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가져본 자만이 완전히 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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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가져본 자만이 완전히 버릴 수 있다
  • 관리자
  • 승인 2010.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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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부처님의 참모습

붓다의 탄생 직후 설해졌다는 탄생게는 붓다와 관련된 여러 전기들 속에 나타나고 있다. 이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수행본기경』 권상에 수록되어 있는 ‘천상천하유아위존(天上天下唯我爲尊) 삼계개고오당안지(三界皆苦吾當安之)’이다. 내용인즉슨, ‘신과 인간의 세계를 통틀어 붓다야말로 가장 존귀하신 분’이라는 불교의 종교적인 주장과 ‘신과 인간의 모든 세계는 결국 죽음과 윤회로 귀결되는 고통의 세계일 뿐이니, 붓다께서 구원하시겠다’는 보살도의 서원 완성과 열반의 길을 제시하겠다는 천명 부분이다. 그러므로 이를 합치면 탄생게의 의미는 ‘중생구제를 위해 가장 완전하게 태어나신 분’이라는 것이 된다. 이는 붓다의 과거 547생의 보살행을 통한 최후의 완성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탄생 직후의 붓다가 이러한 게송을 읊었다는 것은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7보를 걸었다는 것과 함께 불교의 종교적인 관점이 수용된 부분이다. 불교에서의 붓다는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여 진리와 하나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이 보리수 아래의 깨달음[有餘涅槃]이며, 쿠시나가라의 열반[無餘涅槃]이다. 즉,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과 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불교인 것이다. 그런데 인도의 힌두교는 신을 믿으며, 신은 탄생부터 인간과는 다른 완성의 존재로 출발한다. 이는 불교가 힌두교와 경쟁하며 종교화되는 과정에서, 힌두교의 신들보다도 더 위대한 붓다를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탄생게인 것이다.

탄생의 예언, 전륜성왕과 붓다

룸비니에서의 붓다 탄생은, 마야부인의 해산을 위한 친정행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하여 마야부인은 붓다와 함께 다시금 석가족의 가비라로 귀성하게 된다.

태자의 탄생은 당연히 대대적인 환영과 축제를 동반하게 된다. 특히 당시 주변국가인 코살라국의 무력적인 압력에 직면해 있던 석가족에게 있어서 태자의 탄생은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다. 정반왕이 태자의 이름을 ‘모든 것을 다 이룬다’는 성취(成就)의 의미인 싯다르타라고 한 것은 석가족의 열망을 직접적으로 읽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장선상 속에서 우리는 태자가 점술사들에 의한 예언을 들었다는 측면 역시 이해해 볼 수 있다.

점술사들은 태자가 장차 성장하여, 덕으로 세계를 제패하는 전설적인 통치 군주 ‘전륜성왕’이 될 것을 예언한다. 이는 정반왕과 석가족들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위대한 수행자인 아시타 선인의 등장에 의해서 이 예언은 ‘붓다’가 될 것이라는 것으로 수정된다.

그러나 전륜성왕과 붓다라는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한 예언은 붓다께서 진리의 완성자이자 구현자인 ‘법왕(法王)’이 됨으로써 모두 다 성취되게 된다. 일반적으로 태자는 전륜성왕의 길을 버리고 출가하여, 붓다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붓다는 녹야원에서 전륜성왕의 상징인 ‘윤보(輪寶)’를 떨쳐 진리의 전륜성왕이 되었으며, 열반에 이르러서는 당신의 유언에 따라 전륜성왕의 장례로 화장되게 된다. 이는 붓다가 ‘대제국의 전륜성왕’이 아닌 ‘진리의 전륜성왕’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두 예언이 모두 적중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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