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병과의 해후

인도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2007-11-04     관리자

현관문은 굳건히 걸려 있었고, 서쪽으로 난 발코니 창도 닫혀진 그대로였다. 대체 어디로 들어온 것일까, 이 원숭이들은.
인도의 창은 집 안쪽으로든 바깥으로든 창살이 박혀 있다. 건물이 시공되는 동안 유리창이 꼭 맞게 끼워지기 전, 창살부터 박힌 집을 종종 보곤 한다. 처음에 나는 진종일의 외로움과 무력함을 가족에게 호소하면서, “창살까지 있으니 이건 정말 감옥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살다보니 단란한 듯 보이는 원숭이 떼와 만나기도 하고, 더러 도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창살의 존재감에 안도하게 되었다.
내 하루 일과는 동트기 전 간단하게 행하는 명상과 요가로 시작되는데, 그 전에 반드시 집안의 모든 문을 열어 환기부터 시킨다. 발코니 옆 작은 창은 언제나 젖혀둔 채, 때로는 긴 시간 집을 비우기도 한다.
며칠 전 나는 평소 좋아하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발코니 옆 작은 창을 최대한 열어젖혀 두었다. 서북향인 까닭에 마루의 살림살이들도 짧은 시간의 햇살과 그 열기에 데워져, 사뿐히 날리는 바람과 소통하기를 바라며.
하지만 의도와 결과는 참 대치되는 것이었다. 외출한 사이 그 튼튼한 창살 사이로 팔을 뻗어, 간이방충망을 뜯어내고 집안을 헤집고 다닌 것은, 햇살과 바람이 아니라 원숭이 한 무리였다.
파파야는 이빨로 파서 안을 다 헤집어 먹었고, 잘 익은 망고는 넙적한 씨앗만 남겨져 있었으며, 바나나 껍질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캡슐로 된 배탈약도 뜯어 뿌려놓았고, 아이들 군것질거리로 사둔 과자들도 동을 내 버렸다. 대체 몇 놈이 작업을 한 건지 20리터 생수통을 얌전히 마룻바닥에 옮겨 놓았으며, 배불리 먹은 후의 배설 작업도 어김없었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나는 무섭기도 하고 또 청소할 것에 짜증도 났으나, 아이들은 오히려 ‘숨바꼭질’이라는 이름의 초콜릿과자를 원숭이들이 찾지 못한 것에 재밌어 했다. 대자연에서 살지 않는 이 원숭이들은 인간에게서 양식을 얻어내는 것에 이미 이골이 나 있는 듯, 다음 날 아침에는 어딘가 다른 집에서 구해온 바나나를 옆집 발코니에 걸터앉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을 늘 목격하고 지내고 있으니, 주인 없는 내 집에서 얼마만큼 사람 흉내를 내며 있었을까. 인간은 그들의 출몰이 무서워 늘 움츠리고 살고 있으나, 그들은 당연한 듯 버젓이 아파트를 활보하고 다닌다.
결국 인간의 영역이라고 믿었던 도시의 아스팔트마저도 공존의 땅이 된 셈이다. 우리는 공존의 법칙을 알지 못한 채, 또 익히고자 하는 수고도 없이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는데.
공존의 법칙을 모르고 함께 산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생각해 보면 인간이 그들의 땅, 자연을 훼손하며 침범했으니, 딱하긴 하나 그 분비물과 흔적을 치울 도리밖에 없을지 모른다.
내 것 하나 내어주지 못하고 창살 안으로 가두고 사는 삶, 나는 창살 안과 밖의 공기가 서로 어우러지듯, 콘크리트 벽으로 가로 막힌 이웃들과도 소통하고 싶고, 내 집으로 온 원숭이와도 소통하고 싶다. 말을 나눌 수 있는 자와의 소통이나 말 못하는 것과의 소통은 매 한가지가 아니던가. 내가 먼저 그것에 눈길을 주고 다정해지는 것, 이것 하나면 족할 일인데….
그러나 정직한 소통이 때로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사람들 속에서 배워온 나는, 언제나 방어기재부터 갖추고 한걸음 물러서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럴 때면 우울함이 가슴을 파고들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익숙한 한국이나 또 낯선 이국에서나 공간을 초월한 내 습을 보는 것이 서글프다.
떠나면 달라지리라 생각하며 나선 이 길에서 새삼 복병과 부딪치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당면한 숙제임을 인식하게 되고, 궁색한 변명 없이 직면하고 살아야 함을 절절히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외면하지 않고 나를 깊이 들여다 볼 일만 남은 셈이다.
장태선 _ 경상대 의류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결혼 후 자동차 영업소와 정비공장을 겸업하며 사업 일선에 뛰어들었다. 각양각층의 사람들을 접하며 그 관계 속에서 점점 황폐해지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 마음 공부를 위해 현재 두 자녀와 함께 인도에서 생활하며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행복을 지나칠 만큼(?) 만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