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나의 얼굴

보리수 그늘

2007-12-07     관리자

ㅏ드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은 기계에서 찍어낸 물건일지라도 그 모습은 각기 조금이라도 다르기 마련이다. 모두들 자기 특유의 모습을 갖고 또 비슷한 모습이라도 그가 가진 기질과 환경에 의한 생활의 차이로 얼굴에서 풍겨주는 분의기가 다르다.

  더구나 영화비우들은 개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분의기가 다르기 마련이다. 나도 영화배우란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나 나름의 개성을 살리고자 무척 노력해 왔었다.

  그러나 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가 보고 있는 상대의 얼굴이 나의 얼굴이라는 느낌이 더욱 짙어진다.

  추위에 앙상하게 가지만 드러낸 나무의 모습도 나인 것 같고, 발밑에 기어가는 벌레에게서도 나를 느낀다. 행인들의 바쁜 모습에서도 내가 보이고, 그 앞에 업디어 손을 벌리고 있는 걸인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굶주림에 떤다.

  이렇게 된 데에는 동기가 있다.

  몇년전, 아이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의 일이다.

  그분은 풍을 앓고 계셨었다. 그런데 어디서 자라의 생피를 내어 팔팔 끓여 고아 드리면 좋다는 말을 듣고 딸이 자라를 사왔다. 자라를 큰 통에다 넣고 자라 등위에 무거운 물건을 올려 놓아 피를 뽑아내게 되었다.

  저희들끼리 돌을 올려 놓았다가 저희들이 위에 올라 섰다가 하더니 나를 불렀다. 어머니가 뚱뚱하여 몸무게가 많이 나갈  터이니 자라 등 위에 올라 서서 피를 빼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이끄는 대로 가보니 통속에는 자라의 피가 흥건하였다.

  내가 등 위에 올라서니 무거워서인지 피가 죽죽 나왔다.

  자라 등에서 자라를 내려다 볼제 그 얼굴이 꼭 나의 얼굴처럼 보였다. 그 고통스런 모습을 보며 저게 내 얼굴이려니, 내가 나를 죽이고 있는 것이려니 생각이 들었다.

  그 얼굴 속에는 갖가지 모습이 서려 있었다. 육 이오 때 나는 오라버니 집으로 피난을 갔었다. 오라버니와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아버지 같았다. 오라버니 집에는 팔방에서 일가붙이들이 피난을 와 있었다. 방마다 피난민들로 득실거렸다. 오라버니 집에서 나는 외출이 금해 있었다. 그때는 젊은 시절이었고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어 남의 눈도 많았고, 근방에 까지 온 빨갱이들로부터 북으로 가자는 교섭도 있어 어머님께서 밖에는 나가지 말라는 엄명이 계셨다. 그런데 그 많은 피난식구들 속에서 양식도 모자라 죽을 끓여 먹는 중에도 오라버니댁(올케)이 내게 꼭 쌀밥을 주었다. 고운 몸 축날까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자꾸 미안스러워 시가전이 한창인 서울로 어머니와 함께 왔었다.

  그 오라버니댁의 고맙고 송구스럽던 모습부터, 총알이 빗발치는 서울 시가전, 앞 뒤의 사람이 뛰어가다 총알 맞아 쓰러져, 엎드려 있는 내 등위로 엎어지던 상황 속에서도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저는 죽어도 좋으니 오직 이 딸만이라도 살려줍소서 하고 빌던 어머니의 모습도......

  그 어머니가 나를 살리고자 그렇게 관세음보살을 염했는데 나는 한 생명을 죽이면서 관세음보살을 염하고 있는 것이다.

  방생을 하겠다고 시장에서 산 자라 등에 이름을 써서 강물에 놓아 줄 때는 언제고, 그 피를 내겠다고 무거운 몸뚱이로 짓누르고 있는 지금은 또한 어찌해야 하는가.

  대각사에서 고암스님께 계를 받으면서 그렇게도 살생을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나의 불명 선덕행을 생각하며, 계 받을 때의 맹세를 생각하며, 오라버니댁의 고마운 얼굴을 생각하며, 어머님의 관세음보살 염하는 소릴 들으며, 나도 자라의 등위에서 관세음보살을 염했다.

  내가 자라이고 자라가 나임을 느끼면서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모두 나의 얼굴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원로 영화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