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불이不二의 경계를 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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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 불이不二의 경계를 설하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2.05.2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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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책



말의 허구성과 생각의 공성空性을 설한 『유마경維摩經』

대승불교의 사상과 실천의 정수는 ‘안으로 보리를 체득하고[內求菩提] 밖으로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外化衆生]’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써 생사를 해탈하고 자비로써 열반마저 버리고 중생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보살은 중생이 아프면 따라 아프다. 즉 보살은 일체의 병이 공한 줄 이미 깨달았지만, 중생이 병이 들어 아파하므로 그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자비를 실천한다.
지혜와 자비를 함께 닦는 것[悲智雙修]이 대승수행자의 수행 덕목이다.
이와 같은 보살의 세간적 실천을 설한 대승경전이 바로『유마경』이다.

유마 거사의 가르침, 불이행不二行
육조 혜능 스님의 설법집인『단경壇經』의 종지宗旨또한 열반의 불성佛性과 반야의 공空을 회통하여 유마의 불이행不二行으로 회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열반경』의 불성사상과『반야경』의 공사상을 융회融會하여『유마경』에서 설하고 있는 불이중도행不二中道行의 실천으로 회통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조사선의 교과서인『단경』의 실천종지가 바로『유마경』의 핵심 사상인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실천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육조 혜능이 행자의 신분으로 오조 홍인으로부터 법을 인가받고 16년 동안 거사의 신분으로 숨어 지내며 중생과 하나 된 행화行化의 인연과 대승불교의 정수인 불이중도不二中道의 실천을 표방하고 있는『유마경』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마경』의 원래 이름은『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이며, 또한『정명경淨名經』으로 불리기도 하며, 초기 대승에 속하는 경전이다. 『유마경』은 그 내용으로 살펴볼 때, 첫째 소승보다 대승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둘째 출가에 비해 재가보살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며, 셋째 공空사상에 입각한 보살의 사회 윤리적 실천을 강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예로써 ‘방편품’에서 사리불을 위시한 성문의 십대제자들이 모두 유마 거사의 꾸짖음을 받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여 성문과 연각의 이승二乘은 부처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음을 설하고 있음에서 소승을 배격하고 대승의 사상과 실천을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출가 수행자가 아닌 재가불자인 유마 거사를 경전의 중심인물로 설정함으로 해서 재가보살을 통한 생활불교, 대중불교의 당위성을 설하고 있으며,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따라서 보살도 아프다는 유마의 병을 통해 공사상에 입각한 사회 윤리성을 강조하여 대승보살의 중도실천을 선양하고 있는 것이다.
『유마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설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부사의해탈법문不思議解脫法門’과 ‘불이법문不二法門’이다. 먼저 불가사의해탈법문에 대해 ‘부사의품’의 내용을 통해 살펴보면, 불가사의해탈과 신변(神變, 신통변화)을 설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공삼매空三昧를 내용으로 하는 불가사의해탈을 신변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높이가 8만4천 유순이나 되는 큰 사자좌(법상)를 유마의 좁은 방에 입실케 함으로 해서 깨달음 자체인 부사의해탈을 요익중생의 구체적 활동인 신변(신통변화, 지혜의 작용)으로 보여줌으로써 삼매와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定慧雙修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불가사의해탈의 10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함으로써 공空을 통한 상즉상입相卽相入의 불이중도不二中道를 설하고 있다.

불이不二의 논리적 근거는 공空
다음으로 ‘입불이법문품’에 설해진 불이법문에 대해 살펴보면, 법자재 보살을
필두로 한 삼십일 보살과 유마의 대론, 그리고 마지막에 문수와 유마의 대론을 통해 그 유명한 ‘유마의 일묵(一默, 침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삼십일 보살의 각론과 문수보살의 결론을 통해 교敎를 말하고, 마지막 유마의 일묵으로 선禪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여러 보살을 통해 교를 설하고 구경에 유마의 침묵으로 선을 설한 형태로 보아서는 선禪이 교敎보다 우위에 있음을 설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앞에 설한 교를 부정하고 선을 나타내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삼십이 보살이 설한 교敎와 유마에 의해 드러난 선禪이 지향하는 바가 일치하며(禪敎一致), 또한 선과 교가 함께 수행되어지는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전통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달마 역시『이입사행론』에서 자교오종藉敎悟宗의 가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자교오종이란 교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선의 종지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입불이법문품’에 설해진 삼십이 보살의 불이법문을 내용 별로 묶어 언급해 보면, 1)존재론적 입불이入不二, 2)견성으로서의 입불이, 3)견성에 의한 무생無生에 있어서의 입불이와 실천행으로서의 입불이, 5)언어 문자의 초월로서의 입불이, 6)일묵一默의 자증自證으로서의 절대적 입불이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이二란 상대적 대립의 차별 세계를 말하며, 불이不二란 상대적 차별 경계를 극복한 절대적 통일統一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적 차별 경계를 극복하여 절대적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교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여기서 불이의 논리적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공空이라는 것이다. 즉 모든 보살이 일체가 공이므로(一切皆空) 불이不二라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문수보살이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이것이 보살이 불이不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문자와 언어와 개념의 작용은 없습니다.”라고 설하여 불의不二의 진리는 언어와 문자로 표현되어지는 상대적 개념의 세계가 아님을 언급하고 있다. 문수가 언어 문자의 사용에 의한 유언有言으로 불이법문을 설하는 데 반해 유마는 무언無言인 침묵으로 설한 바 없이 불이의 경계를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능가경』에서 설하고 있는 ‘일자불설一字不說’이며, 선에서 주장하고 있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인 것이다. 즉 부처님께서는 49년의 설법을 통해 8만4천의 무진장광설을 설하시고 열반에 들기 전 “나는 한 글자도 설한 바 없다[一字不說].”고 언급하면서, 내가 설한 법문은 다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指月]에 불과하다고 설하고 있다. 여기에 입각하여 선종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는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言語道斷], 생각의 길마저 사라진[心行處滅] 경계임을 말하며 불립문자를 주장하게 된다. 유마의 일묵에의한 불이법문과 선종의 불립문자의 종지가 불이중도를 관통하는 하나의 가르침인 것이다. 즉『유마경』에서 설하고 있는 불이법문으로 상징된 유마의 침묵과 선의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대표되는 불립문자의 종지는 다 같이 중도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실천불교의 핵심교설인 것이다.
오늘의 사람들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성공하고 말로 실패하는 말의 세상에 살고 있다. 말의 허구성과 생각의 공성空性을 설하고 있는 유마의 침묵을 통해서, 말과 생각에 빠져 중도실상中道實相을 깨우치지 못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아직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하지 않은 자신의 말 한 마디를 일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듣고 보고 배우고 익힌 남의 말이 아닌 순수한 자기의 말 한 마디를 말이다.
이뭣고?

월암 스님.
1973년 경주 중생사에서 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진여선사, 남화선사, 백림선사, 정거선사, 용천선사 등 중국의 여러 선원에서 안거하였고 북경대학 철학과에서 ‘돈오선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국선원수좌회 학술위원장 등을 역임하였고 화엄사, 백양사, 봉암사, 정혜사, 벽송사, 대승사 등 제방선원에서 수선안거하였다. 문경 불이마을 한산사를 건립하여 용성선원장으로서 불이선不二禪 운동에 진력하고 있다. 저서로는『간화정로』,『 돈오선』,『선원청규』(공동편찬),『 친절한간화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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