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풍의 수행방식을 일러주신 백봉 김기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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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풍의 수행방식을 일러주신 백봉 김기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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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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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길 나의스승

 

   백봉(白峯)문하에서 말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내가 이 글을 쓴다는 것은 주제넘은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인생행로에 끼친 그분의 영향력의 크기로 말한다면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 주제넘은 짓에 대한 변명으로 삼아야 하겠다.

   집안의 잘못 맺어진 인연으로 인한 풍파에 시달려서인지 고등학교시절의 나의 이상은 ‘도사(道士)’였다. 내가 생각한 도사는 모든 감정을 초탈한 목석과 같은 인간이었다. 그러던 내가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풀이 죽어 집에 있을 때, 내가 다니던 절(대전 심광사)에 백봉선생님이 우거하고 계셨고, 마땅히 시봉할 사람이 없던 참이라 재수하며 빌빌거리던 내가 발탁된 것이었다. 그분은 견성(見性)을 하신 도인이라 하기에, 나는 꿈에 그리던 도사의 이상을 실제로 본다는 기대에 가득찰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것은 내 예상과는 전혀 딴판인 성미 괴팍한 노인네였다. 무슨 도인이 화를 내면 벼락을 치는 것 같고, 오래 모시던 젊은제자가 군에 입대하는 환송연 자리에서 눈물을 쫄쫄 흘리시며 “ㅇㅇ야, 너 제대할 때 다시 이 집에서 짜장면 먹제이ㆍㆍㆍ” 하시느냐 말이다. 세상사를 우습게 보고, 무심하며, 일처리에도 꼼꼼하지 못하였던 내가 벼락을 치는 듯한 그분의 호통에 쥐구멍을 찾는 나날이 한 6개월 계속되었다. “그래가지고 무슨 불교공부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의 도사꿈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에이! 무슨 도인이 이래!” 하면서 박차고 나오지 못하였던 것은 그분에게서 풍겨오는 형언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 때문이었다. 차츰 그 분위기에서 느꼈던 것은 “아 이분이야말로 자기의 참된 주인이구나”하는 믿음으로 변해 갔다. 그 뒤론 그분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지고, 그분이 주위에 형성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재수생으로서의 공부는 때려 치우고 6개월간을 보냈다.

   그 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1학년 여름방학, 겨울방학 모두 한달씩 그분이 유성에 마련한 도량에서 정진하던 시절을 합하여, 이 기간이 내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순수하게 한군데 몰두하였던 시간일 것이다. 특히 유성 근교에 농가를 빌려 도량을 마련하였던 시절엔 낮에는 똥도 푸고 밭도 갈며, 밤에는 장좌불와(長坐不臥)하는 정진을 하였기에 남은 추억도 많다. 밭에 김매다 막걸리 한잔씩을 돌리시며 “야! 막걸리 잔 속에 우주가 있고나!”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떤 선배는 ‘*입야타 불입야타(入也打 不入也打)’ 화두를 지니고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허수아비에게 절하고 물어보면 알려줄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허수아비를 찾다 찾다 현대화된 농촌에 허수아비가 없어 결국 큰 길가에 서있는 교통순경 허수아비에 절을 하고 답을 묻기도 하였다. 허수아비가 가르쳐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선배의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 했던 내가 결국 그 화두에 걸려, 이제는 교통순경 허수아비도 없어져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다리가 두개 있는 허수아비여야 한다 하셔서 특별제작 했다)절을 하게 될 줄이야! 남들이 들으면 미친 사람들이라고 웃어 넘길 일들이 백봉선생님의 학인을 막 다른 길로 몰아치시는 탁월한 힘 아래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곤 했던 것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시기에 나는 백봉선생님을 만났고, 이 만남은 나의 인생의 방향을 전혀 다른 쪽으로 틀어 놓았다. 지금의 내가 이러한 모습으로 있게 된 것은 백봉 선생님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도 없다. 그리고 지금도 그분을 생각할 때면 그분의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인간적인 그리움이 앞서는 것을 보면, “진리가 있다면 그것이 제일이지. 그러나 그것만 빼놓는다면 인간세상은 정과 의리로 사는거 아닌가ㆍㆍㆍ”하시던 그분의 말씀에서 나는 못나빠지게 인간적인 정에 더 연연해 있는가 보다. 그러나 숲을 벗어나야 숲을 볼 수 있다는 말처럼 그분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는 알지 못하던 그분의 큰 모습을, 그분이 가신 지금 와서야 새삼 느끼게 되는 면도 있다. 여기에 몇자 적은 것을 그분은 “네 깜냥대로 보았구나” 하고 허허 웃으실지언정 탓하지는 않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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