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촬요연의] 전심법요(傳心法要) (3)

2007-12-12     석주 스님

부처님께서는 설법하실 때 종종 항하사를 들어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항하의 모래를 두고보자. 제불보살이나 대범천이나 제석천이나 그밖에 모든 거룩한 분들이 밟고지나 가더라도 모래는 기뻐하지 않는다. 소나 양이나 그밖에 버러지들이 밟고 간다하여 모래가 성내지도 않는다.   진기한 보배나 고귀한 향이라고 모래가 탐내지 않으며 똥 오줌같은 냄새나고 더러운것이라도 모래는 또한 싫어하지 않는다.   즉 기쁜일 성낼일 좋은일 궂은일 일체에 무심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여러가지 마음이 있는듯 하다.   기쁜마음 성내는 마음 탐내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자비한 마음 모진마음등 온갖마음이 있는듯이 보이지만 이것을 잘못 본 것이다.   실로는 이마음은>무심한 것이다.   모든 相을 여의였다.   가이 찾아볼 아무런 相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생도 제불도 차별이 없는것이다.   그러므로 다만 능히 무심하기만 하면 이것으로 구경지에 이른 것이다.   도를 공부하는 사람이 만약 직하에 무심하지 않는다면 누겁을 두고 수행하더라도 마침내 다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마음은 본래 무심이므로 닦거나 얻어서 무심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본심이 본래부터 일체 상 모두를 여윈 무심인 것을 알아야한다.   아무리 난행 고행을 하더라도 난행 때문에 도를 이루는 것이아니다.   마침내 무심을 아는 때가 도를 이루는 것임으로 광겁을 두고 난행 고행을 해서 그것 때문에 도를 이룬다고하면 잘못된 생각이라.   모름지기 직하에 무심하여야한다.  

다시 말해서 직하에 본래부터 무심인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 도리를 알지 못하면 비록 수행에 힘쓴다 하더라도 이것은 인과의 법이며 상대의 법이며 유한의 법이며 상이 있는 법이다.   상을 두고 수행 한다면 도는 원래로 상이아니므로 도는 결코 알지 못한다.   상을 구하는 상수행으로는 도리혀 상에 결박되어 해탈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 도리를 증득하는 데는 빠른 길도 있고 늦는 길도 있다.   법을 듣고 단번에 무심한자도 있다.  

十信 十住 十行 十廻向을 거쳐서 마침내 무심을 아는 자도있고 十地에 이르러서 무심을 아는 자도 있다.   一念에 무심을 알던 십지에 이르러서 마침내 도를 얻는 것이니 여기에는 가히 닦을 것도 없는 것이다. 이 도리는 실로 한물건도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허망하다고 알아서는 아니된다.   참으로 구국의 진실지인 것이니 일념에서 얻던 十地에 이르러서 얻던 그 공용은 똑 같아서 터럭끝 만큼도 깊다거나 얕은 차별이 없는 것이다.  

<무심에 이르러서 도를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도를 닦는데 있어서 고행을 거쳐서 얻은거와 일념 직하에 얻은 거와를  차별한다.   그리고 임념 직하에 무심을 아는 것은 다시 긴수행이 있어야 한다고 아는 이도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본래 도는 무심인 것을 모르는 까닭이니 이러한 견해를 집하는 것은 아직 상을 여이지 못한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고집하는자는>다만 오랜 집을 두고 부질없이 고되고 쓰라림을 받을 뿐이다.   대개악을 짓거나 선을 짓거나 하는것이 이 모두는 相에 집착한 것이다.  

상에 집착하여 악을 지으면 부질없이 괴로운 윤회를 받는 것이며 상에 집착하여 선을 지으면 이 또한 부질없이 수고로움을 받는 것이니 모름지기 언하에 곧 스스로 本法을 알아채는 것만 같지못한 것이다.   <착한일을 하면 천상에 나고 악한일을 하면 악도에 떨어진다.   그러나 천상이나 악도가 하나는 즐거움이요, 하나는 괴로운 것이로되 그것이 윤회의 수레바퀴를 면치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윤회는 바로 고다.   이 윤회의 고를 벗어 나려면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함에 상관없다.   선악을 두는 것은 바로 상에 집착한 것이나 상을 여의지 않고는 이 도리와는 십만팔천리다.   그러므로 선을 힘써서 행하느니 보다 언하에 본래의 마음을 보아야 한다.   이곳은 상이 아니다.   따라서 일체 마음이 없다.   일체 수고로운 윤회의 결박에서 훤출히 벗어난 것이다.>  이 법은 곧 마음이다.   마음밖에 법이 없다.   이 마음이 곧 법이다.   법 밖에 마음도 없는 것이다.   마음은 본래 스스로 마음이 없는 것이며, 또한 무심할 자도 없는 것이다.   만약에 마음을 가져 이것을 무심이라 한다면 마음은 도리어 있는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 도리는 오직 잠잠히 계합할 뿐이다.   <마음을 가지고 이것을 있는 것이거니 없는 것이거니 여긴다면 이것은 설사 없는 것이다 라고 알고 있더라도 도리어 있는것이 된다.   본래 없는 것을 없다는 생각을 짓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이 자기눙릉 봤다면 그것은 자기눈을 본 것이 아니다.   거울에 비친눈을 보았거나 사진의 눈을 보았거나, 물에 비친 그림자 눈을 본 것이다.   눈을 밖에 들어내어 보았다는 것은 바로 妄이다.   눈은 본래로 밝고 있을뿐 대상적 파악이 허락하지않는다.  

