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산증인 부처님과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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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산증인 부처님과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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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07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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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흥국사 <영산전>의 장엄

01 영산전 건물. 조선말기 양식.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올린 형태로 공포의 각 면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두가 돌출되어 있다. 영산전 현판과 기둥의 주련은 모두 흥선대원군의 필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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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남양주 흥국사 만월보전의 잡상. 잡상은 기와지붕 추녀마루 위에 놓는 와제 토우들이다. 궁궐 건축에서나 볼 수 있는 액막이 장식이 사찰 건물에 적용된 매우 드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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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영산전 내부 천정의 단청.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놓아두지 않고 그림으로 채웠다. 불화를 그리는 화승들의 양성소였기 때문이다.

 
 
서울 근교에는 조선말기의 독특한 불교미술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사찰들이 몇몇 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구석구석 멋스런 장식들로 가득한 이들 사찰은 왠지 모를 친근감이 든다. 마치 한 폭의 형형색색 민화를 펼쳐 보는 듯한 느낌의 공간. 지방의 유명 사찰들의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아늑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독특한 정서가 흐른다.(도판01) 남양주 흥국사도 그런 매력을 가진 곳 중에 하나다. 처마 및 공포, 외벽, 계단, 내부 천정 등 곳곳을 아름답게 장식하여, 경내를 돌다보면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느낌이다.(도판03) 게다가 소장 불화나 불상들이 범상치 않은 수준을 자랑한다. 이처럼 구한말 불교미술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일련의 사찰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대개가 조선 왕실과 관계 깊었던 ‘원당願堂’ 사찰이라는 점이다. 마음 한 켠 늘 가보고 싶었던 흥국사. 경내에 들어서니 사찰의 가장 전면에 세워진 ‘대방(大房: 주불전 맞은편에 자리한 건축물. 큰 방과 누樓·승방 및 부엌으로 구성되는 복합건물로 왕실의 기도처·염불당·인법당 등 다양한 기능으로 쓰인다.)’ 건물이 한창 복원 공사 중이다. 요즘 불화 답사를 다니다보면 공사를 안 하고 있는 사찰을 만나기가 힘들다. 특히 ‘힐링’이 하나의 문화상품이 된 요즘, 템플스테이를 위한 요사채 공사들이 활발하다. 불과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인적조차 뜸했던 조용한 곳이었는데, ‘여기가 거기였나?’ 할 정도로 사찰들의 주변 풍경은 급격하게 변하고 또 주말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최근 몇 년 간 불교가 얼마나 대중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지 그 붐이 실감난다.
 
| 조선왕실 ‘원찰’로서의 흔적들

흔히 사찰의 일주문을 들어서면 만세루가 있는데, 흥국사의 경우 그 자리에 궁궐 후원이나 왕족 별장에서나 봄직한 건물이 자리한다. 대방은 왕실 원당 사찰에서 만날 수 있는 특징적 건물이다. 보통 그 앞마당에는 연못이 있어 이를 감상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연출된다. 흥국사 대방 앞에도 연못이 있었으나 지금은 메워져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전면에 세워진 이 건물 때문에, 처음 들어설 때는 으리으리한 사대부집 안으로 들어서는 느낌이 난다. 이 건물을 지나야, 사찰의 면모를 갖춘 주불전의 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다.

또 흥국사에서만 볼 수 있는 남다른 특징은 지붕 위의 ‘잡상雜像’이다.(도판02) 잡상은 추녀마루 위에 장식되는 액막이 토우들로서, 상서로운 짐승· 해치·손오공·용·봉황 등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들은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에서 볼 수 있는 전유물인데, 놀랍게도 이곳 흥국사 만월보전의 팔작지붕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흥국사는 선조가 조선중기 1568년에 그의 아버지 덕흥군을 덕흥대원군으로 추존하고 그 묘소 근처의 본찰을 원당으로 중건하면서 덕흥사로 불렸다. 대원군이란, 조선시대에 왕위를 계승할 적자손嫡子孫이나 형제가 없어 종친 중에서 왕위를 이어받을 때 신왕의 생부生父를 호칭하던 명칭으로, 대원군 제도의 시조가 바로 덕흥대원군이다. 그 후 인조, 정조를 거쳐 고종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국가의 내탕금을 사찰 후원금으로 원조 받았던 곳이다. 특히 현재 남아있는 불화 및 불상들은 흥선대원군 일가의 발원과 관련 깊은 것들이 많다. 사찰의 내력을 보면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위해 왕실의 지속적인 후원이 꼭 필요했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흥국사는 1790년(정조 14년)에 봉은사·봉선사·용주사·백련사 등과 함께 오규정소五糾正所로 선정되었다. 오규정소는, 관리들이 상주하며 왕실의 안녕을 빌고 또 주변 사찰의 기강과 승풍을 단속하던 곳이다.

 
| 서울·경기지역 불화 제작의 중심지

흥국사는 대웅보전·영산전·시왕전 등 경내 거의 모든 전각 외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건물 내부 천정 단청과 기둥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냥 놓아두지 않고 그림으로 채웠다. 온통 그림투성이인 사찰. 아니나 다를까, 흥국사는 불화를 그리는 화승畵僧들의 양성소였다. 특히 서울·경기지역의 불화 제작을 담당하는 화승들을 배출하고 또 그들이 거주한 경산화소京山畵所가 바로 이곳 흥국사이다.

특히 영산전 벽화가 인상적이라 소개하고자 한다.(도판04) 전각 오른쪽으로 돌면 가장 먼저 ‘문수동자와 사자’ 그림(도판05)을 만날 수 있는데, 여느 문수상과는 매우 다르다. 문수보살(또는 동자)은 대개 사자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서는 사자와 대치하는 장면으로 그려졌다. 매서운 눈동자와 거대한 푸른 몸집,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초록빛 갈기가 압권이다. 마치 해치처럼 묘사된 맹수를 손 하나 까딱 않고 부리기라도 하는 듯 문수동자는 단엄하게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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