇을 알고 있는가 보다 무엇을 행동할 것인가
사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에서 불법적으로 문화재를 약탈한 정황은 문화재청이나 국외 문화재재단측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오구라 컬렉션의 경우, 경주 금관총 유물·경남 창녕 출토 유물 등이 일제강점기 약탈된 유물임을 오래전부터 확인했으며, 출토지와 불법적인 유통 경로까지 파악을 마쳤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오구라 컬렉션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적극적으로 반환 요청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를 사실상 묵살하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미 출토지와 불법성을 확인하고도 아무 조치 없이 세월을 보내온 정부 당국이 한일협정문서 공개로 불법 약탈 사실을 추가 확인한다고 해서 적극적인 대응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정부는 2011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설립하고 문화재 환수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공언했지만 3년이 경과한 지금까지 국외 소재 문화재의 조사와 매입하는 문제에만 매달려 왔을 뿐, 실질적으로 약탈된 문화재 환수에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다. 일본의 문서 비공개 결정이 억울하지만 정부의 적절한 대응이 기대되지 않는 점 또한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해방 이후 70년 동안 미해결의 과제로 남겨진 도굴왕 오구라의 수집품 ‘오구라 컬렉션 환수’ 과제는 종결돼야 한다. 오구라 컬렉션 환수를 위해 7천만 겨레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현재 본인은 미완의 과제를 종결하기 위해 도쿄국립박물관과의 소송을 준비 중이다. 진실은 언제나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행동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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