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의학에서 본 깨달음

2007-12-11     우에무라 마사히사(植村正久)

의학은 병자를 고통에서 해방하는 자연과학의 이론 기술을 응용하는 분야다. 깨달음은 만인이 가지는 고뇌와 불안에서 해방하는 것으로서 고도의 종교적 정조를 토대로 한 행과 체험에서 얻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의학과 깨달음은 서로 달라서 자칫 무관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신의학과 정신 신체 의학의 진보로 인하여 육체의 병도 고뇌나 불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은 깨달음이 심신의 병의 예방, 나아가 치료에 유효한 것을 뜻한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당연히 의학과 종교의 통합도 생각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깨달음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토대로 하여 의학의 대상으로서 중요한 건강, 상해, 죽음 등에 대하여 깨달음이 갖는 의미를 말해 보고자 한다.

[1]깨달음이 가져오는 마음의 상태

깨달음은 미혹에서 벗어나 인생의 진리를 체득하는 것, 또는 본능에 근거한 정신적 동요를 없애어 바른 지혜가 진리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 것이나 미혹과 동요가 없이 진리를 체득하는 것이다. 여기서 제거되는 것은 미혹과 동요다. 구체적으로는 망집. 아집. 등 집착 경향과 잡념 경향과 망념. 사심. 고뇌를 없애는 것인데 이런 마음 상태를 번뇌라고 말해 두자.

욕구와 번뇌 욕구는 행동의 원천이고 인간의 정신적 에너지이다. 번뇌는 모든 욕구에 관계되어 발생한다.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1차] 욕구와 사회적[2차]욕구로 구분된다. 생리적 욕구는 음식이라든가 또는 성 등 동물에게도 공동적인 육체욕이고, 자신과 종족을 유지하는 본능이다. 이런 생리적 욕구는 생존의 한도 내에서는 허락되지만, 이것을 넘어서 무한으로 뻗어 나가는 것은 번뇌다. 다음에 사회적 욕구는 인간 고유의 것으로서, 물질욕과 명예 등 정신력이다. 이 가운데서도 바른 것, 타인을 위한 것은 허용이 된다. 예컨대 깨달음이나 포교에 대한 욕구, 약자를 구제하는 욕구 등은 번뇌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범부는 생리적 욕구나 사회적 욕구를 한도 이상으로 확대시키고자 한다. 이를 세속적 욕구라 한다.

깨달음의 생리, 심리 번뇌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속적 욕구에 대한 불만 갈등이 심리적 스트레스가 되어 감정면에 불안과 긴장을 가져온 상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깨달음이란 이런 상태에서 해방된, 마음의 안정된 상태라고 생각된다. 다음에 심리학적으로 깨달음을 적응기제{適應機制}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신불에 귀의하고 자신에게서 신불을 발견하는 점에서의 동일시의 기제, 신불의 절대력에 구원 받는다는 자기 암시 등의 기제다. 그러나 깨달음과의 근본적 차는 적응기제가 스트레스에서의 일시적 해방인데 대하여 깨달음은 완전히 해방되어 만족한 상태라는 점이다. 이 점은 수행을 쌓은 선승에 대한 좌선 시의 뇌파나 에너지 대사의 측정 결과에서도 추정할 수 있다. 즉 번뇌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되고 불안,긴장을 부르며, 결과적으로 정신활동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좌선 시에는 뇌파도 안정되고 에너지 소비도 가장 적다. 그리고 긴장과 이완이 잘 통합되어 폭발적 에너지를 간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2]깨달음과 심신의 건강

깨달음 자체는 마음의 상태이고 그것이 육체건강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인 행에서 생활 또는 체력의 강화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깊은 휴양도 된다. 이런 깨달음은 후술하는 바와 같이 심인성{心因性} 질병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작은 일로 해서 뜻하지 아니한 사고나 범죄를 일으킬 때가 있다. 특히 심인성 질병은 분명히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이고, 깨달음은 이것을 예방 또는 치료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노이로제는 정신 장애 일종인데, 유전이 아니고 주로 심리적 스트레스에 의하여 발병하며 감정면과 신체 기능에 많은 장애를 가져온다. 이것은 문화의 향상 사회 발전에 따르는 심리적 스트레스의 증대에 따라 증가하므로 현재 국민 보건상 큰과제다. 또 심신증{心身症}이라는 것이 있다. 종전에는 감정이 신체의 기질적 장애를 가져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정신 신체 의학의 분야가 이것이다. 위궤양, 본태성 고혈압, 천식, 편두통 등이 알려져 있는데 심료내과가 담당하고 있다. 또 만성 중독증도 마음에 관계되는 병이다. 이것은 마약, 각성제, 술 등에 대한 강한 심리적 신체적 의존성에서 오는 장애로 때로는 폐인도 된다. 이런 것을 사용하는 것은 대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데 기인한다. 따라서 깨달음에 의하여 마음이 안정되면 이런 것을 섭취하지 아니한다. 깨달음은 이들 만성중독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치료도 큰 역할 을 한다.

치료법으로서의 깨달음 의료와 깨달음은 자연과학과 종교라는 다른 분야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러나 이 양자는 어느 것이나 인간을 고에서 해방시키는 행복을 목표한다. 이 점에서 의료와 종교는 같은 뿌리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20세기 중반부터 발달한 정신 신체 의학에 심리학이 도입되어 심리요법이 중시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의료에서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깨달음의 의미에 주목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깨달음은 의료와 종교의 접촉으로서 금후에도 적극적으로 도입될 것이다.

[3]깨달음과 죽음

인간은 쾌락의 원칙에 따라 매일을 산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구하며 안전과 장수를 원한다. 그렇지만 산 것은 반드시 죽음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개 타력 본원의 종교에서는 생명과 육체와 정신{영혼]을 분류하여 죽음을 인정하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영혼에 위탁한다. 이것이 과학적이냐 아니냐는 별 문제로 하고 이것이 인간의 지혜라고도 할 수 있다. 번뇌가 구족한 범부가 성불한다면 인간에 있어 깨달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필자의 추측으로는 깨달음은 귀의의 극한이고 부처님과 일체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자력 본원의 종교에서는 깨달음으로써 생사를 초월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집착과 공포와 불안이 없는 상태로서 마음이 불생불멸의 경지에 도달한 경우이다. 이때 는 깨달음이 자신 가운데서 신불과 일체화한 상태이거나 아니면 깨달음의 경지 그 자체가 신불이어서 [번뇌 즉시 보리]인지도 모른다.

의료는 병고의 제거와 수명의 연장이라는 일에 목적이 있지만 이것이 서로 경합할 때가 있으니 마약 사용의 경우이다. 수명을 늘리자니 고통이 계속되고 고통을 줄이자니 수명이 느는 결과가 된다. 죽음을 선고 받은 암환자와 같은 환자는 신체적 고통 위에 정신적 고뇌에 빠진다. 만약 깨달음을 얻었다면 적어도 정신적 고뇌는 없이 마음의 안정과 감사 속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리라. 이것은 본인으로서나 의사나 가족으로서 바람직하다. [병의론{病儀論}]에는 이런 환자는 부처님께 귀의하므로써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귀의가 깨달음의 상태이고 의료에 있어 최선의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 글은 일본 大法輪 50권 2호에서의 초역이다-편집부)

우에무라 마사히사
의학박사, 일본 구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