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경전의 세계 - 지장십륜경의 의도

특별기획: 지장십륜경의 세계

2007-12-04     관리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월장경(月藏經)을 설해 마치셨을 때 남쪽으로부터 향운(香雲)과 꽃구름이 몰려와 향우(香雨)와 꽃비를 내리는 속에 모든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의 소리가 들리면서 서장(序章)을 여는 이 지장십륜경은 그 모임에 지장보살이 성문의 모습을 하고 그의 권속들과 함께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지장보살의 본원과 공덕을 설하므로써 서장은 절정에 이릅니다. 지장십륜경에서 지장보살이 성문의 모습을 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지장보살은 우리가 알다시피 모든 중생이 남김없이 성불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고 ,모든 중생이 성불할 때까지 중생의 성불을 돕겠다고 서원하고 행동하는 보살입니다. 때문에 지장보살은 대승(大乘)이 업신여기는 소승, 즉 성문이나 연각(緣覺)을 저버릴 수가 없읍니다 .떄문에 성문의 모습을 하므로써 그러한 그의 의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대체로 대승경전에 나타난 소승에 대한 태도를 둘로 볼 수가 있읍니다. 즉 화엄경이나 반야경은 성문과 연각의 소승을 업신여기고 배척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뒤에 결집된 법화경은 二승을 융화하고 있읍니다.

 지장십륜경은 이같은 법화경과 같이 二승의 융화를 설하고 있고 더 나아가 三승이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여래(如來)의 방편임에 틀림이 없으므로 대승을 수행하는 사람일지라도 二승을 업신여기거나 철폐해서는 안된다고 설합니다. 여기에서 지장보살을 성문의 모습으로 등장시켜 그 본원과 공덕을 크게 칭찬하면서 이 경의 서장을 연 의도를 볼 수 있읍니다. 즉 대승이며 보살인 지장보살로 하여금 소승인 성문의 모습을 하게 하므로써 대승과 소승의 대립을 해소하고 융화하며 동시에 보살불교(菩薩佛敎)와 성문(聲聞)불교를 융화한, 三승이 공존하는 새로운 불교를 전개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은 지장보살이 교화를 펴는 시대와 관계가 있읍니다. 지장보살본원경에 의하면,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미륵 부처님께서 나오시기까지의 사이 즉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의 나쁜 세계와 중생을 제도하도록 부촉을 받습니다. 부촉을 받은 지장보살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제도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나쁜 세계와 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헤아릴 수 없는 천백억의 분신(分身)을 나타내어 교화를 폅니다. 또 지장십륜경에서도 지장보살은, 제도해야 할 대상에 따라서 필요하다면 염라왕이 되기도 하고 옥졸이 되기도 하며 지옥의 여러가지 유정(有情)의 몸을 나타내어 교화를 폅니다. 그러므로 지장보살이 성문의 모습을 하였다고 하는 것은 그가 펴는 교화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한 시대에 맞는 불교를 보살불교와 성문불교의 융화에서 찾고 있다는 것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아 불법이 쇠미9衰微)해진 말법시대 의 교화를 위한 새로운 불교의 전개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이러한 지장십륜경의 의도 때문에 신방법사는 이 경을 말법시대의 경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또한 이 경이 중국의 수 나라 때 시작한 삼계교(三階敎)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삼계교는 3단계로 나누어 불법을 시대적으로 구분하고 있읍니다. 즉 부처님이 입멸하신 이후 5백년간을 정법(正法)시대, 그뒤 5백년 또는 1천년간을 상법(像法)시대, 그 이후를 말법(末法)시대라고 구분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말법시대에는 사람들의 지혜가 흐리고 불교에 대한 그릇된 비판이 그치지 않고 지배하는 시대이므로, 이같은 시대를 교화하기 위해서는 정법과 상법의 시대에 중생을 교화하던 一승이나 三승의 가르침은 부적당하다고 삼계교는 봅니다. 여기에 새로운 교화방법 새로운 불교의 전개가 필요하게 되는데, 삼계교는 말법시대에는 모두가 부처님과 경전에 귀의해야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소위 보불(普佛) 보법(普法)의 사상을 주장합니다. 보법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 속에 일체를 갖추고서 널리 원융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보불도 한 부처 안에 모든 부처가 함께 하며 원융9圓融)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귀의해야 할 부처님은 그 내용에 있어서 대단히 다양한 부처들을 포용하게 되고, 삼세의 부처님은 물론 형상불(形像佛), 경에 일컬어진 부처는 물론 사마(邪魔)와 일체 중생까지도 포함합니다. 그것은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고 여래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장차 부처가 될 것이며 중생은 부처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하도록 경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같은 삼계교의 주장은 지장십륜경의 또 다른 특징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장십륜경은 말법시대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열거하고 있는 가운데 파계한 비구의 옹호를 주장하고 있읍니다. 파계한 비구라 할지라도 사람에게 몇가지 훌륭한 생각을 하게 하므로 비록 세속의 바른 법에 의한다 할지라도 가해할 수 없으며 하물며 비법에 의한 가해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 설합니다. 그 열 가지 훌륭한 생각이란 이렇습니다. 파계한 비구를 보는 중생은 그를 보므로 해서 부처를 생각하고 거룩한 계율을 생각하며 보시를 생각하고 인욕을 생각하며 출가를 생각하고 선정을 생각하며 지혜를 생각하고 전생에 심은 선근 등을 생각하기 때문에 무량한 공덕을 얻는다고 설합니다. 파계한 비구가 중생에게 부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삼계교의 보불사상으로, 계율을 비롯하여 六바라밀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보법 사상으로 전개되는 바탕입니다.

 이와 같이 지장십륜경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장차 올 미륵 부처님 사이의 무불시대를 교화하는 지장보살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반드시 지장보살에 관한 이야기로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지장보살은 지장십륜경이 설해진 동기와 의도를 가져오게 하고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의 교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여러 가지로 설하고 있읍니다. 

 서장이 끝나면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부처님의 법륜(法輪)을 어떻게 굴려야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가」묻고 「어리석은 대중 속에서 어떻게 불륜(佛輪)을 열어 보일 수 있는가」묻습니다. 불륜이란 부처님의 십력에 의한 교화를 말합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평안하게 하기 위해서 열가지 왕륜을 굴리듯이 부처에게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열 가지 불륜이 있음을 설하고 그 불륜을 굴려 중생의 열 가지 악업을 선업으로 전화(轉化) 시켜야 한다고 설합니다. 또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오탁악세의 보살이 성취해야 할 수행과 교화의 바퀴에 대해서도 설하고 있읍니다. 보살이 성취해야 할 수행과 교화나 부처님의 십륜의 내용이 다른 경전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과 다른 점은 없읍니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불교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의도에서 설해진 점이 이 경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