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第三譬喩品 제2권)

법화경 강의[24]

2007-11-01     관리자

강의
부처님 말씀은 짧은 구절이나 똑같은 구절이라도 계속 반복해서 몇 번이고, 몇 년이고, 몇 생을 두고서라도 읽고 생각하고, 쓰고 생각하고 이렇게 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반야심경󰡕이나 󰡔천수경󰡕 등도 계속 읽고 외우고 쓰고 또 듣고 하는데, 이렇게 거듭 반복하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반복하는 것이 신(神)의 경지에 이르는 지름길이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전을 편집할 그 당시는 지금처럼 모든 여건이, 특히 종이나 인쇄기술이 풍부하지 않고 대단히 귀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말씀하셨던 그 내용을 다시 또 시(詩) 형식을 빌려서 거듭 반복해서 경전에다 이렇게 기록했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왜 이렇게 거듭거듭 반복해서 설하셨을까. 특히 부처님의 중요한 사상을 담고 있는 대승경전에서 이렇게 반복해서 말씀하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 이 「비유품」의 게송을 보면 앞의 내용보다 훨씬 더 자세하고 더 사실적으로 깊이 있게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유란 형태가 없는 것을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고, 상징은 형태가 있는 것을 형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내 보인다고 사전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 게송에서 보이는 온갖 귀신과 잡동사니, 짐승들이 들끓고, 집이 썩어 내려앉고, 거기다가 불까지 났다는 이야기는 결국 인간세상, 우리 현실의 문제, 세계의 정세 등 현대인들의 인성(人性)과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에서 나오는 말세적인 온갖 상황들을 정말 진실하게,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처참한 것인가 할 정도로 생각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세상 어느 구석엔가는 지금도 여기에서 표현된 것 같은 아주 처참하고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현상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경문
94. 비유컨대 저 장자에겐
큰 저택이 있었으니
그 집은 오래되어 낡았고
또한 무너지려 하였으며
95. 그 집채는 높고 위태롭고
기둥뿌리는 썩어 부러지고
대들보는 기울어지고
축대는 무너졌으며
담과 벽은 헐리우고
발랐던 흙은 떨어지며
이엉은 썩어 떨어지고
서까래는 드러났으며
담장은 비뚤어져서
더러운 것이 가득한데
오백 명의 사람들이
그 속에 살고 있었더라.

강의
이 경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 주변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적인 상황이라든지, 경제적인 상황, 세계정세 등을 실지로 속속들이 들여다 보면, 얽히고 설키고 복잡미묘한, 한치의 틈도 줄 수 없는 긴박한 우리 삶의 현실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산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사업관계, 노사관계, 정치현실의 이해관계 등 인간관계의 복잡미묘한 현장에서의 당사자들은 밖에서의 힘들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리거나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거니와, 이야기한다한들 그 진실성을 다 표현할 수 없기에, 필설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의 부정적인 문제들을 이렇게 비유로써 표현했을 뿐이고, 여기서의 500인들은 우리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경문
96. 소리개, 올빼미, 부엉이, 독수리, 까마귀, 까치, 비둘기, 뻐꾸기, 뱀, 독사, 살무사, 전갈과 지네들과 그리마들.
노래기와 쥐며느리 살퀭이 족제비 쥐들과 온갖 나쁜 벌레들이 뒤섞여 치달리며.
97. 똥 · 오줌 냄새나는 곳엔 더러움이 흘러 넘치고 말똥구리 등 온갖 벌레들이 또 그 위에 몰려들며 여우, 이리, 야금 등은 씹어 뱉고 짓밟으며 죽은 것을 뜯어 먹어 살과 뼈가 낭자하도다.
98. 여기에 뭇 개들은 몰려와서 끌고 당기며 굶주려 야윈 것은 떨며 이리저리 먹을 것을 찾다가 다투면서 물어뜯으며 으르렁 짖어대도다.
99. 그 집이 공포스럽기는 이와 같은 모습이라, 구석구석마다 모두 도깨비나 허깨비가 있으며,
100. 야차와 악귀들은 사람고기를 씹어 먹으며 나쁜 벌레의 무리들과 사나운 짐승들은 새끼치고 젖먹이며 제각기 감추고 기르도다.

