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고도 같은 일본 불교

일본 후쿠오카(福岡) 사찰기행

2007-11-04     관리자


7월말 아침 일본 후쿠오카를 향하는 비행기 속에서 나는 잠시 일본 불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일본이 초행길인 나로서는 일본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일천했다. 대처승(帶妻僧)이 중심이고, 산사(山寺)가 아닌 항사(巷寺, 거리에 자리한 사찰)가 많으며, 날 때는 신사(神社)에서 탄생을 축복하고 죽어서는 불사(佛寺)에 묻혀 극락왕생을 희구한다는 정도가 내가 아는 지식의 다였다. 하지만 이 몇 가지만 보더라도 일본 불교는 기능이나 현실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은 짐작이 갔다.
후쿠오카는 인구가 약 120만 정도 되는 큐슈[九州] 최대의 도시로서, 그 역량이 만만치 않다. 비행기는 1시간을 날아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탑승시간이 너무 짧아 어디 가까운 유원지로 놀러온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 일본은 외국이었다.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야 당연하지만, 우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도로의 자동차 행렬은 아주 특이했다. 도로폭도 좁은 데다 자동차도 상당수가 경차여서, 뭐랄까 대도시를 축소한 미니어처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소문대로 도로며 골목은 깨끗했고 짜임새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것도 유별났지만, 음식점이나 차안에서도 흡연이 자유로운 점은 별나다 못해 기이했다.
후쿠오카에 머물면서 나는 일곱 군데의 사찰을 방문했다.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시내에 있다는 점은 같았다. 시내에 있다고 해서 협소하지도 않았다. 탁 트인 공원에 선 느낌을 주는 사찰도 있었고, 커피하우스같이 잠시 발길을 쉬기 좋은 규모의 사찰도 있었다.
어느 사찰이나 빠짐없이 납골당이 갖추어져 있었다. 죽으면 사찰에 묻힌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일본인에게는 삶과 죽음이 같은 공간 안에서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호젓한 가족묘에서 단출한 개인묘, 거대한 석재로 다듬어진 옛 지방 호족들의 묘단(墓壇)까지, 납골원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납골묘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사찰 경내로 들어와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도 보였고, 아예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점심을 먹는 회사원들도 눈에 띄었다. 또 화구를 챙겨와 사찰의 고풍스런 정원과 불전(佛殿)을 스케치하는 아마추어 화가들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한 마을의 주민회관이나 공원 같은 기능을 일본의 사찰은 겸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찾은 곳은 후쿠오카 시내를 굽어볼 수 있는 대야성(大野城)이라는 산성이었다. 성은 윤곽만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성을 둘러 33개의 보살석상을 배치한 것이 흥미로웠다. 석벽이나 바위 틈, 나무 넝쿨 사이에 숨은 듯 모셔진 보살상은 차안(此岸)의 고단한 삶 속에서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행복을 얻고자 기원했던 그네들의 신심을 읽을 수 있어 의미가 깊었다. 이어 찾은 사찰은 국분밀사(國分密寺)와 관세음사(觀世音寺)였다.
도심에서 벗어나 외곽에 자리한 국분밀사는 기와를 인 담으로 둘러싸여 조금 터가 넓은 고가(古家)를 연상시켰다. 푸른 이끼와 자연석, 그리고 아담하게 깎은 계단석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어 마치 일본의 전통 정원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작긴 했지만, 담장을 끼고 즐비하게 늘어선 작은 석불(石佛)들이 시선을 끌었다. 높이가 60~70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불상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이어져 있는데, 사이좋은 친구들처럼 보였다.
다음 발길이 닿은 곳이 관세음사인데, 이 절은 규모가 상당했다. 경내에는 국보(國寶)로 지정된 범종(梵鐘)도 있고, 이층으로 된 본전부터 계단원(戒壇院) 등 다수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유서 깊은 사찰답게 보장(寶藏)이란 현판이 걸린 박물관도 현대식 건물로 들어서 있었다.
관세음사는 우리의 산사처럼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탈속(脫俗)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은 포은 정몽주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라 관심이 더욱 갔다. 포은은 일본에 체류하는 틈틈이 짬을 내어 사찰을 찾았던 듯하다. 그는 이곳에 와서 두 편의 한시를 남겼다. 글로만 보던 그 사찰을 직접 밟아본다는 사실에 나는 절 앞 주차장에서부터 마음이 들떠, 나도 모르게 그가 지은 한시가 흘러나왔다.

관음사를 다녀와서[遊觀音寺]
野寺春風長綠苔 들판 절 봄바람에 푸른 이끼는 긴데
來遊終日不知回 하루 종일 노닐어도 돌아갈 줄 모르네.
園中無數梅花樹 뜰 안에 무수히 핀 매화나무 꽃들은
盡是居僧手自栽 모두 스님들이 손수 심은 것이라네.

다시 이 절에 다녀와서[再遊是(觀音)寺]
溪流키石綠徘徊 시냇물은 돌을 끼고 푸르게 빙빙 돌고
策杖沿溪入洞來 지팡이 짚고서 시내를 따라 동구로 접어든다.
古來閉門僧不見 예부터 문이 닫혀 스님은 뵈지 않는다더니
落花如雪覆池臺 눈덩이처럼 흰 낙화가 연못가 누대를 덮었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고 옛 시인은 노래했지만, 사찰은 마치 시를 재연해 놓은 듯 닮아 있었다. 아쉽게도 포은 때의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고 했지만, 흙이며 돌, 산이야 변함이 없을 것이다. 포은이 손을 씻었을 법한 작은 시냇물도 눈에 띄었고, 매화나무를 비롯한 키 높은 관엽수들이 녹음을 자랑하며 절을 둘러싸고 있었다.
포은은 시에서 봄날의 정취를 노래했는데, 한여름의 경관도 즐길 만했다. 분분히 떨어지는 매화나무 꽃잎들을 밟으며, 포은이 걷던 그 길과 뜰을 나는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밟으며 걸어보았다. 오랜 객지 생활에 지친 심신을 이끌고 마음의 평정을 찾아 참배했을 포은의 심정을 이제 막 고국을 떠난 내가 감히 느낄 수는 없겠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산새소리가 마치 포은의 육성처럼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