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의자를 가진 자연주의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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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의자를 가진 자연주의자의 삶
  • 불광출판사
  • 승인 2012.02.0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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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책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람들과의 교제가 더 이상 내게 영감을 주지 않고, 긴 대화 끝에 누군가를 험담하고야 자리를 파하게 되고, 흥정을 하듯 인정을 저울질하는 내 자신의 얕고 교활한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잠시 세상과의 교류를 접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말을 멈추고 책들도 덮고 그저 오도카니 내 자신을 강보에 뉜 어린아이마냥 들여 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만난 책이『월든』이었습니다. 가능하면 잠에서 깨어 맑고 또렷한 기운으로 책을 읽어가기로 했습니다.
2007년 10월 29일, 이날은 월요일이었고, 나는 정오 가까운 시간까지『월든』을 읽었습니다.『 월든』읽기의 첫째날에 나의 연필이 그어진 문장은 이렇습니다. “나는 다른 모든 저자들에게도 남의 생활에 대하여 주워들은 이야기만을 하지 말고 자기 인생에 대한 소박하고 성실한 이야기를 해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16쪽)
이 문장 아래에 연필로 줄긋기 시작하여 군데군데 조심스레 줄쳐진 부분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읽어가면서 그날 하루의 『월든』읽기가 끝나면 날짜와 시간을 적어두었더니,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이 끝나는 그 지점에 ‘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아침 10시 5분’이라는 숫자가 보입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월든』은 책꽂이에 꽂혀 있기보다는
언제나 내 손이 닿는 어딘가에 내버려져 있었습니다.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다
『월든』이 눈에 띄면 무작정 펼쳐서 아무 페이지나 읽어 내려갔습니다.

까칠한 남자, 소로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라는 이 남자, 좀 까칠합니다. 세속의 질퍽한 인정도 농부의 순박함도 그에게는 미덕이 아니요, 박애주의자일수록 그가 겨눈 서슬 푸른 질타를 각오해야 하며, 나라의 탄탄한 재정확보를 위한 세금이니 국채니 하는 것도 소로우의 냉소를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소로우는 그저 자연을 사랑해서 세속과 절연하고 기약 없이 월든 호숫가를 찾지는 않았습니다.
1817년생인 그가 청춘을 보내던 당시 미국은 캘리포니아의 금광을 찾아 유럽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자연의 푸른 혈맥은 인간의 한탕주의에 거침없이 난도질당했습니다. 개발이면 다 통하는 시기였고, 가난은 저주 받아 마땅한 삶의 방식이었으며, 화려하고 풍요롭고 기름진 삶을 가장 아름답게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원주민들이 저항이냐 투항이냐를 놓고 승산 없는 고민을 하던 시기였고, 이들을 굶겨 죽이려는 백인 이주민들의 계획에 의해 인디언의 친구이자 양식인 버펄로 수천 마리가 장차 떼죽음을 당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도의 기적소리가 사람의 집 안마당을 넘어서 고요한 저녁 거실까지 침범하였고, 검소하고 억척스럽던 주부들은 값비싼 상품을 구입해서 집안을 꾸미며 이웃집 여자의 순박한 살림을 흉보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였음에도 특별한 직업을 갖지 않고 목수일 등을 전전하던, 반골 기질이 농후한 소로우는 이런 세상을 향해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정말 이런 문명의 파도에 휩쓸려야만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나는 기차가 없이도, 신문이 없이도, 돈이 없이도, 권위에 대한 복종이나 부자를 향한 애증을 품지 않아도 인간이 가장 가치 있게 살 수 있음을 실험해 보이겠다.”