강의
이 경문들은 어떻게 보면 공포스럽게 꾸민 애들 이야기 같지만 이는 진정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그린 것입니다. 비근한 예를 들면, 얼마 전에 있었던 걸프전을 우린 기억할 것입니다. 인접한 두 나라가 서로 싸우는 것도 처음부터 무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두 나라가 싸우고, 먹히고 있는 곳에 그 싸움을 말리는 척하면서 이익을 챙기려는 나라들이 30여 국이 모였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주동하는 나라도 있고 또 하는 수없이 동조하는 나라도 있고 또 하는 수 없이 동조하는 나라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그것이 진정 도와주는 것입니까? 전부 저들의 이익을 계산하고, 거들어 주는 척 하면서 석유 한 방울이라도, 공사 한 건이라도 얻으려는 계산이 없다면, 뭣하러 자기 국민들의 인명을 함부로 던지겠습니까? 사람도 살기 어려운 찌는 사막 속에서···.
이는 이 법화경문에서 그려 놓은 그 모습 그대로인 것입니다. 그러한 걸프전 상황이 어찌 그곳에만 있겠습니까? 지금 온 세계가 전부 걸프전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알고보면 우리 산업역군들이 사업하고 정치하는 그 현장도 내부를 속속들이 분석해 보면 그 상황이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겠지요.
바야흐로 세상이 이렇게 생겼다고 부처님이 몇천 년 전에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모습을 일일이 떠올려서 지적하기보다는 이런 불난 집의 상황을 그리고, 거기에 오백 명이라는 중생들이 그런 아수라장 같은 곳에 전혀 상황을 모르고 희희낙락거리며 애들같이 뛰놀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경문
101. 야차들이 달려와서 앞다투어 잡아먹고 먹고나서 배부르면 나쁜 마음 더욱 더 치성하여 투쟁하는 소리가 심히 두렵고 두렵도다.
102. 구반다 귀신들은 흙더미에 걸터앉아서 어느 때는 땅 위로 한 자 두 자씩 뛰어 오르며 왔다 갔다 돌아다니며 제멋대로 희희덕거리면서 개의 두 다리를 잡고 후려쳐 기절시키며 다리로 목을 눌러서 겁낸 개를 스스로 즐겨하도다.
103. 또 다른 귀신들은 그 몸이 길고 커다란데 벗은 몸은 검고 야윈 채로 그런 속에서 항상 살면서 큰 소리로 악을 쓰고 먹이를 찾아 절규하도다.
104. 또 어떤 귀신들은 목구멍이 바늘 같으며 어떤 귀신들은 쇠머리 같은 머리를 하고 혹 사람고기를 먹거나 혹 개도 잡아 먹으며 머리는 산발하고서 잔인하고도 흉악하게 기갈에 시달린 듯이 울부짖고 치달리도다.
105. 야차와 아귀들과 나쁜 새와 짐승들도 굶주림에 사방으로 창틈을 엿보나니 이와 같은 온갖 환란과 두렵기가 그지없도다.
106. 이렇게 낡고 헐은 집은 한 사람의 것인데 그 사람이 외출한 지 얼마되지 않은 사이에 곧바로 이 집에서 홀연히 불길이 일어나 사방으로 한꺼번에 불이 맹렬하게 타오르니 대들보 기둥 서까래가 폭음을 내며 진동하는데 부서지고 떨어지며 담과 벽이 무너지도다.
107. 온갖 귀신들은 큰 소리로 절규를 하고 부엉이 등의 새들과 구반다 귀신들은 두렵고 겁에 질린 채 스스로 나올 줄 모르더라.
108. 나쁜 짐승과 독충들은 구멍 찾아 숨어들며 비사사 귀신들도 또한 그 속에 살았는데 복덕이 없는 탓에 불길에 쫒기면서도 서로서로 해치며 피를 빨고 살을 뜯어먹도다.
야간의 짐승떼들도 이미 다 죽었는데 크고 악한 짐승들이 다투어 몰려와서 찢어먹으니 매운 연기만 자욱히 사면에 가득하도다.
109. 지네와 그리마와 독사의 무리들은 불길에 타게 되어서 다투어 구멍에서 탈출하는데 구반다 귀신들은 쫓아가서 잡아 먹도다.
110. 또 여러 아귀들은 머리에 불이 붙어서 기갈과 뜨거운 고통에 황급히 달아나도다.
111. 그 집은 이와 같이 몹시 두렵고도 무서움이라.
지독한 피해와 화재 등 모든 재난이 하나가 아니더라.
112. 그때 이 집주인은 대문 밖에 당도하여 어떤 이의 말을 들으니 ‘당신의 아이들이 처음엔 장난을 즐겨하여 이 집안에 들어갔으나 어린 것들이 철이 없어서 장난만 즐긴다’고 하더라.

