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물을 들이는 마음

보리수 그늘

2007-11-10     관리자

   손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철이 지났지만 그러한 마음은 철을 타지 아니 할 것이므로, 우리나라 민간에서 전해 온 속신(俗信) 중에서 봉숭아물에 관한 것을 하나 들어 해석하고자 한다.
  「봉숭아물을 들이면 죽어서 저승길이 밝다.」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속신에서 중요한 단어는「죽어서」이다. 봉숭아물이야 아이들이 흔히 들이는 사소한 것인데 어찌하여 심각하게 저승까지 그 영향이 연장된다는 말인가? 우리의 슬기로운 조상이 이 말을 할 때는 건성으로 한 것이 아니다. 하찮게 생각하고 허튼소리를 사랑하는 자손들에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이 속신을 해석하려는 의욕이 생긴다. 같이 생각해 보자.
   이것은 저승을 갔다 와서 누가 증언하기 전에는 사실이더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논리적으로 순리를 따라가면 저승을 굳이 가보지 않더라도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니 알아야 된다고 이 속신은 주장하는 것이다.
   봉숭아물의 붉은 색은 일반적으로 귀신을 쫓는 색이다. 이것은 우리 민속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하고 많은 몸 중에서 하필 손가락이란 말인가? 손가락은 무엇을 드는 것이므로 저승같이 어둡고 습기 차고 무서운 곳에서 횃불을 들면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봉숭아물을 들인 손은 횃불 구실을 한다. 바로 광명과 열기(熱氣)를 뜻한다.
   손가락은 인간생활에서 가장 빈번하게 남에게 노출시키는 부분이며 더러움을 타기 쉬운 곳이다. 봉숭아물을 들이는 여름철에는 더구나 노출이 많이 되는 곳이며 일을 하기 때문에 더렵혀지기도 쉬운 곳이다. 봉숭아물을 들이려면 먼저 손을 청결하게 해야 하지 더러운 손에 멋을 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손의 청결이 무슨 힘이 있어서 무섭다는 저승길을 좋게 만든단 말인가? 저승을 이기려면 일반적으로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공을 닦아야 하는데 손의 청결만으로 마음의 청결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 우리 조상이 이 속신어를 사용할 때에는 바로 외면(外面)의 청결이 내면(內面)의 청결로 발전하고 확산되며 심화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손가락의 봉숭아물은 단순한 멋 내기가 아니라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종교적이며 인격적인 수양이요, 청결이라고 보았다는 말이다. 때를 맞추어서 손가락에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사람이라면 더러운 마음을 씻어내서 아름다움을 앉히고, 남에게 불쾌감을 줄 것을 호감으로 바꾸어 주고, 낙망과 실의에 빠진 상태에서 벗어나 희망과 광명을 차지하고, 이승의 인간다움이 저승에서 효력이 나타난다는 장시간에 걸친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확대하여 해석할만하다.
   이러한 의양의 아름다움이 내면의 아름다움과 공존하는 자세를 해마다 거듭한다면 저승인들 뭐가 무서운 것인가? 해마다 봉숭아물을 들여서 아름다운 손가락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의 이목구비도 아름다울 것이며, 이런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의 마음씨마저 아름답다는 유추(類推)를 통해서 저승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승 곧 현실을 두려워하라는 행동지침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현실 어디가 두려운가? 바로 내 인격의 부족함이며, 깨끗할 수 있는 데도 나태하여 더러워져 있는 겉과 속이며, 해마다 오는 좋은 시절을 알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는 것이며, 남에게 선을 베풀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자기 독선이며, 일을 하고 창조하는 소중한 손발을 아름답게 사용하지 못함이며, 이러한 부정적인 상태에도 아무런 자각이 없는 안타까운 나의 현실이 두려운 것이다.
   제철에 따라 봉숭아물을 들이는 분들에서 이러한 살아가는 멋을 찾아보며, 이승의 힘이 저승에 까지 미친다는 진리를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