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미린다 왕문경의 구성과 특색

미린다왕문경의 세계

2007-12-03     최성열

  [1] 成立

  [미린다왕문경]은 미린다왕과 나가세나 비구의 대화 형식으로 된 경이다. 미린다왕은 서기 전 2세기경 서북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그리스인 왕이다. 그는 현존하는 인도의 문헌에 그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 유일한 그리스인 왕이기도 하다.

  나가세나에 대해서는 문헌이 없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파리어로 된 미린다왕문경과 한역{漢譯}의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에 의해 그 면모를 살필 수밖에 없다. 파리어본에 의하면, 나가세나는 바라문 출신으로 7세에 베다를 배웠으나 너무 공허하고 아무런 의의가 없음을 알고 로하나 존자에게 출가하여 아비달마{論部}를 배우고 앗사굿타 존자에게 사사하고 이어서 담마랏키타 존자에게 삼장을 배워 그 심오한 뜻을 통했다고 한다. 한역본에는, 천축{天竺}에서 태어났는데 집에서 기르는 코끼리{Naga]와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하여 나선{那先, Naga Sena}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가유왈{加維曰}이란 스승에게서 쫓겨나 깊은 산 속에 들어가 나무 밑에서 수행하여 나한이 된 후로 그의 명성이 사방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 두 사람이 만나 미린다왕이 불교에 대해 질문하고 나가세나가 이에 대답한 것을 적은 것이 [미린다왕문경] 이지만 당시의 인도에는 아직 문자가 없었던 시대였으므로 본 경이 성립된 연대는 미린다왕의 사후 그의 세력이 미치고 있던 서북 인도에서 서기 전 1세기에서 서기 후 1세기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미린다왕의 사후에는 그리스계의  여러 왕의 세력은 쇠퇴하기 시작하여 서북 인도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고 있던 샤카인들의 세력 하에 있었으므로 이들에 의해 그리스인 왕을 주체로 한 이런 경전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 경의 원형은 파리어나 산스크리트어가 아닌 혼합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되었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것은 본경에는 파리어의 용법이라고 할수 없는 어법이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서북 인도에는 산스크리트어가 아닌 푸라크리트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당시의 전통적 불교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외에는 대개 푸라크리트어나 혼합 산스크리트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그 이유라 한다.

  현존하고 있는 본 경은 한역본과 파리어본이 있지만 양 본들이 모두 원형에 약간씩의 증보가 가해진 것들이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이다. 그래서 양본에서 대체로 일치하는 부분이 원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2] 構成

  1880년 런던에서 출판된 V,Trenckener의 미린다왕문경에 의하여 본경의 구성을 보면, 서장{序章}, 대론{對論}, 논란{論難}, 추리{推理}, 비유{譬喩}, 결어[結語}로 구성되어 있다.

  서장에는 미린다왕이 도읍했던 사아가라[舍端}에 대한 전설이 소개되고, 이어서 미린다왕과 나가세나의 본생담[本生譚}이 소개되어 있다. 다음으로 미린다왕은 병력의 사열을 마치고 토론을 열망하여 시신{侍臣]들로부터 여섯 논사{論師}를 소개받고 그 중 푸루나카샤파, 막카리코사라 등에게 질문을 해 보았으나자기의 의문을 풀지 못한다.

  그 후에도 수행자, 바라문, 거사들을 찾아 갔으나 끝내 자기의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런 후 신하인 데바만티야로부터 대왕의 의문을 풀어줄 나가세나 장로가 있음을 알고 드디어 사람을 보내어 그로부터 면담을 허럭받는다.

  대론 부분은 7장으로 나누어져 모두 84개의 작은 항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여기에는 미린다왕이  직접 나가세나에게 질문한 것이 주가 되어 있지만 왕의 신하인 아난타카야의 질문도 포함되어 있으며 또 계속적인 대담을 위한 대론의 자세도 들어 있다. 그리고 대론을 마치면서 서로가 만족한 질문과 대답을 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도 한 항목으로 들어 있다.

  논란은 8장으로 나누어 모두 83항목으로 되어있다. 논란은, 경전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또 다른 곳에서는 저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모순이 아닌가 하는 소위 난문{難問}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논란 부분에는 상좌부{上座部} 계통의 불교에서 야기된 문제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미린다왕이 벌써 불교의 교리에 대하여 상당한 정도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이부분은 후세에 와서 더 추가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교단의 사정이나 교리 해석 등은 대부분이 이 경의 성립 당시의 사정과 부합되고 있음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추리에 대한 난문은 별장{別章}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부처님의 실재{實在}에 관하여 물은 것이다.

  비유에 관한 문답은 11장으로 나누어 총105가지의 비유를 들고 있다.

  결어부에는 미린다왕이 자신의 의문을 명쾌하게 해결해 준 나가세나에게 재가 신자로 인정해 줄 것을 부탁하고 삼보에 귀의하겠다고 한다. 그 뒤 미린다왕은 왕자에게 나라를 물려 주고 마침내 출가하여 정관{正觀}하여 아라한의 경지에 까지 도달했다고 했지만 그 사실의 여부에 대해서는 확정할 근거가 없다고 한다.

  [3] 特色

  본 [미린다왕분경]은 다른 경과는 달리 불설{佛說}이 아니고 그리스인 왕과 한 비구의 대화로 구성된 경전이기 때문에 스리랑카나 태국에서는 삼장{三藏}에 포함시키지 않고 장외로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버마 같은 나라에서는 오히려 이를 경으로 취급하여 상당히 중시하고 있다고 한다. 불설, 비불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흐르고 있는 사상성이 더 문제가 된다고 볼 수도 있다면, 이 경은 대단히 중요시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에는 전통적인 불교의 사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으면서도 대승불교적인 자유로운 사고가 은연중에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이 경의 특색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경은 다른 대부분의 경과 마찬가지로 대화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질문하는 사람이 부처님의 제자이거나 거사 등 재가 신자가 아니라 서양의 왕이란 점이다. 미린다왕은 인도를 지배하던 왕이지만 그는 정복자의 입장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문을 그리스의 지성을 대표해서 욷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동서양의 예지를 찾아 볼 수 있는 최초의 대론이란 것이 또한 이 경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경을 읽어 가노라면, 우리는 미린다왕의 질문이 결코 이천 년 전의 낯선 질문이 아니라 바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들 자신이 한번쯤은 물어 보고 싶었던 그런 의문들이라는 데에 놀라게 된다. 또한 나가세나의 대답 역시 당시의 불교계에서 흔히 인용되고 있는 설명으로는 부족하여 많은 고심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루하다] [어렵다] [비현실적이다], 이런 선입견을 가진 비불교인들에게 오늘의 불교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그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지혜를 이 경에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이 경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력이 있고 호소력이 있는 것은 결코 우리들에게서 멀어질 수 없다. 그래서 이 경이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도 오히려 더 우리들에게 알려지고 읽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명성여고 교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