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종소리 울리면 번뇌는 사라지고
상태바
[내 마음의 법구] 종소리 울리면 번뇌는 사라지고
  • 손홍규
  • 승인 2010.09.27 14: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북치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그 소리를 처음 만난 건 스물네댓 무렵이었다. 오랜 세월을 견딘 아름드리 갈참나무가 우중우중 선 장성 백양사 가는 길. 일주문 지나 절까지 이르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으나 묵혔던 시름을 꺼내어 갈참나무의 큼직한 이파리 사이로 쏟아지던 빛줄기에 비춰볼 만큼은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외로웠다.

군에 입대한 뒤 맞은 첫 휴가에 산사를 찾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백양사는 고향집에서 고개를 하나만 넘으면 되는 곳에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몸을 굽힐 때 나는 충동적으로 아버지의 트럭을 몰아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 그곳을 찾았다.

절 마당은 고즈넉했다. 나는 고요히 종루가 건너다보이는 곳에 앉아 절을 감싼 평온함에 내 몸을 맡겼지만 생각만큼 평화롭지는 않았다. 내가 품은 번뇌들은 그곳에서마저 문전박대를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더없이 쓸쓸해질 무렵 저녁예불 시간이 되었는지 엄장 큰 스님 한 분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종루에 올랐다. 북채를 쥔 팔을 들어 올리자 소맷자락이 스르르 내려가며 팔꿈치까지 선연히 드러났다. 수행자의 팔뚝이라기보다는 농사짓는 사람의 그것에 가까울 만큼 근육이 울퉁불퉁 박힌 그이의 팔뚝이 가볍게 긴장하는 듯하더니 곧이어 부드럽게 북치는 소리가 났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