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나서야 비로소 기분 좋아지는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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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나서야 비로소 기분 좋아지는 음식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4.0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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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 원장 우관 스님

| 한국음식의 원형을 찾아 헤매다

참으로 놀라운 것이 지역에 따라 재료는 다르다 하여도 그 조리법은 강원도 심심산골이나 황해의 먼먼 섬이나 거의 같았다. 간장, 된장, 고추장,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설탕 등등의 기본양념 아래 대한민국의 모든 음식은 균질화되어 있었다. 바깥출입이라고는 동네에 마실 나간 것이 전부인 호호할머니의 음식까지도!
균질화의 원인으로 텔레비전이 눈에 들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텔레비전 안테나는 반드시 있었고 중앙의 균질화된 조리법은 전파를 타고 전국의 안테나에 꽂혔던 것이다. 이후 “혹 사찰음식은?” 하고 여기저기 사찰을 다녔다. 부엌은 ‘보살님’ 차지였다. 그 보살님도 연변보살님, 필리핀보살님…. 부엌도 이미 현대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큰 사찰은 대형 밥솥이며 찜기 등으로 밥하는 것이 여느 단체급식소와 같았다. 다른 점은 딱 두 가지. 오신채와 육류가 없다는 것. 사찰음식을 ‘조사연구’하는 스님들도 뵈었다. 사찰음식이 ‘요리’의 대상이 아니라 ‘조사연구’의 대상이라는 것이 사찰음식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사라졌으니 이를 조사하여 기록하고 연구하여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사찰음식에 그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련이 있었다. 유물론자이기는 하나 산중의 절에 들면 신비한 기운을 느끼며, 그 신비로운 기운이 음식에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 미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사찰음식에 대한 자료를 뒤지다 한 스님의 논픽션을 읽었고, 그 글을 통하여 스님이나 대중이나 먹는 것 앞에서는 똑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그 식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1973년 신동아 논픽션 당선작인 ‘선방일기’라는 작품이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보낸 동안거의 일을 적고 있다. 보통은 선승의 고단한 수행기로들 읽으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에는 선승의 식량보급투쟁기로 읽혔다. 그 당시는 아직 식량이 부족한 시절이었고 산중의 사찰은 그 정도가 심하였다. 어떡하면 배를 불릴 수 있을까가 가장 심대한 화두였을 수 있었다. 이후 사찰음식에 대한 기대는 닫았다.

| 먹을 때만큼 먹고 나서가 중요한 것

2000년대 들어 사찰음식은 부흥기를 맞았다. 웰빙, 로하스 등의 개념 안에서 사찰음식이 주목받게 되었다. 현대인의 건강염려증의 한 표현일 수 있다. 육식보다 채식을, 가공식품보다 자연식품을 먹자는 생각이 사찰음식을 사찰 밖으로 불러내었다. 여기저기 사찰음식점이 서고 사찰음식 강좌가 열렸다. 이 세상의 모든 음식은 동등한 격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별로 달가워 보이지 않았다. 한식집의 음식에서 고기와 오신채를 뺀 정도의 음식을 가지고 사찰음식이라 하는 것이 어딘지 빈곤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불광』에서 이 칼럼을 의뢰하였을 때에 기자에게 위의 말을 대충 하였었다. 도대체 사찰음식의 의미를 나는 모르겠고, 또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사찰음식이란 것을 곱게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나와 대담하는 스님이 기분 상해하면 어떡하냐 하였다. 그런지 몇 달이 지나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분과는 말씀이 통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우관 스님을 뵈었다.
우관 스님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부러 검색도 하지 않았다. 선입견을 가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몰랐다. 우연히 만난 듯이, 그렇게 준비하여 갔다. 스님과 대화를 하면서 그 내용을 따로 적지도 않았다. 구체적 내용보다 ‘감’이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였다. 3시간 여의 대화가 있었는데, 주로 나는 물었고 스님은 답하였다. 그 핵심만 기억나는 대로 적는다.
- 예전에 어떤 스님이 쓴 논픽션을 보았는데, 1970년대 초반인가 그래요. 동안거에 들어가서는 온통 먹을거리 투쟁을.
“그때에 다 가난하게 살았잖아요. 사찰은 더했을 거예요. 대중이 넉넉하지 않은데 스님들이 넉넉하게 먹을 수 없는 것이지요. 제가 들어간 강원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다 짠 반찬밖에 없어서 무척 고생을 했지요. 강원에 약국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이것저것 사먹고. 한번은 밖에 나가 김을 먹는데, 그게 얼마나 맛있는지 한 자리에서 그걸 다….”
당신의 식탐에 대해 숨김이 없었다. 솔직한 분이라 여겼다.

