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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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관리자
  • 승인 2007.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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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샘 새날 새아침에

나는 지난 늦가을 서울서 두 세 시간 쾌속으로 달려가야 이를 수 있는 곳으로 선(禪) 생활을 하고 있는 선사를 뵈러 갔다. 선생활의 단면과 구도자가 걷고 있는 생활상을 보게될 기회를 가졌었던 것이다.

현대문명의 이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심심유곡 두메였다. 산국이라 할까, 땅굴이라 할까, 토막에 쌓인 풀섶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구도자의 모습을 목도하였을 적에, 나는 이제껏 겪지 못하였던 충격을 처음 맛보게 되었다. 화전민의 생활이 어찌 이러하랴! 독과촌의 살림이 어찌 이러하랴! 전기가 없다, 주식이 생식이다, 솔잎, 감자, 고구마 때로는 밀가루... 선방 안에는 찬기류로 가들하였다. 기류는 나에게 얼마나 견디나 보라는 듯 한기를 덮어씌우는 기분이었다. 손발이 시리었다. 벽상에 걸린 아내 보살의 영전 또한 가슴을 찔렀다.

"일체(一切)는 유심조(唯心造)이다."

문명의 극치속에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한귀퉁이에서 삶의 실체를 구하자고 고행길을 걷고있는 그 사람이 어딘가 모르게 새삼 존경스러워져 갔다.  물질과 황금의 풍요를 구가하며, 춤추는 허영에 접하고 있는 우리들의 생왕(生旺)의 낙(樂)을 마다하고, 이렇듯 홍진(紅塵)을 떨치고 고행길을 택하여 수행하고 있는 선사가 세상에 있다고는 생각하질 않았던 나에게 심한 파장이 일었다.

수도는 고행의 길이다. 그길은 가깝고도 먼곳에 있는 길이다. 불가사의한 인생의 진수를 알자는 길, 삶의 본질을 캐자는 길, 영적세계 실존에 바탕을 두고 추구하는 심원무애(深遠無涯)의 경지속에 있는 것이기에 더할 것이 없는 길이다.  어찌하여 이러한 곳에서 수도하려 결심을 하였을까...? 과거를 참회하는 것일까? 삶 자체를 참회하는 것일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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