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 법문] 보살계본사기 해설 (2)

2007-12-07     심재열

[3]해제

〈가 〉범망(梵網)의 뜻

해제라 함은 경전의 제명(題名)을 풀이한다는 말이다. 경.논(經.論)을 공부하고 주석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경.논의 근본취지와 제명을 먼저 밝힌 다음에 본문의 뜻을 추자적으로 해설하는 순서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까닭은 불전들의 명칭은 그 불전에 들어 있는 내용을 잘 함축해서 몇 자의 이름으로 지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효대사도 이 경을 해설하는 맨 첫 머리에서, 『장차 이 경을 해석함에 있어 간략하게 두 부문으로 나누기로 한다. 첫째 제명을 해석하고, 둘째는 글을 따라 해설하겠다.』고 하였던 것이다. 범망으로 이 경의 이름을 삼게 된 소이를 원효 대사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보살계본>이라 함은 글 속에 담겨 있는 법을 뜻하여 이름한 것인데, 이 경의 바른 이름이 아니다. 이 경의 바른 이름은<범망경보살심지품>이니 이것은 비유로써 지어진 이름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실 적에 「범천」의 보배 그물이 당(幢=깃대)을 덮었는데 그 보배 그물의 「눈 코」가 한량 없었다. 부처님은 이 보배 그물을 보시고 이 경을 말씀하셨는데 부처님의 법문도 또한 이와 같이 중중무진(重重無盡)함을 비유하여 이 경의 이름을 <범망>이라 한 것이다. 』

 <보살계본>이란 이 경문의 내용이 보살행을 닦아 나가는 대승불교의 보살계이므로 천태대사 이래로 그렇게 덧붙여 부르게 된 것이다.

 <범망>이란 범천의 인다라망이란 뜻이니, 대범천의 궁궐을 장엄하는 온갖 보배구슬로 만들어진 장막이다. 대범천은 색계 초선천(色界 初禪天)의 세째 하늘 나라로, 이 하늘의 주인인 대범천왕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하느님」이며 이하의 하늘과 사바세계를 주재한다.

 이 하늘의 천궁에 있는 깃대〔幢〕를 장엄한 인다라망은 백천만 억의 한량 없는 보배구슬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낱낱의 보배구슬의 광채가 각각 서로 달라서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 구슬들이 각각 다른 광채를 서로 비추어서 상대방 구슬에 들어가고 또 받아들이고 하므로 한 구슬들마다 한량없는 구슬의 빛깔을 가지고 있게 되며, 다시 한량 없는 빛을 뿜어 내게 된다. 그리하여 그 빛깔이 중중무진으로 거듭 비추고 거듭 받아 들여서 장관을 이루지만 그 모든 구슬들의 빛깔은 조금도 방해로움을 서로 받지 않는다.

 흔히 인다라망은 도리천의 임금인 제석천의 그것을 가리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래서 이것을 제망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대범천은 그 복력과 장엄이 하늘 가운데 으뜸이므로 제망보다도 범망은 중중무진의 뜻이 한 층 더한 것으로 된다.여기에 이 경을 <제망경>이라 하지 않고 <범망경>이라 하게 된 동기가 있다 할 것이다.

 

〈나〉경제목의 七종

 원효대사는 이 범망경의 제호를 해석하는 가운데 경의 제호 성립에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이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어떤 경은 다만 법 (경 가운데 들어 있는 진리의 내용)에 따라 그 이름을 짓는 경우가 있으니,이를테면 열반경등이 그렇고 혹 어떤 경은 다만 사람의 이름으로써 그 제목을 삼기도 하니 이를테면 승만경등이 그예며, 또 어떤경은 법과 비유를 합하여 그 제목을 삼기도 하니 이를테면 묘법연화경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경은 다만 비유만 가지고 이름을 삼은 것이니, 그물로써 부처님의 설법에 비유하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법.비유.사람의 세 가지 원칙을 단수적으로만 적용하여 모든 경의 제명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두 가지 원칙이 합해져서 성립되는 경명이 많으며 때로는 세 가지 원칙을 다 포함하여 지어지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묘법연화경의 묘법은 법의 원칙이고 연화는 비유의 원칙이므로 이 경은 법.비유의 복합으로 이루어진 경명이며, 여래사자후경.불설수능엄경의 경우는 사람과 비유의 두 원칙이 복합된 경명이다. 또 대방광불화엄경 같은 경우에는 법.비유. 사람의 세 원칙이 복합된 경명이다. 이것을 도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다〉원융일체(圓融一切)의 뜻

