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따라 마음 따라] 텅 빈 것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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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따라 마음 따라] 텅 빈 것이 살아있다
  • 혜민스님
  • 승인 2014.02.1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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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성(佛性)은 텅 빈 채로 있다. 즉, 아무 것도 없는 채로 살아있다. 그런데 이것을 경험하지 않고 관념이나 생각으로만 이해하려고 하면, 마치 텅 빈 무언가가 따로 있다고 상(相)으로써 잡으려 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무아(無我)’ 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착각한다. 심지어는 ‘있다’, ‘살아있다’는 말에 사로잡혀 힌두교의 범아론적 가르침과 무엇이 다르냐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래서 ‘본래청정, 본래면목, 주인공’을 말하는 선불교를 포함한 대승불교 전체가 다 부처님 초기 근본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 무아와 무자성을 깨닫고 난 후

그런데 그게 아니다. ‘없다’는 것은 중생들이 ‘몸, 생각, 느낌’을 나라고 동일시하는, 그 착각을 부처님께서 쳐내신 것이다.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이 홀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緣起)되어서 아주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따로 존재하는 ‘자성(自性)’이 없다는 말씀이다. 실제로 중생들이 ‘나’라고 집착하는 몸과 느낌과 생각의 관점에서 보면, 틀림없이 ‘무자성’이고 ‘무아’다. 정말로 그렇다. 그런데 ‘무자성’이고 ‘무아’인 것을 깨닫고 난 후엔 어떻게 될까?

그 후의 일을 누군가가 진작 소상히 일러 주었더라면, 오랜 시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고 고생도 덜 했을 텐데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그 무자성이고 무아라는 것을 무언가가 살아서 안다는 사실이다. 내가 무아임으로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것이 끝인 줄 알았는데, 무언가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살아서 안다. 이것이 가장 큰 신비이다.

아무 것도 없으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그 무엇도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분명 생각이 완전히 끊어지고 난 후에도, 무언가가 살아서 텅 빈 가운데에서 ‘무아, 무자성이구나’하는 것을 즉시 안다. ‘지금 바로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구나’, 그래서 반야심경에서 말하듯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고로[以無所得故]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점을 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절대 관념이나 생각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배고플 때, ‘아! 배고프구나’하는 것을 생각을 통하지 않고도 바로 즉시 알 수 있듯, 그냥 무언가가 바로 안다. ‘나’라고 집착했던 것 그리고 무자성인 세상이 둘 다 텅 비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와 세상을 둘로 나눈 것은 오직 생각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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