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대광명장에 드시사
경전강의/소천(韶天) 원각경 강의
2007-11-04 관리자
入於神通大光明藏하사
해설
이 대목에서는 (1)신통대광명장이란 무엇인지 (2)‘드시사[入]’란 무슨 뜻인지 (3)바가바께서 신통대광명장에 드신 의의는 무엇인지 등에 의문을 갖고 소천선사의 강의를 살펴보자.
강의
깨끗한 마음터인 법신(法身)은 둘이 아닌 하나이므로 언제나 또 어디에서나 통해지는 것이다. 하나인 것같이 신기(神奇)한 일은 없다. 이 몸이 하나이므로 못할 것이 없이 갖은 신통을 다 내는 것이다. 한 몸에서는 눈, 귀, 코, 팔, 다리 등 모든 부분들이 별의별 신통을 다 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는 바이다. 기기도, 뛰기도, 엎치기도, 뒤치기도, 웃기도, 울기도, 사업도, 발명도, 공부도, 모략도 하는 것이다.
이 신통만은 부분부분이 서로서로가 각각 한 몸으로 여겨 움직임에서 그리 되는 것이다. 만일 눈과 귀가 또는 팔과 다리가 혹 정신과 마음이 서로서로 남이 되어서 움직이면 신통은 고사하고 모든 못난 짓만 나와질 것은 뻔한 일이다.
각 부분이 한 몸이 되어 동작함에서만 못 부릴 신통이 없이 다 부려질 것이니 부처가 되는 신통까지도 부릴 것이다. 한 가정도 한 국가도 한 세계도 한 진리도 다 그런 것이다. 오직 한 몸처럼 움직임에서는 바라고 원하는 바는 기적적으로 성취될 수 있다. 견성성불(見性成佛)도 세계평화도 구국안민(救國安民)도 한 몸같이 움직이는 신통에서는 다 되는 것이다. 만일 나라가 잘못됨이 있으면 그 국민이 하나가 아니된 탓이요, 또 한 가정이 잘못됨이 있으면 그 가족이 하나가 안 된 증좌(證左)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법신을 한 몸으로 하시어서 일체의 유무정(有無情)1) 과 일체의 형이상하(形而上下)를 하나로 수용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법신을 수용하시는 그 몸에서는 대계(大界)의 변화와 중생(衆生)의 생멸(生滅)이 모두 다 하나인 몸의 신통작용으로서의 존재요, 세출세(世出世)의 무량묘의(無量妙義)는 그 하나인 몸의 신통 진리로서의 존재인 것이다. 진리계(眞理界)를 한 몸으로 삼는 법신불의 신통지사(神通之事)는 대개 이러 했던 것이다.
다음 대광명장은 어떠한 것인가? 모든 광명을 갈무리하고 있는 보고(寶庫)임을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한 몸으로 한 법신불(法身佛) 속에 소장(所藏)된 전광명체(全光明體)인 것이다. 어떠한 사업에서나 물질에 있어 능히 진리로써 한 몸을 실현할 수만 있으면 진리만은 발작(發作)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업과 그 물질에는 영광의 꽃이 피기도 하고 명랑(明朗)의 바람이 불기도 하는 법이다.
명랑은 광명에서 오고 광명은 신통에서 오는 것이다. 또 신통은 깨끗 하나로서 온다. 깨끗은 깨끗임으로 올 곳이 없다. 깨끗 하나로 된 몸은 여래의 법신인 까닭이다. 이 같은 법신을 사바계(裟婆界) 중생에게 일러주실 때는 온 것이다. 그래서 ‘한 때’ 하는 말도 쓰여진 것이었다. 석가모니께서는 이 같은 법신의 바가바로서 하나로 한 신통작용을 일으키시었으니 이 신통에서 나온 대광명장은 실로 법계에 두루한 것이다.