- 시중에 파는 사찰음식은 어때요? 저는 영….
“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호사스럽고 너무 맛나게만 차리는 것이 아닌가 싶고. 스님들은 그렇게 먹지 않아요. 여기 취재 온다 하였을 때에도 제가 평소 먹는 김치하고 나물이나 보여줄 수 있을까, 특별난 것이 없다고 했지요. 그래도 그 음식은 그 음식대로 의미가 있어요.”
의미가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멈칫하였다. 콩고기에 가양산삼까지 올리는 사찰음식의 ‘외도’를 스님이 모를 리가 없을 것인데 말이다. 이해되지 않아도 일단은 그냥 넘겼다. 함께 점심을 먹었다. 몇 가지 나물에 장아찌, 김치, 국이 전부였다. 고기와 비린 것만 없다뿐이지 시골의 소박한 밥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짰으나 깨끗한 뒷맛이 있었다. 마늘, 파 같은 오신채가 안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음식은 마늘과 파 등의 향신채소를 과다하게 쓴다. 그 때문에 재료의 본디 맛은 없다. 오직 양념으로 버틴다. 슴슴한 맛의 한국음식을 위한 한 돌파구로 사찰음식이 주목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찰의 김치에서 특히 오신채 부재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데, 먹고 난 다음 입에 잡내를 남기지 않는다. 음식은 먹을 때만큼 먹고 나서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사찰음식은 먹고 나서야 비로소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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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것만으로 되었지 뭐”

점심 후 다탁에 앉았다. 스님이 드립 커피를 내렸다. 약배전의 커피였고 물의 온도를 낮게 잡았다. 약간의 신맛이 돌고 쓴맛은 은근하였다. 두 번째 잔에서는 여기에 물을 타 흐리게 하였다. 미지근한 온도에 흐릿한 커피였다. 진하고 뜨거운 커피이면 향에 집중할 필요가 없으나 이처럼 미지근하고 흐릿한 커피는 오히려 향에 집중하게 되어 있다. 인간도 그렇다. 순하게 스밀 줄 알아야 한다.
시판 사찰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또 꺼내었다. 불교와 전혀 어울려 보이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기는 해도 나름의 의미는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찰음식이라면서 먹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순간 내 머릿속은 번쩍 하였고, 스님의 말을 잘랐다. 그 뒷말은 내가 해도 되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사찰음식이라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평소에 먹는 음식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는 뜻이지요!” 스님이 웃었고 나도 웃었다. 참 간단한 이치인 것이다. 사찰음식이 호화롭건 말건, 콩고기와 가양산삼을 올리든 말든, 세속의 한정식 같든 말든, 그냥 사찰음식이라는 것만으로 대중에게 조그만 성찰을 얻어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세상에는 있기만 하여도 되는 것이 있음을! 우관 스님은 어느 틈에 내게 스몄다. 커피 덕인가?
경기 이천의 감은사는 작았다. 오르는 길에 덤불 사이로 기와를 보았다. 본당은 소졸小卒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였다. 곁에 ‘마하연사찰음식연구소’라 쓰인 건물을 따로 두었다. 그 앞마당에는 오래된 석탑이 있고, 그 뒤로 장독대가 있다. 옛 절터에 다시 건물을 세웠는가 싶었는데, 그렇게 보이라고 꾸민 것이라 하였다. 꾸민 것?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절이 있기만 하여도 되는 것이기에.
산에 갈 때 나는 늘 절을 찾는다. 불교도가 아니면서도 절 마당에 서면 마음이 참 편하기 때문이다. 그 뜻을 알 길 없는 불경 읽는 소리에도 정신이 맑아진다. 내게 욕심 내지 마라 하는 소리인가 보다 한다. 목탁소리, 풍경소리에도 마음이 선선해진다. 불교도가 아닌 내게는 불교가 별 의미 없을 수도 있는데 절 마당이며 불경 소리, 목탁소리, 풍경소리에 내 영혼은 흔들린다. 거기에 절이 있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마당에서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스님이 나더러 “도반을 만난 것 같다” 하였다. 나는 오래 전에 헤어졌던 친구를 만난 듯하였다. 나이도 비슷하다. 지나는 길이면 놀러오라 하였다. 부러 들르지 않아도 이천의 이 근방을 지날 때이면 스님을 떠올릴 것이다. 거기에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 내겐 한 의미가 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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