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린다왕문경의 세계] 윤회의 문제

[미린다왕문경의 세계]

2007-12-05     윤호진

  나가세나{Nagasena}와 미린다{Milinda}는 먼저 무아이론{無我 理論}에 대해 구체적인 토론을 했다. 마침내 미린다는 고정불변하는 영혼과 같은 존재{아트만 ㅡatrnan}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무아{無我}문제와 관련되어 다른 문제가 생기게 된다. 고정불변하는 영혼과 같은 존재가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윤회가 가능한가. [누가] 또는 [무엇이] 윤회를 하며 업[業}에 대한 과보{果報}는 누가 받는가?

  무아와 윤회이론은 불교에서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는 중심이론들이다. 그러나 이 두 이론은 공존{共存}할 수 있기에는 너무나 모순되는 것들이다. 무아이론의 입장에서는, 고정불변하는 영혼 같은 존재를 부정한다. 그러나 윤회이론의 입장에서는, 윤회하는 주체{主體}와 업의 과보를 받을 수 있는 어떤 존재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미린다왕문경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이미 붓다{Buddha} 당시부터 문제가 되었고 줄곧 불교인들을 괴롭혀 왔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을 구할 때는 거의 항상 미린다왕문경에 의존한다. 미린다왕문경은 정경{正經}도 이니고 저작된 연대도 부처님 때보다 상당히 후대{後代}인데도 불교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인 무아윤회{無我輪廻}에 대한 답이 필요할 때는 이 경에서 주고  있는 답을 사용한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것은 이 문제에  관한 한 미린다왕문경에서 주고 있는 설명이 다른 어느 곳의 설명보다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미린다는 나가세나에게 윤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나가세나(존자)께서는 윤회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윤회란 무엇입니까?]

  나가세나는, [어떤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여기서 죽고, 여기서 죽어 다른 곳에 다시 태어나서 거기에서 죽습니다,,,,.이것이 바로 윤회입니다.] 라고 답한다. 그리고는 미린다를 좀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망고 열매의 비유를 든다.

  [어떤 사람이 망고를 먹고 씨{種}를 심으면 그 씨에서 망고나무가 자라서 열매가 열립니다. 어떤 사람이 (다시) 이 열매를 먹고 그 씨를 심으면 망고나무가 자랍니다.]

  윤회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윤회의 의미가, [어떤 존재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여기서 죽고, 여기서 죽어 다른 곳에 다시 태어나서 거기서 죽습니다.] 라는 것이라면, [여기서 죽어 저기로 태어나는] 영혼과 같은 어떤 존재, 망고의 비유에서 본 망고의 씨와 같은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아이론을 주장하는 나가세나는 그런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또는 [어떻게], [여기서 죽어 저기에 태어난다]고 할수 있는가? 미린다는 이 문제에 대해 나가세나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이 몸에서 다른 몸으로 이전[移傳}하는 존재가 있습니까?]

  나가세나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없습니다.]

  나가세나는 윤회를 설명하면서 어떤 존재가 한 생{生}에서 다른 생으로 [이전{移傳}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여기서 죽어 다른 곳에 다시 태어난다]라고 했을 뿐이다. 그것을 나가세나는, [현재의 명색{名色,존재}이 선악업{善惡業}을 짓고 이 업의 결과에 의해 다른 명색{名色}이 다시 태어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비유를 들면, [우유가 버터{酪}로 되고 버터가 치즈{生猷}로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우유가 버터로 되고 버터가 치즈로 될 때, 우유의 상태에서 버터의 상태로 변하지 않고 옮겨가는 어떤 존재는 없다. 단지 변화가 있을 뿐이다. [변화]하면서 [계속]이 있는 것이다.

  나가세나는 다른 비유를 든다. 밤에 등불을 켜 두면 그 등불은 밤새도록 탄다. 이럴 경우,

  [새벽 등불은 밤중 등불과 같고, 밤중 등불은 초저녁 등불과 같습니까?]

   [아닙니다.]

  등불은 계속해서 타고 있으므로 일 찰나도 같을 리 없다. 그렇다면,

  [새벽, 밤중, 초저녁의 등불은 각각 다른 등불입니까?}

  [아닙니다. 온 밤을 같은 등불이 탑니다.]

  그 등잔에 그 등불인 것이다. 초저녁 등불에서 새벽 등불까지 계속되는 고정 불변의 존재가 없으면서도 등불은 계속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아무 것도 이전됨이 없는 윤회를 주장한다면 죽는 존재와 다시 태어나는 존재는 별개의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러나 나가세나의 주장은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어떤 것이 이전되는것이 없이 윤회한다고 해서 죽는 존재와 재생하는 존재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와 반대로 그 두 존재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처음의 존재가 없다면 그 다음의 존재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가세나는 이 관계를,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관계라고 표현한다.

  [대왕이여, 대왕께서는 (어머니) 등에 엎힌 어린 아기였을 때, 어른이 된 현재와 같았습니까?]

  [아닙니다.]

  [어린 아기 미린다]와 [어른 미린다] 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명백히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별개의 존재라고 할 수도 없다. 어릴 때의 미린다와 어른이 된 미린다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비록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동일한 미린다임에는 틀림없다. 이처럼 윤회의 경우에도 죽는 존재와 다시 태어나는 존재는 다르지만 그러나 양 존재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무아윤회의 이론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고정불변하는 영혼 같은 존재가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이전함이 없다면 [그 업에 그 과보]라는 윤회의 근본 원칙이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윤회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은 사람이 지은 대로 받는다]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것이다.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이전되는 영혼 같은 존재가 없다면 업을 지은 존재와 그 과보를 받는 존재가 동일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 한 존재가 지은 업에 대해 그 과보를 다른 존재가 받게 된다는 결과로 되어 버린다.

  이 문제에 대해 미린다는 나가세나와의 토론의 시작에서 이미 의문을 제기했다. 나가세나가 영혼과 같은 존재{atman}가 없다고 말하자, 미린다는,

  [그렇다면 선악업도 없고 선악업을 짓는 사람도 없고, 선악업의 과보도 없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가세나는 이 문제에 대한 답도 마련하고 있다. 이번에도 비유로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 망고를 훔치다가 망고나무 주인에게 붙잡혀 왕에게 끌려와서,

  [내가 갖고 간 망고는 이 사람의 망고는 아닙니다. 이 사람이 심은 망고와 내가 갖고 간 망고는 다른 것입니다.] 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질문이다.

  망고 도둑의 논리는, 망고 주인이 심은 망고는 그것이 이미 썩어 버렸고, 자기가 갖고 간 망고는 그 망고 주인이 심은 망고에서 싹이 나와 그것이 자라 망고나무가 되어 거기에서 열린 망고이므로, 망고 주인이 심은 망고와 자기가 따간 망고는 동일한 것이 아니므로 [도둑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 도둑의 논리는 그럴 듯하지만 정당하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도둑이 훔친 망고는 망고 주인이 심은 망고에서 나온 것이므로 망고 주인의 망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윤회에서도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이전되는 영혼 같은 존재가 없고 죽은 존재와 재생한 존재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재생한 존재는 죽은 존재가 지은 업에 의해 재생했으므로 앞 존재가 지은 업은 뒷 존재의 소유가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가세나의 표현을 빌린다면,

  [재생하는 존재와 죽은 존재와는 다르지만 재생하는 존재는 죽은 존재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재생하는 존재는 전에 지은 죄에서 해방되어진다고 말할 수는없다.]는 것이다.

  (스님, 승가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