강의
이것이 우리들 중생의 모습입니다. 위의 경문에서 본, 처참하고 먹고 먹히는 인간사의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나면 진절머리가 나지만, 또 한편에선 그것을 즐기고, 그것에 재미 붙여서 사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리석고 철이 없어서 무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경문
113. 장자는 이 말을 듣고 불난 집에 뛰어 들어가서 적절한 방법에 구해내 불타 죽지 않게 하려고 아이들을 타이르는데 온갖 환란을 설명하도다. ‘나쁜 귀신 독한 벌레에다 불길까지 끊이지 않으며 살무사와 독사 전갈 등 여러 가지 야차들과 구반다 귀신들과 야간 여우 개들과 부엉이, 독수리, 올빼미와 지네 등의 다족의 무리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허덕이니 몹시도 두렵고 무섭거늘 이러한 고난 속에다 하물려 큰 불까지 났음이랴.’
114. 아이들은 철이 없어서 비록 아버지 타이름을 듣긴 하나 오히려 짐짓 재미 붙여서 놀기를 그칠 줄 모르더라.
115. 이때 장자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아이들이 이와 같으니 내 더욱 근심하도다. 지금의 이 집에는 하나도 즐거울 게 없건만 이 아이들은 노는 데만 빠져 있어서 내 타이름을 듣지 않으니 장차 불에 타게 되리라.’
116. 그때 문득 생각하기를 온갖 방편을 다 베풀어 주리라.
여러 아이들에게 말하되 ‘나에게 있는 여러 가지의 진귀한 장난감 중에서 묘한 보배의 좋은 수레인 양 수레, 사슴 수레, 큰 소의 수레가 있는데 지금 문 밖에 있으니 너희들은 밖으로 나가라.
내 너희들을 위해서 이런 수레를 만들었으니 마음에 드는 대로 가지고 즐겁게 놀아라.‘

강의
󰡔법화경󰡕에서 부처님의 여러 가지 비유는 계속되고 있지만 여기에선 세 가지 방편을 말씀하시고 일단락되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집의 처참한 상황들은 이 세상의 모습들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고, 이것도 몹시 괴로운 일인데 더구나 이곳에 불이 났다는 것은, 시간에 대한 무상(無常)에 대해서 제약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런 절대적으로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불난 집의 모습에다 그리고 있는 것은 인간의 탐진치 삼독과 백팔번뇌 팔만사천 가지 번뇌가 들끓기 때문에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 경문 중에서 야차, 귀신, 벌레, 짐승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서로 먹고 먹히고, 찢기는 것은 번뇌의 요동침을 그린 것입니다.
이런 번뇌만 하더라도 충분히 처참한 상황인데다가 무상이라는 불길까지 가세하여 늙고, 병들고, 죽는 상황까지 겹쳐서 우리를 요동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의 이 화택의 「비유품」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도 너무나 유명한 것입니다. 오백 명의 아이들은 바로 우리 중생들을 말하는 것이고, 장자라는 아버지는 부처님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 불난 집에서 또 온갖 것이 들끓는 그 집에서 살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해내기 위해서 방편을 베푸는 것이죠. 그 방편은 교훈으로서 양, 사슴, 소의 수레가 바로 우리를 불난 집에서 빠져 나오게 하는 가르침, 즉 불교인 것이고, 우리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행하는 신행활동이 그 세가지[三乘]에 모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 세 가지뿐입니까? 이 삼승은 삼천승도 되고 삼만승, 더 나아가 온갖 각양각색의 방법들이 다 동원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벌어지는 온갖 불교 행사들에 인연을 맺고 그를 통해서 신심이 깊어지고, 차츰차츰 지혜의 눈도 뜨게 되고 끝내는 성불하게 되는 것이 부처님이 베푸신 방편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