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되려다 무형문화재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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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되려다 무형문화재가 되었으니...
  • 불광출판사
  • 승인 2012.03.2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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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의 고집불통佛通



스님이 되려다 무형문화재가 되었으니...
중요무형문화재 74호 최기영 대목장

그랬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에 반기를 들던 혈기왕성한 시절이 있었다. 무슨 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이뤄질 것 같고 어떠한 실패도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의 쓴맛’은 지뢰처럼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고통의 바다 한가운데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 끊임없이 밀려드는 크고 작은 파도 너머로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기영(69) 대목장大木匠역시 불운했던 현대사를 관통하며 숱한 어려움을 이겨낸 우리 삶의 선배다. 그의 솔직하고 구수한 입담 속에서 삶의 비애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껴본다.


차마 맛봐서는 안 될 괴로운 맛
최기영 대목장은 신응수 대목장과 함께 한국전통건축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거장이다. 사찰건축의 1인자답게 목수의 길을 걷게 된 인연은 절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 열일곱 살 때였다. 탄허 스님 밑에서 스님이 되려고 오대산 상원사로 들어갔다가, 당시 상원사 노전채를 짓고 있던 당대의 도편수 김덕희 선생 일행을 만나게 된다.
“수백 제자 중에 내가 운이 좋아 스승의 뒤를 잇고 무형문화재도 되었어요. 사람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한 가지씩 재능을 물려받는다고 하는데, 그 끼는 숨길 수 없나 봐요. 목수들이 하는 일을 가만보고 있자니, ‘저정도 밖에 못만드나’ 싶은게 내가 하면 훨씬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는 목수로서 갖춰야 할 재능을 타고났다. 손재주와 기억력, 시각적인 감각이 탁월했다. 그러나 일을 숙련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누가 따로 가르쳐주는 이도 없었고, 무엇보다 연장이 비싸 본격적인 목수 일은 하지도 못하고 허드렛일만 도맡아했다. 궁여지책으로 꼼수를 발휘해 기술을 습득해나갔다.
“내가 좀 개구진 사람입니다. 개구진 사람은 영리하고 약삭빠르고 심술도 많아요. 속일 줄도 알고 도둑질도 잘하죠. 당시 목수들은 일제 연장을 썼는데, 일당 5원으로는 도저히 구입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머리를 썼죠. 목수들의 연장을 돌에 긁어 날을 망가뜨려놓고 시치미를 뗐어요. 그런 후 선배들에게 다가가 날을 갈아주고, 그 대가로 하루씩 빌려쓰며 연장 다루는 법을 터득해나갔습니다. 이런 경험이 인생의 쓴맛이겠습니까, 단맛이겠습니까. 인간으로서 차마 맛봐서는 안 될 괴로운 맛입니다.”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읜 그의 어린 시절은 지독히도 가난했다. 말로만 듣던,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풀뿌리죽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었다. 목수 일도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잠시 회상에 잠겨있던 그가 울컥 눈물을 보인다. 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했기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대해준다. 한번 그와 함께 일하면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52년간의 만근滿勤
안동 봉정사, 순천 송광사, 강화 보문사, 서울 봉은사, 창경궁, 남한산성 등 수많은 문화재들이 최기영 대목장의 손끝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2000년에는 목수 일을 한 지 40년 만에 중요무형문화재 74호로 지정됐다. 현재도 경주 월정교 복원을 비롯해, 영주 부석사, 제주 문광사, 남양주 정각사 불사를 동시에 진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타고난 재능에 노력과 성실함이 보태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52년 만근滿勤했습니다. 늘 새벽 5시면 일어나서, 5시 반에 밥 먹고, 6시에 출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작업 현장이나 나무 베는 곳, 건축과 관련된 장소에 가 있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배우는 것이 장인의 길이에요. 초보생이나 일반 목수에게도 배울 점이 많아요. 배움이란 끝이 없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독하게 공부했다. 전통건축물을 살피기 위해 덕수궁 담을 수차례 넘었고, 제도製圖 설계와 구조 공부를 위해 밤을 새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손은 나무를 깎으면서도 머리로는 늘 건축기법과 제작 과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되뇌었다. 심지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다음 날 할 일에 대한 생각이 저절로 돌아갔다.
“우리 장인들은 남들보다 없이 살았고 배운 것도 부족해요.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 그들을 따라갈 수 없어요. 7시간 자면 우리는 5시간 자고, 놀때 일하고, 남이 여행갈 때 연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 돈을 따라가서는 안 돼요. 돈에 집착하면 기능의 진도가 절반으로 줍니다. 배움의 어느 한계까지는 죽는다는 각오로 밀어붙여야 해요.”



