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행복과 대자유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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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행복과 대자유를 향하여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5.2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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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기도와 수행

일반적으로 기도는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길 원하면서 불보살님께 가피를 내려달라고 비는 것으로서 기복적이고 타력적인 요소가 강하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는 관음기도, 지장기도, 미타기도 등 특정한 불보살님을 대상으로 기도 성취를 비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수행은 마음을 비우고 집중하고 관찰함으로써 근원적 괴로움을 없애고 스스로 마음을 닦아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자력적인 정진을 말한다.

| 기도, 내면의 근원적 힘을 되살리는 행위
아무리 수행을 하려고 해도 당장에 경제적으로 먹고 살기 힘들거나 큰 어려움과 역경에 처해 있는 사람이라면 수행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로 그런 때에 당장의 눈앞에 있는 어려움을 먼저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수행보다 먼저 기도를 한다. 예를 들어 한국불교에서 주요한 신행의 패턴은 자녀를 위한 수능기도, 남편을 위한 진급발원기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한 천도기도 등이다. 이를 통해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기도 인연으로 불교에 첫 발을 내딛는 불자가 많다. 원하는 기도 성취를 이룬 뒤에는 불법과 인연이 되어 자연스럽게 수행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기도는 좋은 방편이 된다.
그러면 기도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불보살님께 기도를 하면 그 가피를 실제로 받을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기도의 가피가 내려지는 것일까? 『금강경』에서는 “만일 형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한다. 불보살님은 우리 외부에 있는 어떤 형상에 속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외부의 불보살과 내면의 삼보는 둘이 아니다. 그렇기에 참된 기도는 자기 내면의 근원적인 본래 힘을 되살리기 위한 자력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실 기도는 타력이라고 알고 있지만 자력과 타력 또한 둘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기도는 바깥으로 특정 존재에게 성취를 비는 것이 아니다.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은 우리 근원의 힘이요, 우주법계의 근원적 힘이 나와 공명하고 가지력加持力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지력이란 나의 기도와 불보살님의 가피력이 하나 되어 나타나는 힘을 말한다. 근원에서 우리는 언제나 완전하며, 무한한 힘과 지혜와 자비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다. 기도의 가피라는 것은 곧 그 자성삼보의 무한한 지혜와 자비를 가져다 쓰는 능력인 것이다. 이처럼 불보살과 내가 둘이 아니며,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가피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이것을 양자수프(quantum soup)라고 설명한다. 즉 우주는 그 무엇으로도 될 수 있고, 그 무엇도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의 양자수프 상태로 있다가 인간의 의식과 의도가 일어나는 순간 그 무한한 가능성 중에 하나를 현실로 만들어낸다고 한다. 양자수프는 불교의 공성空性과도 같이, 텅 비어 있지만 그 속에 무한한 가능성의 현실이 갖추어져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무한 가능성의 양자수프는 우리가 원력을 세워 기도를 올림으로써 그 원력에 의식을 집중할 때 원력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의 가피력은 때때로 기적적인 치유를 가능하게도 하는데, 이를 양자물리학에서는 양자도약이라고 설명한다. 즉 우리는 하나의 우주에서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존재하다가 때때로 다른 가능성으로 양자도약을 한다고 한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세계에 존재하며 그 속에서 괴로워하고 살다가 기도를 통해 불보살의 가피, 즉 양자도약을 통해 기적적으로 치유되는 세계로 갑자기 옮겨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양자물리학에서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에서 중요한 점은 원력을 세워야 한다는 데 있다. 원력과 소원은 서로 다르다. 소원은 아상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소망이지만, 원력은 아상을 넘어 일체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이타적 서원이다. 개인적인 소원은 자신 개인의 복력을 가져다 쓰는 것이지만, 이타적인 발원은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이 우주법계의 무량대복과 불보살님의 무한한 가피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원하는 바의 원력을 기도하는 중에 계속해서 빌면서 되뇔 필요는 없다. 기도를 할 때는 처음과 끝에 발원문을 한 번씩 읽을 수는 있겠지만, 기도 중간에 계속해서 원하는 바를 떠올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기도할 때는 생각이나 바라는 바를 내려놓고 오직 그 기도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 원력을 이루는 것은 모든 생각들이 내려놓아진 텅 빈 내면의 깊은 공간으로 들어감으로써, 그 텅 빈 공의 자리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깨어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참된 기도는 곧 수행과 다르지 않다. 기도도 수행처럼 기도하는 순간에는 모든 잡념과 망상을 내려놓고[止] 온전히 그 순간에 깨어있어야[觀]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도를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이타적인 원력을 세우며, 내면의 본래청정성을 일깨우다보면 저절로 보다 깊은 수행의 세계와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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