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사의 묘미는 앙상함 속의 풍요로움이다. 서늘한 풍광 속에서, 비우고 비워 비로소 충만해짐을 깨닫는다.
고요하고 고요하고 또 고요하다. 벌 받는 자세로 겨울을 나고 있는 나목裸木을 바라보며 치악산 명주사로 들어선다. 자신의 모든 것을 떨궈낸 채 볼 품 없이 떨고 있는 나무들에게서, 비우고 비워 겨울을 견디는 지혜를 배운다. 나는 무엇을 그리도 채우려, 채우려 했단 말인가. 한 마음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제서야 치악산 자락에 포근히 안겨 있는 명주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단출한 규모다. 법당과 탑이 없었다면 아무도 사찰임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다. 법당마저도 전통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 황토벽에 너와지붕을 인 팔각 모양의 법당이다. 게다가 단청도 입히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즉 전통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명주사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지정하는 템플스테이 운영사찰에 번번이 속하지 못했다. 3전 4기 만에 2011년 템플스테이 운영사찰로 지정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통성이 결여된 독특함 때문에 명주사는 다른 사찰과 차별성을 갖는다. 법당은 ‘강원도가 선정한 아름다운 집’에 선정되는 등 매혹적인 건축물로 호평 받는다. 또한 산세를 가리는 여타 큰 건축물이 없으니 어디서든 자연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다. 그리고 명주사만의 특별한 한 가지, 바로 국내 유일의 고판화박물관이 있다는 점이다. 명주사와 고판화박물관의 만남은 뮤지엄스테이museum-stay 형식의 ‘숲 속 판화학교’라는 문화형 템플스테이를 탄생시켰다. 지난 해 4,000여 명이 참가해, 판화와 전통 책 만들기 체험을 하며 우리 인쇄문화의 우수성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주지 선학 스님의 판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몸과 호흡과 마음이 하나되는 명상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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