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이야기] 착한 일도 보지 말라

법구경 이야기

2007-12-04     김영길

 세존께서 구사미구사 동산에 계실 때이다. 그곳의 비구들은 걸핏하면 다투고 헐뜯고 욕지거리를 일삼았다.

 부처님께서는,

 『비구여! 싸우지 말라. 비구는 모름지기 인내로써 분노나 원한을 이겨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옛날 가시국의 범마달왕과 코사라국 장수왕의 인연담을 설해 주셨다. 한번은 범마달왕이 군사를 일으켜 코사라국을 쳐들어 갔다. 전쟁의 결과는 범마달왕이 크게 패하여 장수왕의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장수왕은 마달을 타일러 살려 보내 주었다.

 얼마간은 평화가 계속되는 듯했다. 그러나 마달은 또다시 코사라를 침공했다. 장수왕은 저번의 전쟁에서도 많은 백성이 상했던 일을 생각하며 결코 쉬이 끝날 수 없는 살상의 소용돌이임을 가슴 아파 했다. 왕은, 적은 군사만으로 성 밖으로 나가 싸웠다. 그리고 패했다. 그리하여 왕비와 함께 깊은 산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살아갈 길이 막연한지라 노래와 시와 악기를 익혀 떠돌이 부부 악사가 되었다.

그때 본디 바라문이었던 마달의 제일 신하가 소문을 듣고 공연을 청했다. 대신은 부부의 공연을 절찬하며 그의 집에 머무르기를 간청했다.

그즈음 부부 악사 부인의 해산 날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남편에게 청했다.

『코끼리며 말, 그리고 전차와 보병부대의 4종군대로 에워싸며 훌륭한 휘장을 둘러친 속에서 잠자며 날카롭게 번뜩이는 칼을 씻은 물을 마시고 싶습니다.』

그러자 남편의 한스런 대답이다.

『마달왕에게 망해버린 유랑자 신세에 그 무슨 어울리는 말이라 하오.』

『정히, 아주 틀려버린 신세라면 차라리 지금 죽어 새로 태어납시다.』

『갈수록 태산이구료.』

부부가 이처럼 시름에 있을 때 대신의 전갈이 왔다. 와서 노래와 연주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연은 실패했다. 대신이 의아하여 무슨 근심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남자가 아내의 소망을 전하니 대신이 선뜻 승낙을 했다.

 며칠 뒤, 부인이 4종의 군대가 에워싼 휘장안에서 순산을 하니 생김이 빼어난 쾌남아였다.

대신이 애기를 보고는 떨며 말했다.

『코사라국의 성주(聖主)께서 왕통을 지킬 성(聖)왕자를 낳았으니 이제 크게 강성해지겠도다.』

대신은 같은 말을 무려 세번이나 읊조렸다. 그리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누구도 이 사실을 바깥사람이 알게 해서는 아니 된다. 거역한 자는 죽게 되리라.』

한편 마달왕도 어쩌다 장수왕의 행각을 알게되어 그를 잡아 가두어 버렸다. 그러나 장수왕의 아들 장생은 잘 자라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복수를 위한 힘을 규합해 갔다. 이 사실은 소문이 되어 마달왕에게 전해졌다. 그는 대노하여 장수왕을 참형에 처하려고 거리로 끌고 나갔다. 이떄 남모르게 장수왕에게 접근한 장생태자가 말했다.

『부왕마마 지금이 기회이옵니다. 제가 구출하겠사옵니다.』

그러자 부왕은 노래를 했다.

『동자야, 그만 두어라. 동자야 그만두어! 오로지 신의(信義)만을 따라 행하라. 악한 일도 보지 말고 착한 일도 보지 말라.』

사정을 알 바 없는 군중들은 장수왕이 죽게 되어 미친 것이라고 수근거렸다. 그때 장수왕이 또 노래를 했다.

『지혜스러운 자여, 동자여! 내 말뜻을 잘 알아라. 예전에 일러준 말들도, 내 말대로 행하라. 지혜로운 자여!』

마침내 장수왕은 참형을 당하고 그의 육신은 일곱 동강이 나서 흩어졌다.

