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쪽의 모습

보리수 그늘

2007-12-10     관리자

  사람들은 생활습관상 자주 거울 앞에 서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병색이 짙은 갑자형인 내얼굴에 대하여 감상적인 생각을 버린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생긴대로 하라는 식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초연해진 것은 물론 아니고 애써 무관심해지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내 태도가 어느 계기에 다소 바뀌게 되었다.

  그러니까 여고 때의 제자들과 어느 절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마침 그 절에는 그들과 동기생인 제자가 불문에 귀의하여 수도하고 있어서 그 절에 머무는 동안 우리들은 향을 사르면서 시간 가는 것도 모르고 갖가지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그때 갑자기 어느 제자가 무슨 새 발견이나 한듯이 화제를 바꾸고 힘을 주며 말했다.

  선생님의 얼굴과 B양(수도중인 제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니 선생님은 세파에 시달린 상처투성이의 슬픈 얼굴이고, B양의 얼굴은 어느새 번뇌가 사라져가는 곱고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나는 순간 뜨끔했다. 그리고 미소지으면서 B양의 얼굴을 살폈다. 과연 그의 얼굴에는 사바세계를 벗어난 맑고 밝은 빛이 감돌고 있지 않은가. 다시보니 티없는 어린이의 얼굴 같기도 하고 어떤 따스운 온기마저 풍기는데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즈음도 거울 앞에 설 때면 때때로 그날의 기억에 빠지게 된다. 역시 내 얼굴엔 인간고뇌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짙은 그늘의 뜻은 아직도 내가 함부로 웃고, 함부로 울고, 함부로 허물어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다시 그 제자가 나를 대한다면 지난 날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얼굴을 보고 더 실망하겠지...... 다만 한가지 위안이라면 위안이 되는 것은, 내 얼굴은 역시 착한 피해자 쪽의 얼굴이지 몹쓸 가해자 쪽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