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스님과 정신과 의사들

현대인의 정신위생

2007-11-29     관리자

경봉스님이란 분이 계신다는 소리를 듣기는 한 이십년쯤이 되는 것 같다. 동국대학교 교수로 있던 친구가 여름방학에 해인사에서 하는 수련대회에 강사로 나오셨다는 말을 들었고, 역경위원으로 있는 분이 우울증으로 내게 정신치료를 받고 있을 때 경봉스님을 한번 만나보라는 말을 들은 것이 1965년이었다.

이 역경위원이 대혜선사의 서장을 펼쳐 놓고 여기저기를 가르치면서 내계뜻을 물어 보는데 답변을 하는 동안에 불교는 정신치료고 그 핵심은 집착을 없애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해에 동국대학교 총장 조명기박사에게 부탁을 해서 불교를 배울 강사를 추천받아서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철학자 교육학자 때로는 신부도 참가해서 현재까지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행원스님 월운스님 황성기 교수 이희익씨 탄허스님이 이종익교수 지관스님, 현재는 경봉스님의 제자인 종범스님이 담당하고 있다.

아마 1966년인가 7년 여름 서장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월운스님이 지리산 기슭에 있는 절에 가서 오륙일 지내면서 서장을 끝내자고 해서 나도 가기로 했는데 환자때문에 나는 못가고 다른 분들만 다녀왔다.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기를, 절에 오일간 있었던 것보다 통도사에 가서 경봉스님을 한시간 만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분들의 얘기는 이러했다.

지금은 작고한 철학교수에게는 주색에 곯았다고 툭치고 오십대 심리학교수에게는 취미가 뭐냐고 물어서 등산이라고 하니 어깨를 치면서 정신건강도 도모해야지 하더라면서 고목같은 인상인데 꼭 이선생 같더라고 했다. 이분은 나보다 다섯살이 더 많은 교수다. 또 한 심리학교수에게는 집착이 많다고 하고 사십대 다른 심리학교수에게는 여기 와서 이년간 도를 닦으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어진다고 해서 감격을 해서 한동안 그렇게 해볼까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찾아가니 목격만 하면 됐지 뭘 더 만나서 얘기할 것이 있느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한 사람만 빼놓고는 나쁜점을 얻어 맞았는데도 모두들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었다. 그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번 만나 뵈라고 내게 권했으나 좀처럼 마나뵐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지금 모의과대학 정신과 조교수로 있는 제자가 당시에 전공의로 있을 때 경봉스님의 제자를 자처하고 자주 내왕하는 군이 있었고 부부동반해서 가서 뵙고 스님의 글씨도 받아서 걸어 놓고 있는 제자도 있었다.

이런 군들이 언제 한번 경봉스님을 찾아 가서 뵙자고 해서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삼십여 명이 통도사 극락암에서 두 차례나 잠을 자면서 이틀씩 지낸 일이 있다. 지금은 모두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이 되나 당시는 삼십 사십대가 대부분이라 새벽 두시까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해도 스님은 조금도 나무라는 말씀이 없었다. 하룻밤을 극락암에서 묵고 다음날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우리들의 직업이 정신치료나 상담이기 때문에 그 방면의 얘기를 나누는 것이 상례였다. 개업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장거리 전화로 병원에 연락을 하는 것을 옆에서 보고 계시다가 한 친구가 수화기에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곤소곤 전화를 거니까 그게 뭐냐고 고함을 꽥 지르셨다. 또 다른 친구가 전화를 거는데 냅다 큰 소리로 말하니까 스님은 됐다고 칭찬을 하셔서 칭찬받은 친구는 매우 흐뭇 해했다.

그 외에도 사람마다 한마디씩 지적을 해주셔서 모두들 만족해 했었다. 한번은 댓명이 가서 만나 뵙는데 한사람 한사람씩<니병은 뭣고>라고 묻더니 내 차례가 되니 의사가 아니고 도인이 됐으며...하셨다. 내가 평소에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림으로 그린 십우도와 서양의 정신분석이나 정신치료 과정의 묘사가 비슷한 점이 있어서 스님들에게 물어도 신통한 답을 얻지 못해서 경봉스님에게 물었더니 스님도 만족스런 답을 주시지 못했다. 미련이 남아 나중에 다시 또 물었더니 다 끝난걸 왜 그러느냐고 하시는데 나는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분명히 대답을 못하는데 왜 또 묻느냐 물어도 소용이 없는 짓을 왜 하느냐,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여기에서 스님은 전혀 집착이 없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고 아무런 잡심이 없고 무엇을 도울 수 있는가 그것에도 집착이 없는 마음의 자세를 가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환자치료에 대해 우리들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셨다.

우리가 하는 환자치료나 스님이 하시는 중생제도나 공통점이 많고 실지로 많은 노이로제 환자들이 스님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스님은 첫째로 마음을 잡아서 끌어 들여야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환자를 치료 할 때도 첫째로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관계가 이루어져야된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라고 불 수가 있다. 관계가 형성이 되지 않으면 치료고 교육이고 정치고 지휘고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네가 제일이다, 네 말이 맞다.>라고 해주라는 말씀이었다. 이것은 노이로제 환자를 정신치료 하는데 있어서 근기가 약한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통찰치료를 하지 않고 일종의 망상을 강화시키고 진실을 보지 않게 도와주는 지지치료를 해주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정신의불건강이란 자존심이 낮은 것이기 대문에 우선 자존심을 북돋아 주라는 것은 너무나 타당한 말씀이라 하겠다. 많은 환자를 대하는 사이에 경험적으로 터득하신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리고 사람을 탁 보시고 핵심을 꿰뚫어 보시고 지적을 하시고 순간적인 행동에서 나타나는 그 사람의 핵심적인 문제를 지적하시는 직지인심을 잘 하시고 지적을 당안 사람이 자기가 가장 보기 싫어하고남에게도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점을 지적 당하고도 고마워하는 이유는 오로지 중생제도의 자비심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이 상대편에게 느껴지고 따뜻한 사랑이 깃들어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자기를 존중해 준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목격하면 됐지 얘기 할 것이 뭐있느냐  말의 뜻이 시간이 갈수록 깊은 뜻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서양사람들이 말한 정신치료에서 관계라는 것은 개념화 할 수 없고 오로지 지갈 될 수 있을 뿐이라 할 때 지각이 스님이 말씀하신 목격인 것이다. 말하자면 무념의 경지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의 정신분석에서도 해석의 뜻이 환자가 보고하지 않는 마음을 지적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뜻이 바로 선에서 말하는 지지인심이고 앞에서 본바와 같이 스님이 실천 하셨던 것이다. 불교의 수도에서 탐진치 삼독을 없애는 것이 목표라면 경봉스님에게서는 정말 탐진치의 흔적도 볼 수 없었다. 내가 만난 스님중에서는 탐진치를 벗어났다고 느길 수 있는 분은 운허 경봉 두분 뿐이다. 좀더 일찍 이런 분들과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