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세계와 우주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조각가 이성도

2007-11-03     관리자

비온 뒤 청산은 해맑고 싱그럽다. 작약하는 여름태양 아래 두둥실 뭉게구름이 산그늘을 드리우면서 저 멀리 매미소리가 들려온다.
조각가 이성도(41세, 한국교원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씨를 만난 그 날도 장대같은 비가 쏟아졌다. 그는 방학 중인데도 연구실에 나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연구실에 나와 책을 보거나 작업을 한다. 학교 밑에 있는 교수 아파트에는 그의 인생도반이자 수행도반인 아내와 올해 국민학교 3학년 인 아들이 함께 살고 있어 집과 학교를 오가며 작업하기에는 좋은 환경이다.
미술관 3층에 자리한 연구실 한 켠에는 각종 미술관계 학술 서적과 연구 논문들과 전시 팜프렛이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문 하나 사이로 통하는 또 한 켠의 연구실에는 최근까지 해 온 작품들과 작업도구들이 늘어져 있었다. 대부분, 아니 거의 전부가 불교조각품들이었다. 원시초기 불상을 비롯한 여러 불상과 수인(手印), 그리고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큰스님들의 초상을 부조로 조각한 작품들이다.(그동안 전시되었던 일반적인 작품들은 경기도 과천 그의 작업장에 있다.)
원효, 보조, 휴정, 초의, 만해, 만공, 구산, 경봉, 탄허, 효봉 스님과 서옹, 성철스님, 그리고 자신의 스승이었던 백봉 김기추 선생의 모습도 있었다. 지금까지 열 세 분의 모습을 조각했다.
“특별히 누구의 청이 있어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깨달음의 상태는 어차피 얼굴로도 내보여질 것이기에 큰스님들께 내재된 정신성을 초상조각이라는 형식으로 내보이고 싶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그분들의 정신성을 조각으로 전신(傳神)시켜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 작업들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최근세에 살았던 분들은 영정이 남아 있어 그나마 참고가 되지만 원효 스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표준으로 삼을 만한 영정이 없었다. 영정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성도 씨는 스님들의 모습을 조각하기 전에 그분에 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그분에 대한 공부를 충분히 한다. 그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을 경우 형상만을 흉내낼 수 있을 뿐 정신성이 전신(傳神)되지 않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스님의 모습으로 조각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성철 스님의 초상조각은 네가티브(negative, 음화)와 포지티브(positive, 양화)로 조각되어 있어 서로 마주보며 자신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아 재미있다.
이렇게 조각된 작품들은 쭉 펼쳐 놓는다. 그리고 틈틈이 보면서 그분들의 정신을 닮으려 하며 그 모습이 아니다 싶으면 수정을 하거나 다시 만들기도 한다. 일연 스님과 한암, 용성, 경허 스님과 현존해 계신 큰스님 등 우리 나라 큰스님들에 대한 초상조각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적당한 기회가 되면 전시도 해볼 생각이다.
선지식에 대한 이성도 씨의 편력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불교학생회 활동을 해온 그는 서울대 미대 시절 서울대학교 총불교학생회 회장(서울대학교는 단과 대학별로 불교학생회가 있음)을 맡을 정도로 활동적이며, 적극적이었다.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그는 많은 선지식들을 찾아다녔다.
한 때는 휴학을 하며 두 철 안거에 들기도 했다. 한국의 유마거사라고 칭송받던 백봉 김기추 선생이 주석하고 계시던 보림선원에서다.
그곳에서 만났던 도반들은 지금도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다. 백봉 선생이 계시지 않은 지금은 주로 서옹 스님을 자주 찾아 뵙고 자신의 궁금증을 여쭙곤 한다.
“저의 작업에 있어서 어떤 이미지, 형상의 표출, 메시지의 전달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미술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고 저 자신 또한 그것은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존재에 대한 탐구,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와 우주에 대한 사색의 표현이 앞선 것이지요. 다시 말해 저의 작업은 존재와 세계, 우주에 대한 송가라는 말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각가라기보다는 구도자라는 표현이 더 가까우리만큼 존재와 세계와 우주에 대한 탐구는 끝이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존재와 세계와 우주는 곧 이성도 그 자신인 것은 물론이다.
‘세상은 끝없이 변해간다. 뿐만 아니라 고정된 것은 없으며 유사한 형태로 반복될지라도 동일한 형태로 반복되는 것은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변화하여 궁극에 이르러서는 없어지고 만다. 인간은 말할 나위 없고 그 우주 공간에 생성되어진 모든 물상 또한 그러하다. 나는 작업을 통해서 무엇을 구현하고자 하는가. 예술가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야 본질을 드러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질문은 끝이 없다.
‘이미지에, 형상에, 색에, 소리에 매료되어 끝없이 형상, 색, 소리를 추구하다가 거기에 빠지고 그 내면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예술이 삶의 본질적인 질문보다 형상을 재현하고 이미지를 좇고 색으로 장엄하고 미화하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 경계한다.
그리고 일체의 형상이 모두 허망한 사실을 체득하고, 본질 직관으로서 대상의 진실을 드러내놓기 위해서 늘 깨어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형상 자체보다 그 형상 내면에 내재하는 정신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 정신성이 적절한 조형을 통해서 가장 원만하게 표현되면 좋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원래 직선보다는 곡선적인 형상이 훨씬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자연성에 가깝다고 느껴 그의 작품은 주로 곡선과 원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고정된 시각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작품에 이름 붙여진 그 이름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해서이다. 말이란 개념이며 약속일 뿐 실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불교적인 세계관을 이해하지 않고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며,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경전에 보면 어떤 사람이 삼(麻)을 한 짐 지고 가다가 도중에 금덩이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지금까지 애써 지고 온 삼인데 하며 금덩이를 뒤로 하고 그대로 삼을 지고 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며 저는 곰곰이 제 자신의 삶을 되뇌이어 봅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가 하고요….”
이성도 씨 그는 늘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본다. 그리고 무시무종(無始無終)! 끝없는 순환으로 이어지는 세계와 우주와 자신의 존재를 여실히 들여다보며 그것을 조각이라는 조형언어로 표출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이성도(李成道) ‘54년 경남 창원에서 출생. 서울
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대학원 졸업. ‘82년 마
루조각회전을 시작으로 서울조각회전, 화랑미술제, 현대
미술동향 30대작가전, 일원상초대전, 한국현대조각 초대
전, 비무장지대작업전 등 여러 기획․초대전에 작품을 발
표하였다. ‘90년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으며 서울조각회전,
어느조각 모임에 정기적으로 작품발표를 하고 있다. 지금
은 한국교원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