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C.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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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C.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 이경덕
  • 승인 2014.03.2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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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대 문명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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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많은 판단을 내리며 사례는 북한이나 일본 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 공감과 충돌의 잣대는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흔히 “일본 사람들은 치사하다”, “중동 사람들은 폭력적이다”, “경상도는 음식이 맛이 없다”, “혈액형 A형은 소심하다” 등의 판단을 자주 내리고 쉽게 말한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 가운데 치사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으며 한국사람 가운데 치사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중동 사람들 가운데 폭력적인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으며 한국사람 가운데 폭력적인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것은 주변을 돌아보고 신문을 펼쳐보면 어디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위에 제시한 말들이 쉽게 공감을 얻는다는 점이다. 물론 대화 장소에 말이 통하는 일본사람이나 중동사람이 있다면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부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쉽게 판단을 내리고 쉽게 공감을 얻는다.
 
이와 달리 타자와 서로 옳다고 주장하며 말다툼을 벌이는 경우에도 대체로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인 대화가 아니라 “일본 사람들은 치사하다”와 같이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들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진보와 보수의 다툼도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분명한 전망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판단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이렇게 보면 고개를 끄덕이는 공감이나 말다툼 모두 동일한 판단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판단을 내리는 것일까?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그 판단을 가늠하는 ‘잣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야생의 사고』는 그 ‘잣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 야생은 야만이 아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의 1장에 붙인 제목은 ‘구체성의 과학’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원시=미개’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된 1962년에는 그런 생각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당시, 원시인은 미개하고 따라서 원시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미개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서구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 주위를 떠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원시적’이라는 말에서 태고의 것을 연상하는 동시에 미개하고 열등한 이미지도 함께 떠올린다. 북극 근처 툰드라 지방에 살고 있는 이누이트(서양 사람들이 에스키모라고 부르는 사람들로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누이트는 ‘인간’이라는 뜻이다.)를 한번 생각해보자.
 
그들은 추운 지방에서 소규모의 무리를 이루어 순록을 키우며 유목 생활을 한다. 이들의 삶은 원시적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미개하고 열등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과학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문화생활을 하는 도시민들과 달리 본능적이고 경제적인 요구에 의해서만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갖기 쉽다. 
그러나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들에게 필요한 과학이 매우 발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얼음에 대한 다양하고 깊은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일기예보를 통해 날씨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얻지만, 그들은 그들이 지닌 ‘구체적인 과학’을 통해서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야생의 사고』의 1장 ‘구체성의 과학’에는 이런 사례가 수도 없이 많이 등장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미개하다고 생각되는 원시부족들이 자기들에게 필요한 주위의 동물과 식물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또한, 현대문명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나무를 구별하지 못하고 그냥 ‘나무’라고 부르는 것을 원시부족들은 그 속성까지 이해하고 있음을 짚어낸다.
 
이런 지적이 의미하는 것은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사무능력이나 기계를 다루는 과학적 능력이 있고, 자연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동식물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면 어느 쪽이 더 우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삶에 맞추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표현하면 인류의 삶에 우열이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 삶이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 문화라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우열이 있을 수 없다는, 이른바 ‘문화상대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 신화, 편견과 차별을 넘어 인류를 말하다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이러한 지적은 어쩌면 20세기의 가장 의미 있는 사고의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반향이 컸다. 우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우열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기에 그렇다. 특히 15세기 이후 서양이 득세하면서 그들이 지니고 있던 방법론인 우열의 이분법, 다르게는 선악의 이분법을 타파할 수 있는 단서와 타파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위의 지적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서구중심주의는 자기들의 문화와 문명은 뛰어나고 동양의 것은 원시적이고 미개하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른바 ‘오리엔탈리즘’이 그것이다. 이 논리를 토대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대하고 자원을 착취했던 제국주의가 성립될 수 있었다. 좀 더 나아가면 남자와 여자의 차별, 인종의 차별, 종교의 차별 등 인류가 겪어야 했던 많은 비극들이 이 논리를 토대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야생의 사고』는 인류의 해묵은 편견을 지적한 다음, 인류가 지니고 있는 사고의 본질을 찾기 위해 언어학의 연구를 토대로 사고가 지닌 구조에 대해 탐색했다. 그 탐색은 토템과 신화, 의례 등 인류의 오래된 유산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명쾌한 논리를 통해 인류의 사고가 지닌 구조를 밝혀낸다.
 
특히 레비 스트로스는 막연히 옛날이야기로 치부되던 신화가 인류의 근원적 사고를 저장하고 있는 보물창고임을 밝히고 신화를 분석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를 통해 신화가 인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열쇠임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레비 스트로스는 이후 20년에 걸쳐 신화 연구에 매진했다.
 
『야생의 사고』의 마지막 장은 ‘역사와 변증법’으로 문명과 미개를 나누던 잣대 가운데 하나였던 역사와 역사에 대한 관념을 파도 앞의 모래성으로 만들었다. 흔히 ‘구조주의’라고 불리는, 레비스트로스가 제시한 이러한 일련의 사고 혁명은 J.P. 사르트르로 대표되던 서구의 실존주의와 역사 주의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레비 스트로스는 인류에 대해 여러 편견을 접고서 다시 생각하고 바라볼 것을 제안했으며, 그 결과 서구 사상계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이런 레비 스트로스의 주장은 반세기도 전에 제기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편견과 차별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로 소통이 단절되고 그로 인해 생긴 병든 삶을 ‘힐링’이라는 허울 속에서 치유하려고 애쓰지만 그 병의 원인을 바로잡지 않으면 허사일 뿐이다. 그래서 레비 스트로스의 나직하지만 묵직한 주장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이경덕
신화연구가. 한양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한양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아프로디테, 시네마천국에 가다』, 『신화 읽어주는 남자』,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신화』, 『하늘빛 한국신화』, 『그리스신화 100장면』, 『신화로 보는 인류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신화로 보는 악과 악마』 등 신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책을 냈으며, 『신의 지문』,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 등 문화와 신화의 관계를 규명하는 책들을 번역했다. 현재, 대학에서 신화, 종교, 아시아문화 등을 강의하며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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