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함께 일상에 깊이 스며든 차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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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함께 일상에 깊이 스며든 차 문화
  • 지허 스님
  • 승인 2012.02.0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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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차茶

 

우리 조상들은 차로 마음을 가다듬고, 인생과 자연을 생각하며, 나아가 우주를 만나는 매개체로 삼았다. 또한 차로 손님을 접대하고 조상의 혼백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전통차 문화는 커피와 주스 등 서양음료에 밀려 자취를 잃어가고 있다. 한국 전통차는 완전 야생으로 자생하는 차나무 잎을 일일이 손으로 비비고 덖어 만든 것이다. 일본 차나 중국 차와는 만드는 방법이나 향, 색깔, 맛, 효능이 전혀 다르다. 앞으로 1년간 「불광」의 지면을 통해 한국 전통차의 참모습을 밝혀볼 요량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차의 정체성이 확고히 새겨지고, 우리의 품격 높은 차문화가 새로운 활력으로 두루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한국과 중국의 차는 달랐다

‘차’라는 말은 한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부터 쓰였던 한민족의 언어였으며,‘茶’는 중국문자인 한자이다. 한자가 유입된 때는 고조선 말엽쯤이라 하기도 하고 삼국시대라 하기도 한다. 한자가 들어오기 전, 문자는 따로 있지는 않았으나 생활에 필수적인 물 이외에 차라는 고급 음료를 만들어 마셔왔던 것이다. ‘차’라는 말로 먼저 불리다가 ‘茶’라는 문자가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자 ‘차’와 ‘茶’를 같이 사용하여 왔다. 그러나 ‘차’와 ‘茶’는 이름만 같이 사용한 것일 뿐 그 실질은 매우 달랐다. 중국의 차는 그 기원이 BC 2737년이다.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가 모든 식물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정할 때, ‘茶’라는 특수한 식물을 선별하여 음용하게 하였다는 기록이『식경食經』에 쓰여 있다. 한국은 BC 2333년에 단군이 유라시아 대륙의 한반도를 중심으로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워 한민족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고 삼국시대에 이르러 백제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부 인도, 중국 남부와 문화 교류를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 무렵 중국의 차 종자가 한국에 처음 유입되었다.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중국의 양자강 부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지금의 전라남도 서부 영광땅 불갑사와 나주의 불회사 부근에 심은 것이 시원始原이다. 이로부터 한반도 남부의 양호한 자연 조건 속에서 중국의 차나무가 연륜이 누적하며 토착화되어 완전한 한국 차나무의 주종이 된 것이다. 중국 차 종자가 주종차가 되어 한반도에서 토착화되기 전에, 한민족이 차라는 이름으로 마셨던 차는 과연 어떤 것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문화란 인간이 기존의 삶에서 일정한 목적과 생활이상 실현을 이룩하고자 하는 정신적, 물질적 소득을 말한다. 문화의 기본은 생존의 필수조건인 의식주로부터 출발한다. 문화는 순수한 예지의 창달로 독자적으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외래문화가 유입되어 그 지역의 조건과 정서에 영합하면 외래란 형태가 변질되어 그 민족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민족화하기도 한다. 편의상 한국의 차문화 시대를 중국 차 종자가 들어오기 전의 고대 차, 중국 차 종자가 유입되어 토착화된 주종차 시대, 서구문물이 범람하여 주종차가 약화되는 현대생활 차로 구별해 기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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