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캄보디아 2. 앙코르의 기적을 보다

불국토 순례기/ 세계의 불가사의, 캄보디아의 불교유적

2007-11-03     관리자

앙코르왓트는 슈라바르만 2세가 12세기 초 자신의 사후(死後)를 기리며 세운다. 필자가 도착한 이른 아침, 앙코르 지역에 세워졌던 2백여 개의 사찰 중 유일하게 서쪽을 바라보는 이 세계 최대의 사원은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빛 아래 높이 55m에 이르는 중앙탑이 실루엣으로 내리 깔리고 주위 수 km에 걸친 정글이 기지개를 켜는 가운데 서서히 그 신비를 벗기고 있었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1.5km, 1.3km의 해자가 너비 190m의 드넓은 폭으로 사원을 둘러싼, 그리하여 다시금 외곽 돌담이 돋을 새김과 조각으로 가득한 채 사방 1km가 넘는 내부를 보호하는 장방형의 이 사원은 연구의 대상이었지, 일별하여 구경할 수 있는 관람의 대상은 아니었다. 이 사원은 거의 대부분이 사암(砂岩)으로 이루어졌다. 심지어 폭 9.5m 길이 475m의 진입도로도 유사한 돌로써 깔려 있다. 입구에는 비쉬누상이 사람 크기 두 배로 서 있는데 팔이 여덟 개인 이 상에는 머리 타래들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결혼을 앞둔 남녀가 찾아와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는 뜻으로 바친 것이라 한다. 도로를 따라 중앙사원을 향하다 보면 좌우에 장경각으로 쓰인 건물이 있고 그리고 그 너머 숲 속으로 스님들이 거주하는 요사가 언뜻언뜻 보인다. 불교인지 힌두교인지 알 수 없는 것은 이 사원이 힌두이즘에 의해 지어졌지만 수시로 왕에 의해 불교사원이 되었다 힌두교 사원이 되었다 하는 시대적 변화 때문이다. 이 땅에선 불교와 힌두교가 그다지 구분되지 않는다는 신앙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앙사원에 이르면 좌우에 넓은 연못이 자리한다. 물위에 비친 사원과 탑의 모양이 아름답지만 실상 이 연못의 용도는 홍수와 가뭄을 대비한 치수(治水)의 과학적 산물이다. 그러고 보면 사원을 둘러싼 드넓은 해자나 담벽도 그와 같은 용수(用水)와 그 너머의 정글숲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림(防林)의 역할이 컸음직하다. 중앙사원은 3층으로 이루어졌고 제1회랑과 제2회랑의 두겹 담이 둘러싼 가운데 우뚝하다. 2층과 3층은 모퉁이마다 뾰족한 탑이 사방에 있고 중앙탑은 3층보다 31m가 높고 땅으로부터는 55m가 되는 회랑에는 무려 800m의 길이로 돋을새김한 조각이 장관을 이룬다. 힌두의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전투 장면, 보병과 코끼리를 탄 장교와 족장들, 전사한 이를 가운데 두고 둘러싸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들이 수 세기에 걸쳐 지나가며 만져 본 이들의 손때에 묻은 채 반짝인다. 또는 크메르 제국의 역사를 담은 부조와 천국과 지옥의 모습, 각양각색의 신들의 자세, 아수라와 데바 180명이 바다를 항해하는 모습 등 안내책자와 함께 며칠이고 새겨보는 역사의 보고이다.

참배객들과 혹은 원색의 관광객들은 3층까지 올라 드넓게 펼쳐진 정글과 1km에 뻗친 사원의 전경을 구경하게 된다. 근년에 들어 유네스코와 정부의 합작으로 보수에 보수를 더한 이 앙코르 왓트는 제법 단정한 모습이지만 아직도 부서지고 깨진 신상과 기둥 그리고 벽들이 지난 5세기간 폐허로 잠존해 왔음을 말해준다.

총을 든 캄보디아 정부군 그리고 지나가는 장갑차가 북쪽 밀림 어딘가에서 출몰하는 크메르군과의 전투를 생각케 하여 등허리를 서늘하게 한다.

안내인에 따르면 작년에만도 17명의 실종 관광객이 있었으며 사살당한 일본인 2명으로 인해 매우 시끄러웠다 하니 더욱 오싹해진다.

이제 안장헌, 이기선, 조상진 선생과 필자 4명은 더욱 밀림 깊숙이 자리한 불교예술의 금자탑 바이용 사원 그리고 수많은 사원을 방문할 것을 각오하며 용기를 북돋우는데, 그것은 물러설 수 없는 불교문화에 대한 흠모에서 일어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