이와같이 마음을 가져 혹 유심이라 하거나 혹 마음을 끊어 무심이라 하거나 다시 무심을 얻었다고 한다면 이 모두는 본래 무심인 이 마음을 모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도리는 오직 묵묵히 계합한다하는 까닭이 있다.>모든 생각의 헤아림이 끊긴 고로 말로 이를 길이 끊기고 생각이 갈 곳이 없어졌다, 하는 것이다.   이 마음, 이것이 본원청정불이다.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으며 고물 고물하는 버러지나 제불보살이 모두가 한 몸이며 다를바가없는 것이다.  <버러지나 범부나 제불보살 성인이 나를 구별하는 것은 이것은 상을 보는 눈이다.  

본래로 이 도리는 상이 아니니 상을 가지고 이 도리를 논할수는 없다.   상이 없는데 말로 이룰수 없고 생각으로 어림댈수 없다.   일체 상을 여윈 이 마음이 바로 일체 시간과 일체공간을 넘어서 영원히 청정한 본원 천진불이다.  일체 이 마음밖에 없다.   일체중생 준동함령 제불보살이 이 마음 밖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도리는 중생에 있어서나 제불보살에 있어서나, 본연청정하야 다를바가 없으니 즉시 산하대지 일체중생이 대광명을 놓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하여 유심이나 무심으로는 결코 이룰수 없는 것이니, 모름지기 언하에 무심인 자가 이 도리에 자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유심이나 무심으로 촌탁하는 범부라 하더라도 그의 본분은 영원히 본분이므로 오직 한생각 개오할것을 기다릴뿐이다.   우리는 일체중생이 본래로 청정불인 사실을 깊히 믿어야 할 것이다.> 

그런대로 이 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다만 무단히 망상을 일으켜 상을 보고 이를 분별하니 마침내 가지가지 업보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本佛 분상에는 실로 한 물건도 가히 얻을 것이란 없는 것이다. <범부들이 망상으로 분별하여 선을 짓고는 천상을 즐기고 악을 짓고는 극악 고통을 받는 듯이 보이지만 이들도 실로는 망상 분별인 것이다.   지옥에 빠져 갖은 고초를 받어라도 한생각쉬어 본무심을 반조하면 지옥고가 즉시에 꿈과 같은  *인 것을 안다.  즉시에 지옥가고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마음인 청정불 경계에는 본래로 고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는>일체가 걸림 없고 비어 통하였으며 잔잔하고 고요하여 밝고 묘하며 안락이 있을 뿐인 것이다.   이곳은 스스로 깊이 깨달아 들어가면 직하가 바로 그곳이니 일체 공덕이 원만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그러므로 이 도리는 먼 곳으로 구할 것이 아니며 또한 밖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한생각 바로 그 당처가 그곳인 것이다.   이 자리는 > 설사 三아승지겁을 정진수행하고 여러 점차를 거쳐 마침내 극위에 이르렀더라도 한생각 종합에 이르러서는 다만 원래 스스로가 佛인 것을 증할 뿐인 것이다.   오랜 수행 점차를 거쳤다하여 결코 한가지도 더 보탠것이란 없다.   여기에 이르러서 지난 기나긴동안의 힘써 닦은 것을 도리켜 보면 모두가 꿈속에서 부질없는 짓을 하였음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道는 원래로 마음에서 깨닫는 것이라는 것을 깊이 알아야 한다. 난행고행하고  많은 수행점차를 거쳐서 오래오래 닦고 만행을 두루 두루 거쳐야 원만공덕상이 구족하여진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 모두는 공허할 뿐이다.  성불이란 원래 한생각 깨우쳐 스스로 부처임을아는 것인데 어찌 공용을 들여 오래 닦아야만 한다고 하랴.>  그러기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실로얻은바가 없다.   만약 얻은바가 있었던들 연등불이 나에게 수기를 수시지 않았으리라>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이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니 그러므로(보리)라 하느니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