그러하시고 다시 친히 이 광명장 안에 드시었으니 이는 이 광명으로써 미(迷)한 중생을 적시사 하여금 하나인 몸 즉 법신의 내막을 밝게 일깨우실 심산이심이다. 그렇게 해서 차차 이 내용을 설명도 하시어 마침내는 이 법신을 내어 맡겨 주실 차비인 것을 알아야 한다.
해설
소천선사께서는 “법신불(法身佛)은 진리계(眞理界)를 한 몸으로 삼는지라 신통(神通)이 자재(自在)하고 또 그 속에 전광명체(全光明體)를 소장하고 있다.” 고 설명한 바로 미루어 ‘신통대광명장’은 곧 법신불의 경지 내지 법신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료된다.2) 통윤(通潤)선사는 ‘원각경 근석(近釋)’에서 “신통대광명장이란 곧 여래장(如來藏)의 다른 이름”3) 이라고 한다. 그런데 불성론(佛性論)에 의하면 ‘여래(如來)의 법신은 인위(因位)4) · 과위(果位)5)를 통하여 변하지 않는데 중생(衆生)에 있어서는 번뇌에 덮여 감추어져 있어 이 감추어져 있는 여래의 법신을 여래장’이라고 하므로 통윤선사께서 신통대광명장을 여래장이라 한 즉 곧 감추어져 있는 여래 ‘법신’을 가리키므로 소천선사의 강의와 통윤선사의 해석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6)
그리고 통윤선사는 ‘신통대광명장 즉 여래장은 성인(聖人)과 범부(凡夫)가 동일하게 두루지닌 체(體)’7)라고 한 바, 이는 여래장 즉 “법신은 깨끗한 마음터로 자아(自我)를 삼으신 몸이고, 깨끗한 마음터는 둘이 아니니 제불(諸佛)과 중생(衆生)이 법신에서는 동일한 몸”이라고 한 소천선사의 지난번 강의를 참조하면 쉬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신통대광명장을 함허선사는 ‘각체(覺體)’8)라 하고, 용성선사는 ‘본연 각성(覺性)의 당체(當體)’9)라고 하는 바, 각성은 곧 불성(佛性)을 뜻하고 불성은 여래장의 다른 명칭이므로 이 또한 표현만 달리할 뿐 동일한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또 신통대광명장을 “분별업식(業識)의 장벽이 없으므로 신통(神通)이라 하고, 항상 밝아서 어둡지 않으므로 광명(光明)이라 하고, 그 광명은 한계가 없으므로 대(大)라 하고, 염정제법(染淨諸法)을 포용하므로 장(藏)”이라고 한 월운 스님의 해설10)과 “업식의 담[牆坦]을 깨뜨림을 이름하여 신통이라 하고 無明의 숲을 제거함을 이름하여 대광명장”이라고 한 통윤선사의 해설11)을 체용(體容) 측면에서 대비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업식의 장벽을 깨뜨려 장벽이 없음을 일러 신통”이라 한 위 두 해설은 “부처님께서는 법신을 한 몸으로 하시어 일체의 유무정과 일체의 형이상하를 하나로 수용하시니 그 몸에서는 대계의 변화와 중생의 생멸(生滅)이 모두 다 하나인 몸의 신통 작용으로서의 존재요 세출세의 무량묘의는 그 하나인 몸의 신통진리로서의 존재”라고 한 소천선사의 위 강의와 대비하여 다시 살펴보면 뜻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다음으로 ‘드시사[入]’란 신통대광명장이 공간적 장소가 아니므로 든다[入]는 의미도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다. 통윤선사는 “성(性)과 상(相)을 여의매 체(體)가 법계(法界)와 같아서 들되[入] 든 상(相)이 없음을 일러 든다[入]”라고 해설12)하고, 용성선사는 “본연 청정한 대지혜광명장에 명합(冥合)13)한 연고로 들어갔다14)” 고 해설한다. 그리고 월운스님은 “성(性)과 상(相)의 분별을 여의고 본체(本體)와 법계(法界)가 일여(一如)해지는 것이 그대로가 신통대광명장에 드는 것이다.”15)라고 해설하고 함허선사께서 “소위 듦[入]이란 비고 밝아 스스로 비치는 각체(覺體)로 더불어 수순(隨順安住)함을 말한다.”16)고 해설한다.
