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도 바뀌어진 삶

나의 믿음 나의 다짐

2007-11-01     관리자

제가 불교와 인연을 갖게 된 것은 결혼하고부터입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저희 집안 모두가 불교에 인연이 깊은 분들이셨습니다. 큰어머니 두 분, 작은 어머니, 저희 어머니, 그리고 윗대 할머니께서도 다니셨다 하더군요.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고 바쁘시니까 자주는 다니지 못해도 정월이면 정성껏 쌀을 고르고 칠월칠석이면 정성을 모아 절에 가서 치성을 드리곤 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저는 절에 가서 삼배를 하는 것도 쑥스러워 못했고 더욱이 108배는 엄두도 못냈습니다.
하지만 누가 “아무개 엄마, 교회에 다녀.”하고 전도를 할 때 “나는 우리 어머님이 절에 다니기 때문에 절에 다녀야 돼요.”합니다. 그러면 “각각 사는데 무슨 상관이야.”합니다. 그러면 전 딱잘라 “아니예요, 내가 다른 것은 효부 노릇 못하지만 종교만큼은 어머님 종교를 따라야죠!”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법당에 들어가서 삼배하는 것도 무척 쑥스러워 했으니까요. 다만 초파일이면 등이라도 달아야지 하는 의무감은 있었던지 초파일에는 미적미적 하루를 보내다 오후 늦게 가서 등을 신청해서 달곤 했었지요.
그러다가 조금 마음이 열렸는지 아파트 분양을 받아서 이사를 가게 되니 부처님께 ‘어디 어디로 이사가게 되었습니다. 거기 가서도 집안 모두 편안하게 잘 살게 해주십시오.’라는 인사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이웃에 절을 다니는 아주머니를 따라가 축원하면서 절에 조금씩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몇 년을 다니다 다시 잠실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불광사에 다니는 연심 보살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큰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큰 애가 국민학교 1학년이고 연심 보살님 아들이 4학년쯤 되었을 땐가 봅니다.
어느날 우리 아이가 밖에 나가놀다 손을 다치게 되었는데 어떤 형이 잘 돌보아 주었다면서 “엄마, 그 형이 그러는데 형네도 절에 다닌데.” 하면서 절에 다닌다는 것이 무척 반가웠었나 봅니다.
이렇듯 연심 보살님과의 인연으로 불광사와 인연을 맺긴 했지만 언젠가 한 번 와보니 아마도 백중법회시 효부상 시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찌나 박수를 많이 치던지 ‘아휴, 여긴 꼭 공산당 같네. 무슨 절에서 박수를 이렇게 많이 치나.’하면서 별로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연심 보살님이 가자고 조르면 한번씩 따라오곤 하기를 몇 년 했나 봅니다. 그러던 중 제가 먼저 다니던 절의 큰스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저에겐 더욱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내일이 관음재일인데 스님 돌아가셨다고 그 절에 안 간다는 것도 스님을 배반하는 것 같고, 또 불광사에 가면 법문이 있는데 법문도 듣고 싶었습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던 그날 밤 꿈에 불광사 법주 큰스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아! 불광사로 가라는 것이로구나.’하면서 그야말로 마음의 갈등없이 불광사로 와서 기도하고 법문도 듣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불광에 안착은 했지만 계를 받으라고 해도 망설이곤 했습니다.
그러던 ‘88년도입니다. 수계를 신청하라는데 또 망설이고 있자니 어느날 큰스님이 또 꿈에 보였습니다. 그래 얼른 신청을 해 수계를 받고 바로 그 해 12월 호법회비 동참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빠짐없이 작은 금액이지만 꼭꼭 내고 있어요. 하지만 바라밀 교육을 받는 데는 또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자 계를 받고 만 1년쯤 되는 ‘89년말쯤 또 큰스님이 꿈에 보였습니다. ’아! 교육을 받으라는 것인가보다‘하고 얼른 신청을 해서 ’90년 1월 9일부터 한 시간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반야심경 강의가 있었습니다. 이 강의를 받고 저는 그야말로 저절로 힘이 나고 신이 나고 환희심에 춤췄습니다.
모든 것은 공이다.
내 몸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내 몸이니 하물며 우주만물 모든 것이 공 아닌 것이 없다.
