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적막한,

보리수 그늘

2007-12-10     관리자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면 다소 화려하다고 한다. 또한 화려한 반면, 먼 곳을 응시하는 눈때문에 어찌 보면 어둡거나 외롭게도 보인다고 한다.

  남들 눈에 비치는 화려한 얼굴은 내 본모습을 감춘 화장한 얼굴이다. 그러나 본모습은 어멈같이 아무렇게나, 최대한 편안한 옷을 걸치고 집안에서 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화장을 지우고 있을 때이다. 이를테면 아무 겉치레나 가식을 걸치니 않을 때가, 한 곳에 정신을 집중시킨 그런 얼굴이 누구나가 본모습을 엿보여줄 수 있듯이 나 또한 진짜 모습이 그런 때이다.

  무표정.

  표정을 안으로 감추는 그런 얼굴을 나는 제일 싫어했다.

  그 표정은 세상 고통을 혼자서 다 벗어버린 듯 초연해 있거나 이미 온 세상을 살아버린 것처럼 겉늙어 보여서 어딘지 가면을 쓴 얼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슬프면 슬프게 기쁘면 기쁘게 표정이 있고 움직이는 얼굴을 나는 더 솔직하게 여기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사람은 변하는 모양이다. 무표정도 표정도 아닌 중간 얼굴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나친 표정, 포즈만 살아있는 얼굴표정에서는 이미 그 사람의 커다란 공허만 읽게 되어서 감정을 낭비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지나친 솔직은 그래서 또 싫은 것이다.

  어딘가 화려함을 감춘 적막한 듯한 얼굴, 그런 얼굴에서 나는 이것 저것 상상할 수 있고 짚어볼 수 있고 오보랲 시킬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다.

  병원에서 친구가 죽어 가던 날 새벽, 나는 영안실 곁 언덕에서 하얗게 핀 이름모를 풀꽃을 본 적이 있다. 언뜻 어둠 속에서 부스럼꽃 같기도 한 꽃. 그때 막 숨져가던 친구의 하얗고 조그만 시신과 풀꽃은 설명할 수 없이 너무도 닮아보였다. 며칠 뒤 친구의 영구차를 따라가면서 자꾸 어둠 속의 그 꽃을 생각했다.보일듯 말듯 적막한 빛깔로 어둠 속에서 풀꽃은 정말 아름다웠다.

  닿을 수 없이 불가사의한 죽음과 생사이, 보내는 자와 떠나는 자의 중개자 같던 뜻모를 슬픔을 혼자 안고 있는 것같던 아름다운 풀꽃.화려하고 적막하던 얼굴.

  이제 그런 얼굴을 닮을 수 없을지라도 남아있는 가식을 나의 얼굴에서 벗겨낸다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