본체(本體)와 법계(法界)가 같아진 즉 법신 곧 신통대광명장일 것이고 함허선사의 ‘비고 밝아 스스로 비치는 각체’나 용성선사의 ‘본연 청정한 대지혜광명장’ 또한 신통대광명장을 뜻하고 또 ‘명합’이나 ‘더불어 수순안주함’이라거나 ‘든[入] 상(相)이 없다.’거나 ‘일여(一如)해진다.’함이 모두 같은 뜻으로 사료되므로 함허 · 통윤 · 용성 · 월운 등의 해설이 서로 다르지 않다할 것이다.
살피건대 바가바께서는 진리계를 한 몸으로 삼으므로 체(體)가 법계(法界)와 같아서 법신불의 경지인 신통대광명장을 나투시나 성(性)과 상(相)을 여읜지라 법신불인 바가바와 그 경지인 신통대광명장은 둘이 아니어서 바가바께서는 신통대광명장을 나툼없이 나투심이며 듦이 없이 드심인 것이다. 즉 신통대광명장은 본래 들[入] 것이 못 되는 것이며 또 들 곳도 없는 곳이니 본래 그대로를 수순(隨順)하는 것을 일러 든[入]다고 할 것이다.
이를 미(迷)한 중생의 안목으로 보면 중생은 자신에게도 구족(具足)되어 있는 법신을 알지 못하므로 즉 진리계를 한 몸으로 삼지 못하므로 또 성과 상을 여의지 못하여 바가바와 같이 신통대광명장에 듦이 없이 함께 들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하에서 이 법회에 함께한 대중의 근기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소천선사의 강의에 의하면 바가바께서 신통대광명장에 드신 뜻은 “미(迷)한 중생에게 법신의 내막을 밝게 일깨워 이 법신을 맡겨주실 준비를 하시는 것”이라 하니 다음 강의를 잘 살펴 법신의 내막을 알아보자.
주)
1) 유무정은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을 뜻하는 바, 유정이라 함은 마음[情識]을 가진 살아있는 동물계(動物界)를 말하고, 무정이란 초목(草木), 산천(山川), 대지(大地) 등 비동물계를 말함.
2) 혜월거사 역시 “법신은 신통한 대광명의 지혜를 간직한 장(藏)이라 법신이 곧 신통대광명장”이라고 해석한다. [강만성, 원각경강론(부산, 형설, 1982) p.8]
3) 탄허스님께서 함허선사의 원각경해설과 통윤선사의 원각경근석을 번역 · 해석한 원각경(서울, 敎林, 1994) p. 51, 그리고 김월운 스님도 신통대광명장은 여래장이라고 함 [김월운, 원각경주해(서울, 동국역경원, 1993) p.3]
4) 인위(因位)란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因]을 하는 동안의 지위를 말함.
5) 과위(果位)란 인위(因位)의 수행을 달성하여 얻은 불(佛)의 지위를 말함.
6) 법신은 범어 dharma-kaya의 음역으로 법불(法佛) · 법신불(法身佛) · 자성불(自性佛) · 법성신(法性身) 등이라고 하며 진리 그 자체, 불(佛) 그 자체, 또 여래장 등을 뜻하므로 위 해석과 같다.
7) 김탄허, 전게서 p.51
8) 함허당득통,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권상 p.23
9) 백용성, 대방광원각경 (서울, 대각회, 1974) p.17
10) 김월운, 전게서 p.2
11) 김탄허, 전게서 p.51
12) 김탄허, 전게서 p.51
13) 명합 : 온갖 모양을 여의어 은연중 일여(一如)가 됨.
14) 백용성, 전게서 p.18
15) 김월운, 전게서 pp. 2-3
16) 함허당득통, 전게서 p. 23 [所謂入者與比虛明自照之體隨順安住之謂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