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외로움이 아니다

특집 - 외로움 바라보기

2007-11-04     관리자

새벽 도량석 목탁을 울리는데, 멀리 바라다 보이는 작은 섬 꼭대기에 홀로 빛나는 등대가 외롭다. 처음 섬에 들어올 때는 발심하여 다시 출가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배에 오르면서 본분사를 끝까지 밝히지 못하면 나가지 않겠다는 원력을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생전 처음 대면하는 낯선 풍경에 두려운 생각과 함께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어미 사슴에게서 떨어져 나왔다고 해서 새끼 사슴이라는 이름이 붙은 섬 ‘소록도’, 육지를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깊은 애환이 서려 있었으니 나의 외로움도 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외로움은 왜 생기는가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어머니의 포근했던 모태로 다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일 것이다. 최초의 고향인 어머니와 떨어지고 점점 자라면서 사람 사이에 지나친 경쟁으로 거리가 생기고 개인주의로 정이 멀어졌기에 생긴 틈이 외로움인 것이다.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추석명절, 사람들이 저마다 고생을 감수하면서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몸짓일 것이다. 하지만 끝내 불러도 대답이 없는 부모님과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돌아갈 곳이 없어서 외로운 마음을 어디에 둘지 모른다. 현대인들이 유난히 외로운 것은 개인주의로 남을 배려할줄 모르며,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고향의 은혜를 등진 것이 원인이다.
올해 여름은 유별나게 더웠지만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은 추석에 내려오는 자식들에게 더 많이 챙겨 보낼 생각에 더운 줄도 모르고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은 이러한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모른다. 이번 명절에는 객지에 나간 자식이 꼭 내려올 거라고 주문처럼 외우며, 행여나 하고 사립문을 자꾸 기웃거리는 외로운 마음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세상사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조건이 충족되면 해소가 되지만, 끝까지 발목을 잡고 밝히기를 요구하며 물고 늘어지는 것은 존재에 대한 외로움이다. 존재의 근원을 밝히지 못하면 세상에 어떤 좋은 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크게 발심을 하지 못하면 자칫 비겁한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를 도피시키려는 생각으로 우울증이 생기고 심지어는 극단의 선택으로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그것은 외로움의 공간을 확보하여 자기 변화의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린, 나약한 존재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세상에서 성공의 조건은 외로움을 어떻게 잘 관리하고 다스리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그래서 선근이 있는 사람은 헤프게 외로움과 타협하지 않고 선지식을 찾아서 염불과 기도와 참선으로 다스리게 되는데, 반드시 육조단경에서 말하는 정혜등지(定慧等持)를 이루어야 뿌리가 드러나게 된다.
참선하는 사람에게 한 생각 외로움이 일어나면, 없애려고 하지 말고 바로 알아차리면 아는 마음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한걸음 나아가서 화두의 의정으로 돌이키면 바로 성품에 계합하게 된다. 아무리 공부가 수승하다고 해도 끝까지 밝히지 못했다면 외로움이 끝나지 않으니, 공부에는 좋은 도반인 셈이다. 지금 자기 경계를 바로 확인을 시켜주며 차별심인 외로움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말라
외로움이 새로운 자기 창조의 공간이며 만남과 깨달음의 지평이 되는 것은, 모든 선지식이 외로움의 양식을 먹고 출현을 하기 때문이다. 한 생각 외로움이 일어나면 보통 사람들은 해결하려고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고 타협하며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는데, 이것이 찬란한 문명을 이루어 놓았다. 문화란 결국에는 외로움의 산물인 셈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한 생각 외로움이 일어나면 타협하거나 없애려고 하지 말고 끝까지 추적을 해야 한다. 그러면 외로움이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거기에는 바로 부처 성품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로움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부처 성품의 작용인 것이다.
수행하는 데 있어서 마장이란 것은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 끝까지 실체를 규명하지 못하고 타협하는 것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재미를 삼는 것이다. 그러면 잠시 외로움이 없어지는 것 같지만 우리의 참성품은 거울과 같아서 한 티끌이라도 덮임이 남아 있으면, 끝내 성품이 드러나지 않아 외로움은 해결이 되지 않는다.
외로움은 결국 성품을 드러내놓고서 끝이 나게 된다. 마치 마라톤에서 페이스 메이커와 같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이 외롭지 않으면 공부를 성취할 수가 없다. 섬 속에 또 하나의 섬으로 살면서 흐름을 돌이키며 성태(聖胎, 성스러운 씨앗)를 기르는 것은, 궁극에는 모든 이웃들에게 안전한 섬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즐거운 일이다. 외로움은 성품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길이기에 수행자는 외로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창 밖에는 벌써 어둠이 내리고 바람과 함께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선실에 앉아 있으니 빗소리는 어김없이 그 자리에 떨어지고 우뚝 드러나는 마음자리는 천지간에 홀로이다. 이제 날씨가 제법 싸늘해졌으니 외로움이 가을바람을 타고 살짝 방문할 것이다. 여유를 가지고 맞이하여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궁구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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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 _ 송광사로 출가,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한 후 송광사 수련원에서 10여 년간 수련생들을 지도했다. 지금은 전남 고흥 거금도 금천선원에서 간화선 실참을 바탕으로 참선지도하고 있다. www.ggse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