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찰은 세워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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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찰은 세워졌는가?
  • 관리자
  • 승인 2007.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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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그 속에 깃든 의미

사찰의 어원은 상가람마(Samgjarama)이다. 불교 교단을 구성하는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남자신도). 우바이(優婆夷, 여자신도)의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은 이 상가람마를 '승가람마(僧伽藍摩)'로 표기하였고, 그것을 다시 줄여 '가람(伽藍)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번역하여 '중원(衆園)'이라 하였다.

그러나 불교가 처음 일어났던 서기전 6세기 무렵부터 승려들의 생활 터전인 사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소유(無所有)를 이상으로 삼았던 초기의 수행자! 원시경전(原始經典)에서 '집 없는 사람', '삼림(森林)에 거주하는 사람' 등으로 표현하였던 그들은 문자 그대로 출가(出家)와 유행(遊行)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수행승들은 나무 밑이나 숲속. 석굴. 골짜기. 냇가. 묘지 등의 장소에 거주하면서, 무일푼과 무소유를 생활의 방편으로 삼아 선정(禪定)과 진리의 탐구에만 몰두하였던 것이다.

물론 불교에서만 이러한 생활양식을 추구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당시의 고상한 수행자로 지목받았던 '사문(沙門)'들의 한결같은 생활 태도였다. 불교가 생겨나기 이전의 인도 사상계는 제사 만능주의로 타락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들만이 가장 신성한 신분이라고 내세우는 바라문(Brahman)계급이 지배하고 있었다.

사문은 바라문들의 타락에 종교적인 회의를 느끼고 선정을 통한 신과의 교류와 생사의 해탈을 체험하기 위하여 피나는 고행(苦行)을 닦았던 당시 인도의 종교개혁가들이었다.

석가모니불께서도 처음 출가하였을 때는 이들 사문의 일원이 되어 수행하였으며, 성불한 뒤 제자들에게 사문의 근본 생활양식인 '4의지(四依止)'를 지킬 것을 강조하였다. 4의지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음식은 걸식(乞食)으로 구할 뿐 직접 밥을 짓지 않으며, 신도의 집에 초대되어 식사를 하지 않는다.

2) 옷은 남이 버린 베 조각을 모아서 만든 분소의(糞掃衣)를 입는다.

3) 잠은 지붕 있는 곳에서 자지 아니하며, 나무 아래에서 좌선 명상하는 수하좌(樹下座)를 원칙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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