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사람 키로 가늠할 수 있는 크기의 탑은 눈을 씻고 찾아봐야 없다. 아무리 작아봐야 우리나라 전각 수준이고 웬만하면 큰 절의 대웅전 수준이다. 물론 좀 더 크다 싶으면 그 터가 종합대학 하나를 옮겨놔도 모자란 규모다.
물론 5천여 기가 온전히 모두 남아 있을 리는 없다. 천년이 지났지 않은가. 그래도 지금 남아 있는 탑의 숫자가 대략 2,500여 기라고 하니 반수는 온전히 보전된 셈이다. 짧은 우기와 긴 건기 덕분에 벽돌로 지은 탑(전탑)들은 양호하게 보전되어 있다. 특별히 기념할 만한 탑들은 전탑 형태로 그냥 남겨두지 않고 그 위에 옻칠을 하고 그늘에 말린 뒤에 다시 황금을 입혔다. 2~3년에 한 번씩 이렇게 하다 보니 금의 부피만큼 탑의 크기는 점점 불어난다.
여하튼 하늘이 허락했건 사람이 다듬었건, 황무지로 남은 땅에 수천 기의 탑을 남긴 덕에 현재 바간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와 함께 세계 3대 불교유적군으로 손꼽히며 전 세계인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내전으로 총질을 해대건, 비가 나라를 집어삼키건 그 유적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아랑곳없다.
하지만 현재의 바간 땅에 불교가 처음 소개된 게 이때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인도에 남아 있는 아쇼카 왕 석주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3세기경 이미 아쇼카 왕의 전도사가 미얀마 지역에 당도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이후 바간 왕조가 들어설 때까지의 1천년 사이에 불교는 미약하나마 이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이때를 증명하는 사원은 바로 미얀마의 젖줄 이라와디 강변을 끼고 우뚝 선 부파야 사원이다. 사원의 건립을 기원후 1세기경으로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기원후 3세기경으로 그 건립연대를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시기로 추정하건 바간 왕조가 들어서기 한참 전이다.
물론 본격적인 탑의 건립은 초대 왕 아나와라하따 때부터다. 그 초창기 작업으로 알려진 곳은 바로 쉐지곤 파고다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던 아나와라하따 왕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왔던 흰 코끼리를 풀어놓고 그 코끼리가 처음 쉬었던 곳에 탑을 세웠다. 바로 쉐지곤 파고다다. 탑 주위에 둘러쳐진 회랑이나 전각이 들어선 자리까지 합하면 약 5만 평 규모다. 말이 5만 평이지 그 웅장함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 말로만 표현하면 실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