 이 경 이름 <범망>에는 개체와 전체가 둘이 아닌 개전불이(個全不二). 원융일체의 뜻이 들어 있다. 곧 현상계의 원리로 볼 때에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무한한 차별적 세계일 뿐이지만, 근본적인 법성의 도리로 볼 때에는 원융일체의 원리에 귀결된다.

 원효대사의 다음과 같은 술회를 통해 우리는 범망의 비유 가운데 원융일체의 사상이 들어 있음을 명백하게 인지(認知)할 수 있다. 이 경을 그물에 비유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여래가 말씀한 한량 없는 세계, 무한대의 세계에 비유되는 무진법문의 뜻을 연화장세계에 견준 것이다.

 이 세계는 우주 구성의 맨 아래인 평등풍륜(平等風輪)으로부터 우주 구성의 맨 위인 승장풍륜(勝藏風輪)에 이르기까지 한량 없는 세계가 있고 또 횡적(橫的)으로도 그렇게 한량 없는 세계가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화엄경에 자세히 설명하여 있는 바와 같다.

 이와 같이 한량 없는 모든 세계가 모두 다, 이세계는 저 세계가 아니고 저 세계는 이 세계와 같지 않다. 이렇게 존재하는 무한대한 세계는 차별의 현상이 엄연히 있어서 개별의 존재성이 무시될 수 없다. 마치 저 <범망>의, 이 「그물 코」가 저 쪽의 「그물 코 」가 아니고 저 「그물 코 」가 이쪽의 「그물 코」가 아니둣이 그 차별이 한량 없음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법성의 진리.정토의 원리로 보면 온 세계가 정토 아닌 세계가 없고 법성을 내어 놓고 따로 세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뜻은 「그물 코」의 이치에 이 경이 원리를 비유하여 비록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 ㄱ,물이 모든 「그물 코」도 전체의 그물 아닌 것이 없는 뜻을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범천궁의 그물 곧 범망을 부처님의 설법에 견주어 이 경의 이름을 지은 바이다.』

 대범천의 인다라망을 이끌어 이 경의 제호로 삼은 것은 화엄경의 「다상즉상입 사사무애(多相卽相入 事事無碍)」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밝히는데 있다. 현상계의 서로 다른 사물적 존재의 수가 한없이 많고 그 공간세계의 크기 또한 무한대이지만, 그러나 서로 장애로움이 없이 중중무진한 그대로 원융상통한 교삽을 이루고 있으며, 낱낱의 사물 가운데 우주의 무한연기(無限緣起)의 원리가 또한 내포되어 있는 진리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현상계의 원리가 이처럼 오묘한 것은 현상계는 곧 그대로 심성의 묘법에 의해 나타난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교화의 문도 이와 같이 한량 없이 많고 그 뜻이 무한하지만 무량수의 보살들이 각각 자기의 경도와 근기에 알맞는 가르침을 의지해서 불타의 정각을 깨달아 들어가게 된다.

 또 무한 공간의 시방세계에 계신 모든 부처님들이 서로 다른 교화의 방법을 펴서 그 수가 저 인다라망의 눈코처럼 한량 없이 많지만 조금도 서로 장애되고 어긋남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본원청정하고 장엄무비한 심체를 저 대범천의 하느님이 인다라망으로 궁궐과 몸을 장엄하게 꾸민 것에 비기어, 또는 불.보살이 진리의 법으로써 진리의 몸을 장엄하는 것을 하나의 비유로써 범망의 장엄에 견주어 이 경을 범망경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