이렇듯 모든 만법이 공이고 또 공이라!
하지만, 이 공이 빈 공이 아니라,
모든 만법을 내 마음 따라 내어 쓸 수 있는 무한의 보물창고인 진리 공이라는 것!
마치 물이 환경 조건 따라 이슬되어 풀잎 끝에 앉고 가랑비 되어 땅을 적셔주고 소낙비 되고, 강물 되고, 바닷물 되고, 얼음 되고, 구름 되지만, 구름이 내내 구름 아니요, 얼음이 내내 얼음 아니듯, 근본은 물인 것과 같은 이치를 저는 알았으니 내가 이 우주전체와 동일한 존재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어찌 기쁘지 않으며, 지금까지의 저의 기존관념, 인생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로 바뀌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바라밀 교육을 회향하면서 바로 그 이튿날부터 감사한 마음으로 혼자 3·7일 기도를 일과정진이라 생각하고 시작하면서 목탁도 익히고 또 ‘광명사’도 만들어 친정 어머님, 아버님 왕생극락을 간절히 빌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8월 저에게 마하보살을 하라는 선배 보살님의 제의가 있더군요. 제가 자격이 있고 없고는 제쳐놓고 그저 부처님께 감사했습니다.
우리 큰스님 계신 ‘불광’에서 마하보살이라는 역할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영광이고 감사했습니다.
기존의 나를 빨리 깨버리고 바라밀 불자로 성장시킬 기회가 온 것이라 믿고 잠실 4-5법등 마하보살 부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았음에도 겁도 없이 2년 반 정도 선배님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법등법우들의 협조와 도움으로 법등 가족도 키워 가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의 집안의 변화라면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파리 한 마리를 잡아도 ‘발보리심’이라고 합니다. 또 네 식구가 시간이 나면 낚시터로 가던 것이 차츰 차츰 사찰순례로 발길을 돌리게 되더군요. 아마도 저희 가족만큼 아이들과 더불어 사찰을 순례한 집안도 많진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3대사찰 즉 불보사찰 통도사, 법보사찰 해인사, 승보사찰 송광사를 비롯해 대본사찰, 유명지장도량, 관음도량, 오대보궁을 모두 참배했습니다. 보궁 중 마지막으로 설악산 봉정암은 시간도, 산행도 쉽진 않았지만 큰스님 말씀대로 마음에 그리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실감했습니다.
새해 달력을 받으면 연휴만 먼저 체크하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계획을 세웠습니다. 드디어 작년 6월 6, 7일 연휴에 저의 거사님과 두 아이와 함께 오색약수터를 출발하여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을 거쳐 봉정암에 당도했을 땐 정말 감사하고 가슴 뿌듯했습니다.
우리 거사님께 감사하고 준태, 혜리에게 감사하며 마음으로 고마움을 느끼며 합장했습니다.
금년 2월 저는 다시 송파 9구 법회 총무보살을 하라는 명령아닌 명령을 받고 ‘나의 기도의 문이 커지겠지’ 하는 생각에 쾌히 수락해서 지금 현재 총무 책무를 수행 중입니다. 지금 저희 송파 9 구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명등보살님 이하 구법회 임원 네 분과 마하보살 열 분이 정기적인 담화식의 모임을 가지면 일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막연히 부처님께 복만을 비는, 또는 착한 일만 해서 복을 짓는 것이 불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으며, 나의 존재는 어떻게 해서 현재에 있으며, 기도는 왜 하고, 기도는 어떻게 하고, 기도를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에 확실한 신념을 심어주신 큰스님의 법문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생명이 있는 부처님들께 잘하는 것이 더욱 큰 공덕이 된다는 스님의 법문과,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훤한 이치는 때론 칠 남매의 맏며느리인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하고 갈등을 겪게 하지만, 기도의 제목으로 생각하며 오늘도 향 하나를 사르면서 조용히 그리고 간절히 기원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하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