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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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봄
  • 관리자
  • 승인 2009.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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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덕 칼럼

  지난겨울은 유난히 따뜻해서 겨울과 봄의 경계선마저 흐릿했다. 덕분에 날마다 오전 중 한 바퀴 뒷산을 돌아 내려오는 일과를 겨우내 계속하면서 어느새 슬쩍 봄을 맞이했다. 음력 정월대보름도 되기 전 열사(2월18일)날에 올 들어 첫 나비를 뒷산에서 보았는데,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니고 노랑나비 3마리, 감빛 바탕에 검은 점박이 6마리나 봤으니 완연히 봄이 온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나비들은 번데기 과정을 겪고 몸갈이를 하고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저 풀덤불속에 잠깐 숨었다가 나오는 것일까 의심이 날 정도로 그렇게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비뿐 아니다. 눈속에서 그 푸르름을 잃지 않는 개고비야 말할것도 없고, 축축한 냇가 땅에 자리한 보리풀이나 어름덩쿨(어름이 아니라 긴 모음으로 ‘으-름’같이 들리는 저 바나나닮은 열매 말이다)잎새들이 겨울 추위가 언제 있었냐는 듯이 푸른빛을 띠고 있다. 바위 밑 근처를 보니 돋나물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지 않은가. 또 밭뚝에는 외풀띠기∙벼룩이 자리같은 봄나물이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머지않아 꽃다지 노랑꽃이 피어날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늙으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한가 보다. 입춘(立春)이란 말만 들어도 봄을 느끼고 햇빛과 바람소리에 민감해진다. 아니다. 동지(冬至)가 지나면 벌써 여우꼬리만치 해가 길어졌다고 기뻐하는 마음이다. 종달새 울고 진달래 피는 그때에야 비로소 봄이 왔다고 하는 젊은이들에 비기면, 참으로 역설적인 얘기지만 노인들의 봄은 겨울 한복판에 이미 마음속에 와있는 것이다.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갈망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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