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노스님을 생각하며

물처럼 구름처럼

2007-11-01     관리자


도시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일년이 다 되어간다.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산사의 생활들이 가슴을 저며오던 것이 몇 번인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항상 넉넉하고 편안하게 생활했던 가야산의 향취가 가을이 되면서 더욱 그리워진다. 함께 경을 보며 토론하던 도반스님들,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속속들이 전하고자 학인들보다 더 노력하여 연구하고 강의하시던 강사스님들, 또 일주일에 한번씩은 회색승복을 훌훌 벗어놓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따가운 햇살 아래서 열심히 공을 차던 후배스님들이 그리워진다. 백여 명이 되는 강원 대중스님들의 요구와 바람을 일일이 들어주고 불편함이 없도록 애쓰면서도, 항상 새로운 바람에 시달리며 부드럽고 따뜻한 말한마디 제대로 듣지 못했던 총무스님과 사중 소임자 스님들의 고마움이 가야산을 생각하면 가슴에 가득 밀려온다.
많은 스님들이 해인사를 우리나라의 대표적 원융도량이라고 한다. 스님들이 수행하며 사는 곳이 도량이요, 그 사는 모습이 원만하게 화합하여 지내기에 원융이다.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데마다 원융도량이 아닌 곳이 없지마는 유독 해인사를 그 대표로 꼽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량이기 때문이다. 땅의 넓이나 건물의 평수만 따진다면 해인사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사찰이 아닐지 모르나, 크고 작음의 기준은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불교의 가장 큰어른이신 성철 스님께서 계셨던 것만으로도 해인사가 가장 크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속가에서도 집이 크거나 작음에 상관없이 큰형이 사는 곳을 큰집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가장 많은 대중스님이 사는 곳이 해인사이기 때문이다. 스님들의 오고 가는 원칙은 “오는 사람 막지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이다. 따라서 자신의 살 곳을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지 결코 타의에 강제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에서 가장 많은 대중이 산다고 하는 것은 각자 스스로 살펴 보건대 제일로 살 만한 곳이라는 판단에서가 아니겠는가.
야운 스님의 자경문에 이르기를 “새가 쉴 곳을 마련할 때는 반드시 그 숲을 살피며, 사람이 배움을 구하고자 하면 필히 스승과 벗을 가려야 한다. 새가 숲을 살펴서 쉬면 그 쉼이 안전하고, 사람이 스승과 벗을 가려서 배우면 그 배움이 훌륭할 것이다.” 라고 하였듯이 많은 스님들이 해인사에서 수행하는 것은 그 도량이 원융하게 사는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이유로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큰 사찰들이 문중관계에 얽혀서 유지되고 있으나 해인사는 그런 문중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어느 본사는 이 스님의 문하, 어느 어느 본사는 또 저 스님의 문하 등등해서 대중사찰의 운영이 각각의 문중에 의해서 독점되다시피 하고, 거주하는 대중도 강원이나 선원이 없는 경우에는 대부분 같은 권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보편적인 화합승가의 모습이 각 문중의 특성에 따라 유지되면서 독특한 양식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변형된 의식이나 생활양식은 다른 곳에서 생활하던 스님들에게는 불편함을 초래하게 되고, 다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함께 생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승가대중뿐 아니라 한국불교교단 전체의 문제로 파급되기도 한다. 쉬운 예로 예불모시는 의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대부분 다른 사찰에 가게 되면 스님이나 신도를 막론하고 목소리를 작게 하는데, 이것은 그 사찰의 의식에 맞추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가는 곳마다 운율과 곡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해인사도 나름대로의 독특한 점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래도 하나의 문중에 편향된 운영에서 벗어나 있고, 의식의 진행도 가장 원칙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이 해인사를 우리나라의 대표적 원융살이 도량으로 손꼽는 이유가 되겠다.
세간에서는 잣대라고 하여 물건을 재는 기준으로 삼는다. 잣대에 맞추어 보아야 길고 짧음을 알 수 있고, 넘치고 모자람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물건의 길이는 잣대로 잴 수 있지만, 사람살이의 기준은 법률에 근거한다. 즉 법률이 사람살이의 잣대가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잣대를 법이라고 한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법률과 법의 차이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불교를 아는 사람들은 법률과 법의 구별이 너무도 확실함을 안다. 법률이라고 하면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지배적인 규범’으로 사회의 원만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가치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법이라고 하신 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자연의 이치와 사회생활의 이치를 모두 아셨고, 이것을 중생들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설하신 것이 바로 법이다. 이러한 법의 실천자이자 증명이 되어 주시는 분이 바로 큰스님이다. 큰스님이라고 하면 산중의 가장 높은 어른을 일컬어 하는 말이며 해인사의 큰스님은 바로 성철스님이시다.
키보다 더 커보이는 커다란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던 스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스님께서는 당신보다 더 큰 잣대로 해인사의 원융살림을 끌어오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주 뵙지 못해도 산중에 계셔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의지가 되고, 마음 든든하게 해주시던 스님을 생각하며 애달파한다. 큰 배의 모양과 같이 생겼다는 가야산의 산주(山主)이셨던 스님.
예부터 그 산에 머무시던 큰스님을 그 산의 주인으로 생각하여 산주라 하고, 산 이름을 앞에 붙여 아무개 산스님으로 불러왔다. 지금 스님의 그 카랑카랑하고 억세게 심하던 경상도 사투리로 법문하실 때를 생각하며 정겨운 마음에 가만히 되뇌어본다. 가야산 노스님···.
무단히 산중에만 계셔서 직접 뵙고자 하는 많은 불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하셨고, 삼천 배를 하지 않은 사람은 만나주지도 않는다 하여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하셨던 큰스님. 결제법문 나오셨을 때 멀리서 스님의 모습만 보고도 흙바닥에 엎드려 정성껏 절을 올리던 많은 불자들을 보시며, 마음자리 깨닫기를 당부하시던 모습을 이제는 더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짧은 도시생활 가운데서 스님께서 산중을 떠나시지 않은 뜻을 조금은 짐작해봅니다. 스님의 도량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후학의 큰 기쁨이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주경스님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한 뒤, 수덕사에서 설정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으며,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 현재 대전 심광사에서 교화 정진중이다.