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그늘] 겨울 송광사

2007-12-07     조갑상

   해마다 겨울이면 회색빛 바람 부는, 내려앉은 차가운 하늘을 배경으로 생각나는 절이 있다.
   나 같은 비불신자가 절을 찾는다는 것은「그냥」이다. 그러니까 여행 중에 들러 보는 정도랄까, 왜 우리나라에서 사찰만 찾으면 가볼 만한 곳은 다 가본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따라서 절은 우리가 산을 오르고 길을 갈 때 으레 만나는 생활과 자연의 일부이리라.
   언제가 그 해 겨울, 직장동료들의 지리산 등반에 참가 했다. 아침 산보조차 귀찮은 내게 초행의 지리산, 그것도 겨울 등산은 거의 모험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일행의 대부분은 준프로급이었고 또 종주(縱走) 등반도 아니었기에 나는 결단을 내렸다.
   2박3일의 중산리 - 천왕봉 - 대원사 코스로 진주에 도착했다. 과연 지리산은「어머니」라는 말을 앞에 붙이고 싶도록 웅장했다. 그래서 지리산 하면 나에겐 언제나「어머니 지리산」이라는 이름으로 굳어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진주에서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지리산 자락의 절을 구경하기로 했다.
   뭐랄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 2년째인 나에겐 여러 가지 부딪쳐 오는 생각들이 많았다. 사회 속에서 겪는 이상과 현실의 갈등, 결혼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학에 대한 절망감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런 여러 가지들이 내 속에 뒤끓고 있는 겨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처음 만난 지리산 겨울바람 속에서 나를 정리해보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으리라.
   대강 장비를 다시 챙겨 투명한 겨울햇살 내려앉은 섬진강을 굽어보며 쌍계사, 칠불암, 연곡사, 화엄사, 천은사 등을 둘렀다. 그리고는 내친김이랄까, 아니면 나에 대한 다스림 또는 겨울바람에 허기가 덜 찼었던지 송광사까지 걸음을 옮겼다. 모두가 초행길에 혼자였음에도 나에 대한 얼얼할 정도의 회초리 같은 걸로 버티어 나갔다.
   오후에 도착한 즉시 송광사엘 들렀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 길게 뻗은 입구, 드물게 스치우는 등산객, 적막한 사내(寺內), 조용스런 스님들의 겨울 빛 투명한 얼굴, 빈 몸 같은 조계산. 부도를 모아놓은 곳을 지나려니 젊은 남녀 두 사람이 햇살을 받고 풀밭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꿈적 않고 자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이상스레 인상적이었고 차라리 어떤 비감함까지 불러 일으켰다.
   그날 밤 나는 절 아래 여관방에서 독주를 자작으로 통음했다. 여러 사정으로 여행의 끝지점이었고 무엇 하나 흔쾌히 정리된 것도 없었다. 빈 몸으로 우는 듯한 조계산 산바람 소리를 들으며 낮에 본 남녀의 모습과, 쓰러져가는 듯한 절의 부속 건물을 이유도 없이 머릿속에 떠올리며 나를 생각했다.
   내가 진 짐이 너무 무거운 게 아닌가. 나는 내 힘에 부치는 짐을 지고 걷고 있는 게 아닌가, 문학과 사회,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으로의 깨달음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들이 두서도 없이 어지럽게 얽히는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냇가의 찬물로 세수하고 송광사를 떠났다. 어떤 결론도 판단도 얻음이 없이.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그 겨울 송광사 밑에서 지낸 밤은 하나의「과정」으로 해마다 겨울이면 찬바람으로 나를 내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