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하지 않는 믿음

룸비니 동산

2007-12-05     관리자

   산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절(寺)을 불심(佛心)도 없이 단순히 조용하다는 분위기에만 이끌려 찾았건만 모든 것은 순간적인 기분전환에 불과했고 거듭되는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요즈음에는 더욱 스스로를 재촉하는 마음의 소리가 있기에 내가 항상 즐겨하는 독서와 글 쓰는 일도 생각만큼 되질 않아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혼자서 자문해 보나 대답이 있을 리가 없다.
   이대로 계속된 불안전한 상태에서는 나 자신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렵고 애틋한 생(生)의 집착에서 잠시라도 탈출하고 싶은 심정으로 붓을 잡아야겠다고 마음먹고 건방지게 금강경(金剛經) 공부를 시작했다. 며칠 밤을 모르는 한자를 찾고 읽고 또 읽어보았다. 그러면서 자문했다. 이것이 대체 무슨 말씀인가? 하고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말의 뜻이라도 알고 쓰자는 생각에서 도움을 청하러 어떤 스님을 찾아 나섰다. 그 스님은 나의 수준에 맞고 이해가 쉽게 될 수 있는 책들을 주셨다. 너무나 고맙게 해주셔서 옛날부터 알았던 지인(知人)이 아닌가 착각을 일으킬 만큼 다정하게 부처님 말씀을 전해주셨다. 순간「바로 이거야!」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이렇게 자비를 베풀어 모든 중생이 스스로 부처가 되도록 설하시지 않았던가! 마음속깊이 믿음을 갖고 그 믿음으로 의혹을 풀고 풀어보면 진리(眞理)이기에 진리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 당당하게 현실 앞에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왜 믿어야 하며, 믿을 수 있는 근거를 확인까지 하려 하면서 내 자신 부끄럽지 않게 지내고 있다며 당당하게 맞섰던 나였다.」
   그러나 불교성전(佛敎聖典)에는 믿음을 강요하거나 내가 부처니 내가 복을 줄 것이니 나를 믿으란 말씀이 없음을 알고는 그렇게도 당당했던 내 자신 부끄럽기만 했다.
   법당에 엎드려 절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 이유를 물어보니 남편의 사업, 부모 형제의 고통, 자식의 영화(榮華)를 빌려고 절에 간다는 말에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지금 안다고 하기 보다는 할 수 있다고 하는 긍정이 생겼다. 우리들은 올바른 것을 보고 느끼면 너나없이 그렇다고 하며 속마음으로 인정한다. 세상사가 복잡하고 뜻대로 안되면 불쑥 내뱉는 말인즉 전생에 무슨 죄가 있었느냐고 한다는 점과 인간대사라 하는 결혼에도 인연으로 만났다고 하는 점, 우연히 오고 가다 만나면 또한 이것을 인연이라 한다. 바로 이 말씀이 부처님 말씀이며 불교 신도가 아니라도 무심히 이런 말을 한번이라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진리의 부처님 말씀은 제자로 하여금 듣지 않고 보지 않아도 인정할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하루 한 시간씩이나마 각성을 하면서 부처님께 가까이 가려 노력한다.
   옛적에 부처님 뵙고파 못 견딘 사람이 부처님 모습을 만들어 모셔놓고 뵙는 마음처럼, 나도 부처님 전에 엎드려 뵙는 맘으로 점점 적어지는 욕심과 집착에서 생긴 천만가지의 고뇌의 씨앗들이 싹이 트지 않도록 나 스스로 노력하는 일이다.
   평소에 난 스님에 관해서 소홀히 생각했었다. 이 생각이 내가 지은 죄 가운데 내적인 것 말고 제일로 큰 부끄럼이다.
   책을 보면서 난 느꼈다. 내 마음에 부정적인 면이 많은 모양이라고, 그러나 부처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영롱한 모습과 함께 흐르는 법화(法華)를 혈관 속에 띄우고 부처님 생전에 행(行)하신 것처럼 세속을 떠나 지난날의 나같이 의심이 많은 중생에게 정당한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전함과 자기 연마, 자기반성, 자기 발견에 피눈물 나는 고행(苦行)없이는 회색빛 장삼을 어깨에 멜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승(僧)>은 부처님의 제자임에 우리들의 스승임을 알고 난 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조차 깨닫지 못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한다면<단지불회(但知不會) 시즉견성(是則見性)>, 이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러나 아직도 스님을 믿는다는 것에 약간의 의심이 생기는 까닭은 부처님을 완전히 믿지 않음에서 일 것이다.
   스스로를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생스러울까? 비운 후에 깨달음이 오고 깨닫고 나면 빛으로 가득해진다는 것은 틀린 말일까? 스님들의 모습에서 고독을 느낀다면 내 마음이 고독한 것. 웃음 띤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이 편안한 탓일 것이다. 귀한 물건은 보호하는 심리가 있듯이 스님은 부처님을 위해 존재한다. 부처는 너도 나도 될 수 있다니 견성(見性)하면 부처라 했다. 그러면 우리를 위해 존재함도 될 수 있으리라.
   잘 모르지만 부처님은 열반(涅槃)에 드시면서 간다고 하셨단다. 간다는 것은 온다는 말씀이다. 인연법으로 그 빈자리에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전하여 그늘을 원하면 그늘이 되어 주시고, 습하면 빛을 비취 주도록 길을 열어 주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부처님 말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행(行)함을 받고 노력하고 스스로를 지워보고 건전한 정신력을 갖도록 지혜를 얻어야 함에 게으름이 없도록 해야겠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올바름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기까지는 나 자신은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까지는 신앙심을 갖게 된 동기라기보다는 진리의 말씀에 감화되었던 점이다.
   얻어진 것이라면 건강한 마음으로 깨닫는 인간이 되자는 것과 부처님의 지극한 중생제도를 한걸음 먼저 인식한 스님께 인식부족으로 생긴 왜곡이 있는 자는 경건한 자세와 공경심을 갖자는 것이다. 오늘도 한 바퀴 또 순회하고 있는 말씀의 소리에 고개 숙여 합장하는 맘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