냉기가 느껴지는 책
소로우가 제 인생을 실험에 쏟기로 결정한 뒤 살 집을 찾아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월든 호숫가 숲속으로 들어간 때는 1845년 3월 말 경. 그로부터 넉 달 뒤에 그는 작은 오두막 한 채를 마련하고 입주하였습니다. 7월 4일의 일입니다. 이후 2년여에 걸쳐 그곳에 살면서 철저하게 자급자족의 삶을 영위합니다.
소로우의 오두막을 채운 가재도구는 “침대 하나, 탁자 하나, 책상 하나, 의자 셋, 직경 3인치의 거울 하나, 부젓가락 한 벌과 장작 받침쇠 하나, 솥 하나,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 국자 하나, 대야 하나, 나이프와 포크 두 벌, 접시 세
개, 컵 하나, 스푼 하나, 기름단지 하나, 당밀 단지 하나, 그리고 옻칠한 램프 하나”(103쪽)였습니다. 그런데 혼자 사는 그에게 의자가 세 개나 있다는 것은 퍽 사치스럽게도보입니다. 그러나 소로우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212쪽)
그를 찾는 방문객들은 용무가 끝나면 돌아서야 했고, 그래도 남고 싶은 방문객은 ‘접대를 위한 시간조차도 가식과 허영과 무의미한 수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집주인의 정신을 이해한다면, 소로우를 방해하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저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었습니다. 극단적이라 여겨질 정도로 검소하고 단출하며 세속을 피한 그의 삶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면 따뜻한 온기 대신 겨울 호수의 냉기가 훅 느껴집니다.
특히 “생활비를 버느라 자기의 모든 시간을 다 뺏겨 여유가 없는 사람들, 신에 관한 화제라면 자기들이 독점권을 가진 것처럼 말하며 다른 어떤 견해도 용납하지 못하는 목사들, 의사들과 변호사들 그리고 내가 없는 사이에 나의 찬장과 침대를 들여다보는 무례한 가정주부들, 안정된 전문직의 닦인 가도를 걷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린 더 이상 젊지 않은 젊은이들”(231쪽)을 향한 냉소는 뼈가 시릴 정도였습니다.

21세기 사람들에게 향했던 시선
하지만 1845년의 소로우는 100년 뒤의 인간들이 얼마나 피폐하고 잔혹하며 각박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지를 미리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의 냉정한 시선은 동시대의 미국인을 넘어 100년 뒤 너무나 풍요롭지만 너무나 가난해지고만 21세기의 사람들을 향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아무도 마음을 내지 못했던 그 시절에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티끌만한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무한한 생명의 경외를 촘촘하게 그려내며 인간이 최고라는 생각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일러주었습니다. 그는 볕이 좋은 날이면 고독을 위한 의자를 오두막 밖으로 끌어내어 종일햇볕을 받고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었으며,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집안에서 저 먼 하늘에서 시작한 빗줄기가 지상의 어느 지점에 닿아 스러질 때까지 내는 소리를 끝까지 들었습니다. 우리는 아침 햇살의 투명하고 맑은 기운을 단 10초라도 맘껏 쐰 적이 있었을까요? 나무로 만든 문지방을 검게 물들이는 빗줄기의 흐느낌에 귀를 기울이며 밤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을까요? 눈이 내리는 소리, 바람에 낙엽이 얇은 몸뚱이를 뒤척이는 소리, 저수지 얼음이 봄볕에 갈라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적이 언제였던가요?
어느 사이 인간이 주인행세를 하게 된 자연, 하지만 그는 그런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나약하며 무지한 존재인지를 일러 주었으며, “뼈 가까이에 있는 살이맛있듯이 뼈 가까이의 검소한 생활도 멋진 것”(486쪽)이니, 문명이 만들어낸 무수한 잡동사니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우주의 광대한 울림을 만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138~139쪽)이었다는 소로우입니다. 본질에 가 닿을 수만 있다면, 내 삶을 순전한 내 의도대로 살아볼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다가오는 숱한 문제들을 나의 맑은 두 눈과 정신으로 직시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100년 전, 의자 세 개만을 가진 한 남자는 인간은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숲의 생활을 청산하고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은자隱者의 삶을 털고 누항陋巷으로 돌아온 소로우이기에 더 진실하게 느껴집니다.
고전은 100년 뒤의 독자와 만나도 그의 살갗을 아프게 문지를 수 있어야 합니다. 몇 번이나 읽었건만 “어, 이런 문장이 있었어? 난 왜 지난번에 발견하지못했지?”라며 머리를 흔들며 밑줄을 그어야 고전입니다. 내게 고전은 소로우의 『월든』입니다.

이미령
불교방송(BBS) ‘무명을 밝히고-보리살타의 서재’시간에 불교서적을,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에서는 매일 책 한 권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있는 책 칼럼니스트.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모임 ‘붓다와 떠나는 책여행’과 경전 읽기 모임 ‘니까야 7년 읽기 결사’를 이끌고 있으며, 불광교육원의 전임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책을 좋아하는 보리살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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