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리는 영상포교의 시대

풍경소리

2007-11-03     관리자

‘부처님이 생존해 계실 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분은 어떻게 수행했으며,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사셨을까. 만약 그분이 살아 계신다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설법을 들려 주실까.….’
부처님에 대한 이같은 동경과 그리움으로 탄생시킨 것이 불교의 조각과 회화예술이다. 기원전 2세기 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불교의 조각예술품들은 불교도들이 부처님 그분을 얼마나 열렬히 그리워하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사이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바르후트 난간기둥의 섬세한 전생설화(前生說話) 부조(浮彫)나 산치대탑의 조각들은 부처님 재세시의 갖가지 감동적 사건을 연속적인 동화(動畫) 형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작품들은 7세기 경에 조영(造營)된 아잔타 석굴에 이르면 그 정점을 보여준다.
부처님의 설법을 사실적으로 체감시키기 위한 노력은 불교가 전파된 곳이면 어디서나 나타난다. 불교의 북방전래 통로였던 돈황은 불교회화의 보물창고다. 입체적 기법의 회화로 표현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삶은 그대로가 경전이고 설법이다.
경전 속에 나타나는 변상도(變相圖)도 부처님의 설법을 보다 알기 쉽게 설득하려는 방법으로서였다. 다시 말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실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수단적 매체(媒體)로서 조각이나 회화, 변상도를 이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 불교가 기울였던 이같은 노력은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움직이는 화상(畵像)이 아니기 때문에 전달력이 제한적이라는 점, 음성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에 입체적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메시지 수용자가 제한적이라는 점 등은 포교열망을 충족하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따라서 보다 획기적인 대체수단의 개발이 필요했다. 특히 현대사회와 같은 첨단매체의 시대에는 이에 걸맞는 뉴미디어를 통한 포교방법의 강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그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뉴미디어의 총아인 케이블 TV의 출현이 그것이다.
케이블TV란 방송센터와 수신자 사이를 동축 또는 광케이블로 직접 연결해서 방송하는, 미디어의 신기술이다.
원래는 공중파TV의 난시청지역을 해소하기 위해 개발된 이 기술은 유선으로 메시지를 송신하기 때문에 주파수의 제한이 없고, 따라서 다양한 채널의 구성이 가능하다. 또 선명한 화면과 깨끗한 음질을 보장한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케이블TV를 ‘꿈의 채널’로 부른다. 미국의 경우 케이블TV가입자 수는 공중파 TV 시청자 가구의 98%에 이르고 있다.
이 꿈의 채널이 우리나라에서는 95년 3월 1일부터 방송을 시작한다. 채널 수는 뉴스, 영화, 스포츠, 어린이, 음악, 종교 등을 포함해 20개나 된다.
불교도 이 가운데 1개 채널을 배정받아 불교전문프로그램을 방송하게 된 것이다. 과거의 불교가 고정된 화상인 그림이나 조각으로 포교를 했다면, 현대 불교는 선명한 영상과 깨끗한 음향으로, 수많은 대중을 대상으로 포교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경전에서 묘사하고 있는 천안통(天眼通)과 천이통(天耳通) 즉 안방에 앉아서 천리밖의 부처님 설법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신통한 능력이 대중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불교전문채널인 ‘불교TV’가 방송을 시작하면 시청자들은 실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불교적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큰스님의 설법을 비롯해, 불교의 고향인 인도로 떠나는 성지순례, 유명교수진의 교리강좌, 찬불가 등 불자들이 원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1주일에 69시간, 한달에 290여 시간을 시청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나중에는 하루 24시간 방송도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포교분야는 전대미문의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가장 크게 기대되는 것은 포교효과의 광역성이다. 90년 5월에 개국한 라디오 불교방송은 현재 가청지역이 수도권 일원에만 한정된 일종의 지역 방송이다. 곧 부산과 광주에 지방국을 개국할 예정이지만, 전국망으로 확대되기에는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에 비해 불교TV는 95년 첫해에 전국에 54개의 지방방송국을 통해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그리고 5년 이내에는 전국 116개의 지방방송국을 통해 프로그램을 송신한다. 그때가 되면 전국 어디서나 TV수상기만 있으면 시청이 가능하다. 시청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안방으로 찾아오는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불교TV를 통해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시청자의 숫자도 몇십만 명을 쉽게 넘어설 예상이다. 케이블TV는 개시 초기인 95년도에 1백만 가구를 가입시청자로 출발하게 되는데, 이를 20개 채널이 산술평균적으로 분할하면 5만 가구다.
그러나 전국의 불자수를 감안하여 불교TV시청자 수는 30만 가구는 될 것으로 전망된다. 30만 가구에서 최소한 3명씩만 불교TV를 시청하면 동시시청자 수는 90만 명이다. 하지만 이 숫자도 5년 뒤에는 또 달라진다. 전국방송망의 완전구축이 끝나면 최소한 9백만 가구 이상이 케이블TV에 가입하게 된다. 이 가운데 절반이 하루에 몇시간만이라도 불교TV를 시청한다면 450만 가구, 여기에 다시 TV 수상기 1대당 3명씩만 시청한다고 가정하면 1천3백50만 명이 시청자가 된다.
부처님은 재세시에 항상 1천2백50명의 제자들에게 설법했다고 전한다. 경전의 첫머리에 나오는 ‘1천2백 50명의 제자와 함께 있었다’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그러나 불교TV는 그때보다 무려 1만 8백 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상을 통해 지혜와 자비이 법음(法音)을 들려줄 수 있게 될 것이다.
불교TV가 가져올 영상포교의 효과는 이런 계량적 수치만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흑백 TV에서 컬러TV로 바뀌면서 국민들의 미적(美的)감각이 달라졌듯이 불교TV를 시청하는 불자들은 불교이해의 수준, 신행생활의 깊이가 변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정법의 선양에 따른 포교효과의 극대화, 그리고 불교공동체의 확대라는 불교의 이상을 구현하는 촉매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그 공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것은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지금 한국불교 앞에 펼쳐진 화려한 현실이다.
과거의 불교는 조각이나 그림을 통해, 불교의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수백년에 걸쳐 석굴을 조영하고 사원을 세웠다. 거기에 기울인 정성과 노력은 언어적 표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불교는 1년간의 준비를 통해 그보다 몇십만 배의 성과를 거두려 하고 있다. 이 얼마나 거룩하고 장엄한 불사(佛事)인가. 모든 불자가 합장하고 기뻐할 불사 가운데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