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五大) 악성(惡性) 받기

용타 스님의 생활 속의 수행 이야기

2007-01-05     관리자

생활 수행의 하나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언어적인 나눔은 팔정도의 정어(正語)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모든 나눔이 주고받기이지만 언어적인 나눔도 주고받기입니다. 우리는 무수한 인간관계를 가지며 무수한 언어적인 나눔을 갖습니다. 언어적인 나눔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 하는 것이 사실상 인간관계를 성공시키느냐 못하느냐를 거의 결정합니다. 사람과 함께할 때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잘 받는다는 것, 중요한 것이지 않겠습니까?
나눔이란 서로 사이가 더 좋아지자고 하는 것인데 나눔을 하면서 사이가 더 나빠지는 예를 우리는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것이나 상대방 마음을 잘 받아주는 것을 논의하지 않고 아주 나쁘게 받아주는 경우 몇 가지를 논의하려고 합니다. 필자는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눌 때 다음의 다섯 가지 정도를 악성(惡性) 받기라 여기면서 그 악성 받기를 범하지 않으려고 유념합니다.

잘 들으라
사람을 대하여 언어적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음을 잘 교류하려면 상대방의 말에 깊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잘 듣는 일〔傾聽〕을 소홀히 함으로 해서 오는 악폐(惡弊)는 일파만파(一波萬波) 적지를 않습니다. 다섯 가지 바람직하지 않는 나눔 유형 중 그 첫째가 ‘불경청(不傾聽)’입니다. ‘사오정 받기’라고도 하는데,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잘 경청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하거나 딴전을 피우는 것입니다.
불경청 태도가 익어져 있는 사람은 많은 경우 남이 이야기할 때, 듣는 데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표현할 것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불경청 태도로는 인간관계를 성공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수긍할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에는 표현 속에 들어있는 생각이나 감정이 이해되고 공감되기를 바라는 심리가 전제됩니다. 그런데 이미 듣지 않음이니 관계형성 자체가 되지 않음이지요.
둘째는 ‘한풀이’입니다. 상대방의 표현을 잘 들었다 하더라도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에너지가 강하다 보면 받아주는 듯 마는 듯하고 자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상황을 연출하고 맙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담긴 중요도가 7이면 7의 정성을 기울여 받아주기를 하는 것이 나눔 순리입니다. 상대방이 시누이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5분 이야기 했는데, “그랬는가? 참 안타깝구먼.” 정도 받아주고 난 다음 자기는 50분을 자기 시어머니 악담을 늘어놓는다면 오죽했으면 그러고 있겠는가 하고 이해 못할 것은 없겠으나 지성(知性)어린 대화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제대로 충고하라
셋째는 ‘충고(忠告)’입니다. 필자 스스로도 무수히 범해온 대화패턴이기도 합니다만 참으로 많은 사람에게 충고식 대화가 습관적으로 익어져 있음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상대방이 지식 수준이나 교양 수준이 낮을 수도 있고 나보다는 사리(事理)에 대한 판단력이 밝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 수 일러주고 싶은 국면이 있을 수 있지요. 그 때 자연스럽게 충고식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충고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받아들여지지 않는 충고를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충고를 잘 하게 되는 것은 충고하는 자가 지혜로워서나 혹은 자비스러운 마음이어서가 아니고 대체로는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나 공감이 약한 가난한 마음이거나 내지는 세상에 대한 공격심리가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충고하는 심리적 배경을 고려하고 특히 충고 받고 기분 좋아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충고하는 역할에 보다 깨어있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대로 받아들이라
넷째는 ‘일반화(一般化)’입니다. 세상에는 흉사도 많지만 경사도 많습니다. 경사가 있을 때 자기의 경사스런 일을 자랑하여 나누고 싶은 심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이 “내 아들이 이번에 C대학에 들어가서 온 가족이 기뻐하고 있다.”라고 표현했을 때, “아 그랬습니까? 축하합니다.” 정도로 충분히 받아줄 수 있는데 괜한 한마디를 덧붙임으로써 작품을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길동 씨 아들도 C대학에 들어갔고 홍순 씨 딸도 C대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라고 일반화시켜버리는 표현을 덧붙임으로써 아들 대학 입학으로 기뻐하고 있는 상대방의 가슴에 찬물을 부어줄 필요가 없겠지요. 사람은 대체로 남보다 더 특수하기를 바라는 심리가 있는 법입니다.
다섯째는 ‘비교’입니다. 위 넷째의 경우보다 강도가 높은 악성 받기입니다. “아, 아드님이 C대학을 들어갔군요. 축하합니다.” 정도면 좋은데 그 경사스런 일을 일반화시킴으로써 기쁨을 가시게 하는 표현이나, “아드님이 C대학을 들어갔군요. 그런데 내 친구 아들은 A대학(최고 명문대)에 들어갔다고 합디다.” 식으로 원수가 될 필요가 없겠지요.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자리라면 상대방의 표현을 잘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잘 듣지를 않는다, 상대방이 표현을 하면 그 표현에 담긴 메시지에 마음을 기울여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은 당연한데 자기 것 표현하기에 급급해 한다, 사람을 접하면 99개의 장점이 쉽게 잡혀질 수 있는데 1개의 단점을 걸고 충고를 한다, 상대방에게 경사가 있다면 축하하는 것은 당연한 관계순리인데 배앓이를 한다 등등의 미성숙한 역할들이 사소한 듯하지만 큰 앙금을 불러옵니다.
팔정도(八正道)의 정어(正語) 차원에서 사람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사소한 듯한 악성 표현 몇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만, ‘팔정도-육바라밀’의 덕성 하나하나가 우리 생활 수행인의 엄정한 삶의 지침이 되어 법향 그윽한 인품으로 영글어들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익어가는 가을, 노오란 은행 단풍,
해탈을 노래하기로는 계절의 향기가 너무 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