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생태계도 살리고 꿀도 먹고
상태바
도시 생태계도 살리고 꿀도 먹고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2.08 0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 채밀하던 날

얼마 전 TV에 재밌는 장면이 소개됐다. 서울시청 옥상에 놓인 벌통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벌통에서 채밀(採蜜, 꿀을 따는 행위)을 하고 있었다. 빌딩 숲 한복판에서 이뤄지고 있는 양봉 현장. 생소했다. 하지만 신선했다. 저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 도시양봉은 세계적인 트렌드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시골보다도 도시에서 하는 양봉이 더 좋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도시는 시골에 비해 고온건조한 편이다. 그래서 열섬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그런데 꿀벌은 이렇게 고온건조한 환경을 더 좋아한다. 활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더 많은 꿀을 얻을 수 있다.

일본 도쿄와 나고야, 워싱턴, 홍콩, 덴마크 코펜하겐 등 세계 대도시에서 도시양봉 붐이 일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 미술관, 오페라 가르니에 등의 도심 건물 옥상에는 벌통 300개가 놓였다고 한다. 심지어 영국 런던에는 무려 3,200개의 벌통에서 나온 꿀벌 수만 마리가 도시 하늘을 날아다닌다. 도시양봉은 세계적인 트렌드인 셈이다.

이런 도시양봉을 널리 알리고 있는 단체가 있었다.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대표 박진)이 그들이다.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은 청년 5명이 힘을 모아 도시양봉에 참여한 케이스다. 현재 은평구 갈현동과 한강 노들섬에 양봉 텃밭을 설치해 직접 양봉을 하는 한편, 도시양봉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교육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도시양봉의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찾아간 곳은 한강 노들섬의 노들텃밭이다. 한강대교 한복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이곳에 대규모 도시농업 텃밭이 조성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조합원들이 이곳에 첫 벌통을 놓은 것도 가까운 곳에 텃밭들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었다.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날에는 마침 꿀을 따는 일정이 잡혀있었다. 이날 채밀에 동참한 인원은 10여 명. 항상 10명에서 15명 정도가 매주 주말 함께 모여 양봉을 배우고 체험한다. 그런데 참가자 중 절반이 여성이었다. 벌에 쏘이는 게 무섭지 않을까?

“처음에는 겁이 나기도 했어요. 사실 많은 여성들이 벌에 쏘이는 걸 두려워해요. 그런데 한 번이라도 우리 텃밭에 와본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아요. 봉면포(안전을 위해 입는 망사옷)를 입으면 하나도 겁 안 나요. 혹시 몰라서 약도 준비해뒀어요. 그만큼 안전해요.”(이주희, 33)

채밀을 위한 도구들이 준비되자 채밀에 대한 강의가 시작됐다.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의 모든 활동은 교육활동과 함께 병행된다. 양봉에 대한 교육은 조합원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벌통에 설탕을 넣는다고 시중에 파는 꿀을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하지만 이걸 아셔야 합니다. 꿀을 따는 것은 벌들이 먹어야 할 것을 사람들이 훔치는 행위예요. 그래서 벌들이 먹을 양식으로 빈 벌통에 설탕을 채워주는 겁니다. 설탕으로 꿀을 치는 행위는 양봉협회에서도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그리고 꿀의 색이 진할수록 오래 되고 좋은 꿀이에요.”

 
|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가능한 양봉

박진 대표는 이날이 올해 마지막으로 채밀하는 날이라고 했다. 10월 이후에 하는 채밀은 꿀벌의 목숨과 맞바꾸는 행위라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밀랍으로 밀봉된 벌집을 골라 꿀을 딴다고 했다. 봉제된 이후 40~45일이 지나야 꿀이 제대로 숙성되기 때문이다.

교육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봉면포로 무장하고 벌통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노들텃밭에 마련된 벌통은 총 18개. 은평구의 갈현텃밭에는 10개의 벌통이 놓여있다. 벌통의 뚜껑을 열고 벌집을 꺼내 꿀의 유무를 하나씩 확인하자 수천 마리의 벌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당황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봉면포의 위력은 생각보다 뛰어났다. 박진 대표가 꿀이 가득 찬 벌집을 꺼내자 참가자들 입에서는 탄성이 터진다. 그리고 채밀을 해도 될 만한 벌집들을 골라 챙겨 나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꿀을 받을 차례. 벌집의 밀랍 뚜껑을 벗겨낸 뒤 채밀기에 넣고 돌리면 원심력에 의해 꿀이 벌집에서 빠져나온다. 골라온 벌집을 모두 채밀기에 넣고 돌린 후 채밀기 하단의 마개를 여니 꿀이 쏟아져 나왔다. 1.5리터 페트병을 가득 채울 만큼 상당한 양이다. 진한 색의 꿀은 향기가 대단했다. 이렇게 공동으로 채취한 꿀은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350g당 2만5천 원. 건강하게 키워져서 채밀된 꿀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도시양봉을 시작한 걸까? 박 대표는 꿀벌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인간에 의해 점점 망가져 있는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무언가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생각의 일환으로 도시양봉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른 참가자들의 생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