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베어라, 네 마음속 번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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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법구] 베어라, 네 마음속 번뇌를
  • 성석제
  • 승인 2011.01.2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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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법구

본의 선학자(禪學者)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이 주해하고 일지(一指)가 우리말로 옮긴 『임제록』이 책으로 나왔던 덕분이었다. 책을 읽기 2년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한 해 전에 취직을 했으며, 여섯 달 전에 결혼까지 한 참이었다. 해가 바뀌면 서른 살이 될 것이었다. 모든 것이 단단해져 가는 느낌이었고, 앞길은 훤해 보였으며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도 안정되어 가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뭔가 다른 걸 구하고 있었다.

“함께 도를 닦는 여러 벗들이여! 그대들이 참다운 견해를 얻고자 할진대, 오직 한 가지 세상의 속임수에 걸리는 미혹함을 입지 않아야 한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은 바로 죽여 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권속을 만나면 친척권속을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어떠한 경계에서도 투탈자재(透脫自在)하여 얽매이지 않고 인혹(人惑)과 물혹(物惑)을 꿰뚫어서 자유자재하게 된다. 제방의 여러 구도자들이 언구(言句)와 형상에 의지하지 않고 내 앞에 나온 자가 없었다. 나[山僧]는 항상 깨달음의 연장에 있어서 사람들이 간신히 의지하고 있는 언구와 형상을 쳐부순다. 손을 써서 나오면 손으로 쳐부수고, 입을 통해 나오면 입을 작용하여 쳐부수며, 눈으로 작용하여 나오면 눈으로 작용하여 쳐부순다. 지금까지 어떤 언구나 형상에도 의지하지 않고 단지 홀로 투탈자재하게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눈치를 보면서 옛사람들의 언구와 행동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다.”(『임제록(臨濟錄)』, ‘시중(示衆)’ 편)

뛰어난 글은 신명과 기합과 리듬이 있어 시처럼 느껴진다. 좋은 시는 폭포와 천둥, 바람 소리 같은 자연의 노래를 닮고 자연의 노래는 시시한 인간의 인연을 단번에 잘라버리는 칼날을 담고 있다. 칼날이 지나가고 피와 기름이 남은 자리에 깨우침이 온다. 먼저 난[先生] 것들(부처, 조사, 스승, 아버지, 임제)을 닥치는 대로 쳐부수라, 나를 때려 엎으라는 외침은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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