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캄보디아 6 정글 속 관세음

불국토 순례기 - 정글 속 관세음의 나라 - 앙코르

2007-11-04     관리자

옛 크메르 제국의 수도 앙코르는 아름답다. 지금은 시엠렙으로 불리우는 이곳은 아직도 현대 물결이 범람치 않아 관광객은 원주민의 웃음 속에서 순수의 맛을 흠뻑 느낄 수 있다. 베트남의 사이공으로부터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을 거쳐 다시 북으로 50분간 조그만 국내선을 타고 시엠렙에 도착하면 택시와 호텔을 안내하는 남녀노소가 반기고 그리고 평화로운 열대지방의 숲과 바람이 햇볕 아래 고요하다.

시엠렙의 북쪽으로는 앙콜 왓트, 앙콜 톰, 타프롬, 프레아칸 등 유수의 사원이 1~2km 간격으로 계속되고, 동쪽으로는 로레이, 프레아코, 바콩, 도루오스 사원 등을 구경할 수 있다.

힌두사원으로 시작되어 대승불교의 영향아래 관세음신앙이 크게 일었다가 다시 힌두이즘으로 바뀌었지만 지금은 불교적 의식형태가 더욱 많이 눈에 띈다. 특히 스님들은 학교가 없는 마을의 선생님 역할을 하고, 고아들을 모아 기르는 복지사업이 사찰의 주요 임무가 되어 있었다.

아침, 아직 해가 오르지 않은 길가에는 황색 승복을 입은 맨발의 스님들이 큼직한 발우를 들고 줄을 지어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주하는 시민들은 스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한 다음 시줏돈 혹은 쌀과 음식을 바친다.
1세기가 넘은 전란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지는 보살의 정신, 신앙의 흐름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었다.

프레아코 사원은 앙코르 지역의 유적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879년 인도라바르만 1세가 양친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6개의 사당이 2열로 늘어선 기단의 앞에는 난텐이라고 불리우는 소 3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프레아코란 ‘신성한 소’를 의미하며 바로 힌두이즘에 연유된다.

바콩 사원은 사방 700m의 해자가 둘러싼 피라미드형의 사원으로서 중앙에는 5층기단 위에 높이 65m의 사당이 있는 비교적 큰 구조물을 갖추고 있다. 링가를 예배하는 전형적인 힌두사원으로서 각 기단의 돌계단 양쪽에는 사자의 석상이 있고 기단 사방에는 코끼리 석상이 있다.

그러나 바로 옆 스님들이 머무는 정사에는 만다라를 갖추고 불상을 모신 법당이 있어 그 성격을 혼란케 한다. 20여 명의 어린이들이 이곳에서 숙식과 교육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으며 나이든 소년은 예비 스님인 듯 머리를 깎고 있었다.

그러한 현상은 국도 건너편 2km쯤 떨어진 로레이 사원에서도 볼 수 있었다. 로레이 사원은 4개의 벽돌로 만든 사당 각 면에 테바타 여신을 새기는 등 힌두교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임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그 옆과 아래쪽에 세로 세워진 건물에는 스님과 어린이들이 40 ~ 50 명쯤 생활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종이 대신 먹칠을 한 넓은 판자를 하나씩 들고 앉아 분필로 글씨 쓰기 연습을 하고 있었고 늙은 선생 스님은 한가로이 졸고 있었다. 교실의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의 서당을 연상시켰다.

식사때가 되니 한쪽엔 스님들, 그리고 다른 편엔 아이들이 앉아 탁발해 온 음식을 나누어 공양을 하는데 법도가 우리네 사찰만은 못하지만 꽤 근엄하였다.

유적만을 보는가 했던 필자의 우려는 남동쪽 사원을 참배하며 살아있는 캄보디아의 불교상황을 접하고 흔연히 씻어졌다. 남쪽으로 1시간쯤 더 내려가면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볼 수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서 생활하는 선상족(船上族)을 마음껏 관찰할 수 있다.

10일간의 일정은 한 지역의 유적을 취재하는데는 실상 짧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러나 크메르의 위대한 영화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어진 전쟁과 그리고 정글의 침입, 무지한 인간들의 만행 등으로 잘리고 무너진 처처의 유적들은 실상 그것이 온전히 서 있는 것보다 더 큰 감동과 충격을 주었다. 신앙은 미술적 가치만으로 얘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앙코르의 사진을 보며, 그 위대한 신앙의 역사를 느끼며, 필자가 다녀온 그 장엄한 관세음의 나라가 혹시 꿈은 아니었던가 하는 환각을 씻어내고 있다.

정글 속 관세음의 나라 앙코르의 얘기를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