전통건축을 화두로 정진해온 목수의 삶
비록 먹고 살 길을 찾아 목수 일을 시작했지만, 전통 건축의 매력에 빠져 살아온 날들이었다. 전통건축은 반 예능, 반 기능이 합쳐진 작품이다. 건축물의 뼈대인 골조는 기능적인 측면이다. 하지만 지붕의 곡선이나 각도, 길이는 예술적인 디자인 감각이 요구된다. 집의 크기와 지어지는 장소의 높낮이에 따라 각각 달라지므로, 이 부분을 아름답게 도출해내는 예술성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 사이 한옥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 또한 최기영 대목장의 역할이 컸다.
“무형문화재가 되고 나니 할 일이 더 많아졌어요. 전통 기법을 후대에 잘 전수해주는 것과 함께, 현대인들에게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각 대학과 기업에서 강의할 기회가 생기면 전통건축의 참맛과 깊이를 알려주고 있어요. 한옥은 자연생산품으로 지어집니다. 나무, 흙, 기와, 돌, 창호지 모두가 미세하게 숨을 쉬어요. 공기를 순환시켜주니까 결로 현상이 없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아늑합니다.”
사실 그동안 한옥은 불편하고 건축비용이 많이 든다는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 또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잘못된 인식이다. 전통한옥과
현대건축을 각각 평당 1,500만과 300만원 들여 지었다고 했을 때, 그 수명은 각각 500년과 50년으로 비교된다. 1년 평당가를 계산해보면 한옥은 3만원, 현대건축은 10만원이다. 그리고 철거할 때도 한옥은 버려지는 부산물이 거의 없다. 나무는 켜서 고가구를 짜면 되고, 기와는 담장을 만들 때 사용되며, 돌은 썩지 않아 재생시킬 수 있다. 그러나 현대건축은 폐기물 처리만으로도 꽤 많은 비용이 든다.
“한옥 열풍은 한옥이 좋으니까 부는 것이겠죠. 각 시대와 나라마다 건축 양식이 다 달라요. 그 시대와 나라별로 당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좋은 점을 각각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이 집도 목조건축으로 지어진 한옥이지만, 완전한 전통건축은 아니에요. 창에 유리 끼고, 전기 들어오며, 난방은 가스보일러로 했잖아요. 현대건축의 요소를 접목시켜 한옥의 불편한 점을 해소시킨 겁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전통건축이 주는 미덕은 훼손시키지 않고 있어요. 바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줘 현대인의 마음을 정화시켜준다는 거예요.”
전통건축을 화두로 평생을 정진해온 최기영 대목장. 그의 오른손 팔목엔 단주가 끼워져 있다. 편안해서 늘 차고 다닌다고 한다. ‘심즉불(心卽佛, 마음이곧 부처)’의 마음을 한시라도 잊지 않기 위해서다. 항상 스님 못지 않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발원하며 살아온 그가 인터뷰를 마치며 호탕하게 웃는다. “ 스님이 되려다 못 된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무형문화재라도 되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집을 많이 지으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허허.”

글. 양동민 사진. 김남영, 최기영 대목장 제공(작품)



최기영.
1944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으며 1960년부터 목수 일을 시작했다. 200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으로 지정되었고,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2010년에는 백제시대의 왕궁과 사찰, 목탑 등 총 187동의 ‘백제문화역사재현단지’를 10년 만에 완수했다. 현재 국가중요무형문화재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남양주에 직접 지은 ‘문화재 전수 교육관’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옥관문화훈장, 은관문화훈장, 무궁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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