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이란 무엇인가 (6)

선 입 문

2007-12-12     관리자

  7. 선의 논리 (계속)       

 [ 만약 참선하고자 할진대 여러 말할 것이 없다. 조주 (무자) 를 생각생각에 끊이지 않게 하여 행주좌와에 한결같이 하고 항상 눈앞에 대한 듯이 하라. 금강같이 굳은 뜻을 발하여 한 생각이 만년이 가게 하여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어보아 살피고 다시 살펴야 하느니라. 혹 혼침이나 산란심이 일거든 힘을 다하여 채찍을 더하라. 천번 갈고 만번 단련하면 더욱 신선을 더할 것이며 일구월심 지어가면 공부가 빈틈없이 이어가서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것이 마치 흐르는 샘물과 같을 것이며 마음이 비고 경계가 고요하여 즐겁고 편안하리라. 선악간에 마장이 오더라도 무서워하지도 말고 즐거워 하지도 마라. 마음에 증애심이 있으면 바른 것을 잃고 삿된 것에 떨어지게 되리라.

 뜻을 태산같이 굳게 세우고 마음을 바다같이 넓게 하면 큰 지혜가 태양과 같이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비추리라. 미한 구름이 흩어져 버리면 끝없는 푸른 하늘에 한가위 보름달이 맑게 사무쳐 근원까지 밝을 것이다. 허공에서 불꽃이 튀어 깊은 도리를 깨치리니 이때는 여러 조사의 공안을 한 꼬치로 모두 꿰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법문을 두루 밝지 아니함이 없게 되리라.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속히 큰 선지식을 찾아가 기미를 완전히 하여 바름도 없고 치우침도 없게 하여야 하느니라. 만약 눈밝은 종사중에 들어가 토굴에 묻혀 살되 인연따라 고락을 받아가며 함이 없고 걸림없이 하여 성품을 흰 연꽃같이 할지니라.

때가 오거든 산에서 나와 밑빠진 배를 타고 흐름을 따라 묘를 이루어 널리 인간과 천상을 제도하여 다 함께 피안에 이르러 깨달음을 이루도록 할지니라.   

 8,  화두는 어떤 것인가  

  선이 부처님이 깨달으신 깨달음 자체를 전면적으로 수행자의 면전에 들이대어 바로 볼 것을 촉구하는 공부법임은 위에서 말한 바이다. 이  수행의 과제라고도 할 [ 불조의 언구 ] 를 화두라 하고 또는 공안이라고도 한다. 공안이란 본래 관청의 공문서란 의미를 갖는 말인데 범치 못할 법칙이라는 뜻이 있다. 그 법칙을 바로 아는데서 산 진리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화두는 그 본질이 불조의 깨달음 자체이므로 이러한 성격의 언구는 범부의 생각이나 말로서 어림댈 수가 없다. 그러나 거기에 분명히 자신의 진면목을 밝혀낼 길이 열려있는 것이니 그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자기 법신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화두는 공부인에게 반드시 통과를 요구하는 지상의 과제이다. 그 과제를 뚫고나야 비로소 부처를 알고 조사를 알고 자신을 알고 법을 아는 것이므로 화두를 조사관 이라고도 한다. 조사가 되는 관문이라는 뜻이다.

 화두는 대개 부처님이나 조사의 말씀이나 언동으로 구성된다. 다음에 몇개의 공안을 들어본다.

 앞서 말한 바 세존이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였다든가 다자탑전에서 가섭존자와 자리를 나누어 앉으셨다든가 열반 때에 곽 밖으로 두 발을 내어보이신 고사는 모두가 대표적 공안이다.

 또 달마대사가 처음 중국에 와서 양무제와 만났을때 양무제가 묻기를.

 [ 어떤것이 성스러운 진리의 첫째가는 도리입니까? ] 했다. 달마대사는, [ 성스러운 것이란 없다.]

 다시 묻기를, [ 나와 대하고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 [ 모르겠다 ] 이것은 달마불식으로 이르는 공안이다.

 또 혜능대사가 하루는 대중에게 말하기를,  [ 나에게 한 물건이 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이름도 없고 앞뒤도 없다. 밝기로는 태양보다 밝고 어둡기로는 칠흙보다 더하니 대중은 이것을 알겠는가? ] 하였다.

  이것은 [ 이것이 무엇인가 ] 시심마로 불리우는 화두다.

 또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묻기를,  [ 개에도 불성이 있습니까? ] 하니 [ 없느니라 ] 하였다.

 이것은 무자화두로 불리우는 공안이다.

 또 영산회상에서 부처님께서 마니주를 들어 대중에 보이면서, [ 이것이 어떤 빛을 하고 있는가? ] 물었다.

대중이 제각기 보는대로 혹은 검다, 혹은 누르다, 혹은 푸르다고 대답하였다. 다음에 세존은 마니주를 옷에 숨기고 두 손을 번쩍들어 보이면서 

 [ 이 마니주는 어떤 빛을 하고 있느냐? ] 고 물었다. 앞서 대답했던 오부천왕이 의아해 하면서,

 [ 세존께서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사온데 무슨 빛이 있다고 하십니까.] 하였다.

 [ 너희들은 어쩌면 이다지도 우둔하냐. 세간의 구슬에 대하여는 이말 저말 많더니 이제 진실한 마니주를 보였는데 말이 없구나.] 하였다.

 이것은 이른바 마니주 화두다.

 고래로 조사공안이 1700 이된다고 한다. 이 숫자는 전등록에 실린 불조의 수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찌 공안을 수로 헤아릴 수 있을까. 지혜의 눈을 얻기 전에는 불조의 언동 그 모두가 공안일 수밖에 없다.

 공안은 깨달음 자체의 전면제시라는 점은 이미 여러번 말했다. 그런데 불조의 깨달음을 누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불조의 지혜안목을 연 사람만이 알아듣는다. 그밖의 범부들은 알아들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범부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미혹하여 6근 7진 8식의 18계에 머물러 산다. 바꿔 말하면 상대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거기서 나고 죽으며 알고 모르고, 있고 없고를 결정한다. 18계 내의 상대성 논리로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18계가 아닌 18계에서 벗어난 경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도, 생각할 수도, 말할수도, 어떻게 더듬어볼 수도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오직 절벽에 맞부딪힌 것처럼 꽉 막힐 뿐이다. 그리고 [ 이것이 무슨 뜻인가? ] 하는 의정의 벽에 맞서게 된다. 이것이 범부가 공안에 대한 대응자세이며 그 표정일 수 밖에 없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