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 수 있을 때 베풀어야지요

빛을 더하는 사람들

2007-12-07     관리자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리운 계절이다. 차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맑은 연두 빛 우리 녹차는 사람의 마음을 순일하게 해주어서 좋다. 차담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더욱 좋을 터. 한가한 토요일 오후 성북동 명원문화재단 김의정 원장을 찾았다.
30여 년간 우리 차 보급에 이바지한 공로로 2005년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주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을 받기도 한 김의정 원장은 우리 불자들에게는 불교신도회를 대표하는 중앙신도회 회장으로 더 유명하다. 1955년 불교신도회가 생긴 이래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만장일치로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쌍용그룹 창업주 김성곤 회장의 둘째딸이라는 점, 대보살이요, 잊혀져간 우리의 전통다례를 복원한 어머니 명원 김미희 여사를 쏙 빼어 닮았다는 점, 게다가 중앙신도회 회장을 맡아 신도회 조직을 활성화시키고, 불교인재개발원을 설립하여 인재를 발굴하는 한편, 그 동안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불교회관을 건립, 완공(조계사 인근, 종로구 견지동 13번지. 지상 9층, 지하 2층으로 건립. 2008년 9월 완공 예정)을 앞두고 있다는 점 등등.
사실 여성으로서 처음 중앙신도회장을 맡았을 때에는 기대 반 걱정 반 염려들도 많았다. 그러나 김의정 회장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이해’와 ‘합의’, ‘공감’을 통해 신도회 조직을 탄탄하게 하는 한편 사업들을 전개해나갔다.

어머니를 따라 걷는 길
김의정 원장의 불교사랑, 차사랑은 그의 어머니 김미희 여사로부터 비롯된다. 대그룹 회장 부인으로, 불교계의 대보살로, 다인(茶人)으로 유명했던 어머니의 핏줄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어머니를 따라 다인의 길을 걷고, 불자가 된 것도 우연찮은 일이다.
“어머니는 잊혀진 우리 차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한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궁중다례를 익히기 위해 조선의 마지막 상궁인 김명길, 성옥염 씨로부터 전통다례법을 전수받았어요. 70년대 중반에는 초의 선사가 우리 차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동다송과 다신전을 지으신 해남 대흥사 일지암을 복원했고, 한국의 궁중다례, 생활다례, 사원다례, 접빈다례, 사당다례 등을 내용으로 한국다례학술발표회를 최초로 열기도 했지요.”
어머니 김미희 여사는 왜곡된 우리의 차 문화를 바로 잡고 복원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생활다례라는 말도 처음 쓰기 시작했다. 김의정 원장 또한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보좌하면서 전통다례법을 전수받고, 몸에 익혔다. 어머니 호 명원(茗園)은 ‘차밭’이라는 의미다. 다인으로서 또 불가의 다례에 충실한 사람으로서 그 뜻을 받아 지니기 위해 어머니가 쓰시던 호를 그대로 받아쓰기로 했다. 명원문화재단은 1996년 김의정 원장이 어머니의 뜻을 따라 다성(茶聖) 초의 선사를 기리는 기념행사와 연구, 그리고 우리의 차 문화를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제대로 알리는 사업을 펼치기 위해 설립하였고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해가고 있다.
“차는 앉아서 마셔야 하기에 자연히 마음이 다스려집니다. 차를 가까이 하면 자신에 충실해지고 그러면서 남을 위한 삶에 가까워집니다. 혼자 마셔도 좋고 둘이 마셔도 좋고 여럿이 마셔도 좋은 것이 우리의 차입니다.”
김의정 원장은 방송극에 술 마시는 장면 대신 차 마시는 장면으로 바꾸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일반 드라마 속에서도 술 대신 차 마시는 장면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술 마시고 상을 엎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는데 자라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싶어 국민정서 함양을 위해서라도 술 대신 차 마시는 장면을 연출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적극적으로 건의하고 도왔더니 요즈음은 특히 사극에 차 마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왕과 비’는 직접 고증도 하고 지도도 했어요.”


이해와 협력, 마음의 공명으로

변화의 시대, 강함보다는 부드러움과 조화, 통합이 더 잘 통하는 요즈음 시대의 흐름 때문인가. 김의정 원장이 중앙신도회 회장 소임을 맡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이에 상응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리더=남자가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지배적 리더십이 현대에 들어와서는 ‘설득력’과 ‘영향력’을 전제로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공명’이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이러한 문제는 신도회관 건립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님들의 이해와 도움이 컸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제 힘이라기보다 어머니의 힘이 컸습니다. 어머니가 평생에 뿌려놓은 씨앗 덕분이지요. 종단의 어른스님들과 불교계의 여러분들이 ‘그 어머니의 그 딸’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뒤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신도회관은 신도회의 구심점으로 행정과 종무, 그리고 신도조직의 센터 기능은 물론이려니와 신도단체들이 한 공간에 있음으로써 불교 조직들간의 유기적인 교류와 협력이 긴밀해질 것이다. 또한 각종 회의와 세미나개최와 대중적인 교육과 문화적인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어야
“늘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어라. 돈이 없으면 마음으로라도 베풀어라”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인가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 장롱을 깨끗이 정리하고, 평소 입던 한복을 모두 나누어주셨다. 이생을 하직하던 날은 앰뷸런스에 실려 가면서도 기사가 새벽부터 애쓰니 5만원을 드리라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 유언이었다.
“차의 정신도, 부처님의 가르침도 결국에는 ‘베풀면서 살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꽃 한 송이를 꽂아도 정성이 깃들면 되는 거예요. 열 송이 꽂는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 없어요. 다식을 세 개 살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돼요. 단풍잎 하나에 다식 하나를 올려도 그 사람의 정성이 보이면 되는 것이지요. 요즈음 예쁘게 물든 감잎이나 은행잎도 좋고요. 굳이 비싼 접시가 필요한 것이 아니지요. 정성과 개성이 있어 보여 얼마나 좋습니까.”
머지않은 날 신도회관이라는 그늘이 만들어지면 고단한 삶에 지친 불자들이 쉬어가기도 하고 누구나 오다 가다가 들러 반가운 도반과 함께 차 한 잔 마시고 가게 될 것을 생각하니 그 또한 감사할 일이라며 살며시 웃는 김의정 원장.
문득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이 같은 꽃이여! … 소박하고 소탈하고 편안한 명원 김의정 원장은 늦가을 국화처럼 향기로운 사람이다. 그래서인가. 다시 또 보고 싶은 그런 사람이다. 취재정리 | 남동화 사진 | 하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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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정 님은 1941년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와 미국 오크라호마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하였으며, 어머니 명원 김미희 여사의 뒤를 이어 다인의 길을 걸으며 우리 차의 계승 발전을 위해 1996년 명원문화재단을 설립하였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27호 궁중다례의식 보유자로 우리 차 문화를 널리 알리고 차 마시는 문화를 보급하는 데 기여해 2005년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주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을 받았다.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제23대 중앙신도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신도조직의 활성화와 인적자원의 개발과 양성에 힘쓰며, 그 동안 숙원사업이던 신도회관을 건립, 완공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