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고향은 충북 제원군 덕산면 선고리입니다. 저의 조 부님께서는 자손 기르시기에 어려움이 많으셨답니다. 정월이면 할아버지께서 할머니께 쌀 한 말을 뉘와 돌을 골라새 자루에 담고 새 무명버선 두 켤레를 기어서 준비해 달라고 하시면 할머니는 정성껏 마련해 드린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준비물을 가지고 풍 기 부석사에 기도를 가십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버선을 한 켤레는 스님이 또 한 켤레는 할어버지가 신으시고 밤새워 정진을 하셧답니다. 저의 고향 덕산에는 우서 깊은 사찰이 있는데 하나는 신륵사이고 하나는 고산사였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봄, 가을 두 계절이면 소풍을 절로 갑니다.
제가 이십 세가 되어 홍씨 가문에 출가하였습니다. 시댁도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시부모 모시고 어려운 살림하면서 농사일도 열심히 도와가면서 청룡사에는 일 년 두세법 갔으며 남편 생일공양은 부처님께 올렸습니다. 직장인인 남편은 지방으로 전근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 때 시어머니께서는 중풍으로 전신마비가 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약은 써도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그 와중에 시아버님은 해수로 출입을 못하시고 두 분이 나란히 누워 계셨습니다. 저는 박봉을 가지고 어른 봉양과 아이들 교육시키느라 어려움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시부모님 병간호가 거듭 되다보니 어느새 십삼 년이 흘렀습니다. 일년에 요를 두장씩 썩어서 버립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해도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중 포천으로 전근을 갔습니다. 시어머님은 긴 투병 끝에 노망을 하셨습니다. 집주인니 젊은 사람이었는데 이 집에서 돌아사시면 무섭다면서 모시고 나가라고 합니다. 나중에는 말하기 곤란하니까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와 독촉을 했습니다. 이침에 일어나면 주인과 마주치기가 두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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