 태자는 피가 끓고 분노로 몸을 떨었으나 용케도 참고 견뎠다. 그리고 몰래 장자들에게 간청하여 시신을 수습하고 탑을 세워 장사하고 꽃과 향수로 공양했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모시고 멀리 나라 밖으로 옮아가서 살았다.

 그리고 옛날의 아버지처럼 노래와 시와 악기를 익혀 여러 나라를 떠도는 유랑악사가 되었다. 몇년의 세월이 흐르며 유명해지기도 하고 고향이 그립기도 하여 고국을 찾아왔다.

 범마달왕도 그들의 명성을 들은지라 불러들여 공연을 즐기며 밤낮으로 싫증을 몰랐다. 그사이 허물없이 가까워져 믿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을 가게 되었다. 장생태자는 마달왕의 수레를 함께 타고 깊은 산, 험한 계곡을 헤매다가 지쳐 버렸다. 왕은 수레를 세워 쉬자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장생태자의 무릎을 베고 곤히 잠들었다.

 태자는 생각했다. 복수의 기회가 이리도 쉽게 오다니 하고, 생각하며 칼을 뽑아 마달왕의 목을 겨누었다. 그때 문득 아버지 장수왕의 얼굴이 보였다.

『동자야, 신의가 귀한 줄을 알아야 한다. 유훈을 어김은 가장 큰 불효니라.』

 그리고 또 이런 말도 들려왔다.

『악한 일도 보지 말고 착한 일도 보지 말라. 설사 네가 왕을 죽여 복수를 해도 복수에 복수는 끝이 없으리라.』

 그는 멍한 표정으로 칼을 거두어 넣었다. 금방 이글거리던 분노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때 범마달왕이 꿈에서 홀연히 깨어나니 온몸은 땀으로 흥건하고 몰골이 송연했다. 장생이 말한다.

 『잘 주무시다가 어찌 이리도 놀라시나이까?』

 왕이 말했다.

 『괴이한 꿈이야. 내 잠을 자다가 장수왕의 아들 장생태자를 만났어. 오른 손엔 칼을 움켜 잡고 왼손으로는 내 머리채를 낚아채고 있었지. 칼끝으로 내 목을 겨누며, 「 내 원수를 갚으려는 줄 아는가 」라기에  크게 뉘우치고 떨고 있는데 또 말했지. 「 옛적에 부왕께서 임종시에 원수를 이기려거든 마땅히 인내로써 이겨야 하느니라고 말했다 」는 거야. 그래서 꿈속에서 놀라 깨었지.』

 장생이 다시 말했다.

 『놀라지 마소서. 대왕은 그 꿈을 알고 싶을것 이옵니다. 제가 바로 장수왕의 아들 장생태자지요. 옛적에 부왕은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조차 속이는 일이 없었소만 대왕은 포악하여 살려준 신의를 저버리고 나라를 뺏고 백성을 약탈하고 부왕마저 죽였소. 이 심산계곡에서 해묵은 원한을 갚으려 했으나 부왕의 간곡하신 말씀을 어길 수 없어 내 칼을 거두었오. 자 이젠 돌아갑시다. 돌아가서 나의 죄나 논하도록 하오.』

 그리하여 환궁한 범마달은 장생태자에게 왕관을 씌어주고 코사라국을 돌려 주었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저 왕들도 인욕을 닦아 분노를 이기고 원수를 만들지 않았거늘 신앙심이 있어 출가하고 도를 배운다는 이들이 싸움질을 일삼다니 』하시면서 게송으로 설하셨다.

 서로들 욕을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을 많이 해도 침묵을 지켜도,

 참돤 말만 골라 해도 욕을 먹는다.

 언제 어디서나 욕을 듣게 마련이다.   〈제227송 〉

 인내하는 자만이 싸움을 이기고

 착한 자만이 삿됨을 이겨간다.

 이긴 자만이 자비를 베푸나니

 신의로써 행동하여 「선과 악 」을 이긴다.   〈제223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